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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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사내가 중고차 시장에 와서 쉐보레 코베아를 눈 여겨 본다. 중고차 판매인은 그에게 코베아의 성능에 대해 다소 과장해 설명한다. 그러나 사내는 오직 차의 색깔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는 코베아의 하얀색을 마음에 들어했다. 뉴욕에서 눈이 내리거나, 눈이 쌓여 있는 60일간, 사내는 하얀색 코베아를 타고 경찰을 피해 먹잇감에 접근할 것이었다.


1964년 3월 3일 뉴욕 퀸즈 구역의 큐 가든스에서 28살의 이탈리아계 여성 캐서린 수잔 키티 제노비스가 새벽 3시 30분경 자택 부근 도로에서 윈스턴 모즐리에게 살해 당한다. 윈스턴 모즐리는 하얀색 코베아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다 제노비스를 발견하자 곧 차를 주차시킨 뒤 그녀를 쫓아가 칼로 두 차례 찌른다. 제노비스는 윈스턴 모즐리가 다가오는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모즐리의 행동이 더 빨랐다. 자상을 입은 제노비스의 죽음은 아주 잠깐 유예되는데, 한 시민이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야! 여기서 꺼져" 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제노비스는 골목을 돌아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까지 피신해 간다. 모즐리는 아주 잠깐 자신의 모습이 시민들에게 노출되어 범인으로 특정되거나,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를 이동 주차하고 난 모즐리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주민들이 방관자로 머물러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핏자국을 따라 제노비스를 쫓아간 모즐리는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칼로 찔렀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제노비스의 웃을 벗긴 후 시간(屍奸)까지 마친 모즐리는 유유히 현장을 떠난다. 그가 체포된 것은 얼마 후 전혀 다른 사건 때문이었다. 빈집을 유유히 털던 모즐리는 빈집 주인을 잘 알던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잡힌다. 경찰은 모즐리의 차가 제노비스 사건 때 발견된 수상쩍은 차량과 비슷한 점을 알아차리고 별 기대없이 얼마 전 일어난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묻는다. 뜻밖에도 모즐리는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한다.


재판을 통해 모즐리는 평범한 집안의 가장으로 밝혀진다. 그는 제노비스 외에도 몇 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모즐리는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보다는 죽어버린 상태에 흥분했다. 죽어버린 대상은 모두 여자였고, 기회가 있다면 시체를 강간했다. 돈을 뺏기 위해 죽인 건 아니었지만 돈이 있으면 빼앗아갔다. 그는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데 왜 하지 않겠느냐는 투로 일관했다.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이던 모즐리는 얼마 후 항소를 제기해 감형 받는다. 정신이상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감형으로 목숨을 구한 모즐리는 얼마 후 자신의 항문에 이물질을 넣어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탈옥한다. 평범한 가정집에 침입한 그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고 그들을 인질삼아 경찰과 대치하다 다시 체포된다. 


제노비스 사건은 <뉴욕 타임즈>의 마틴 갠스버그 기자를 통해 38명이 침묵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38명의 주민들이 제노비스가 살해당하는 30여분 동안 침묵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제노비스 신드롬', '방관자효과' 등이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하지만 최근 이 사건은 '기레기'의 조작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기자는 주민들이 모즐리가 제노비스를 칼로 공격하고 죽을 때까지 찌른 후 강간하는 동안 침묵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지만 사실 주민들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난 이 사건 전체를 모두 관망한 뒤 침묵한 게 아니었다. 일부는 사소한 다툼으로 이해했고, 일부는 고양이 소리라고 여겼다. 그리고 침묵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즐리가 최초 범행 장소를 피해 도망간 것도 한 주민이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모즐리가 제노비스를 죽이고 강간한 마지막 장소는 길거리가 아니라 건물 안이었으므로 목격자가 없었다. 게다가 모즐리가 일주일 후 잡혀온 것도 따지고 보면 빈집털이 중 시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서였다. 


<지옥의 존>으로 콩쿠르 상을 수상한 디디에 드쿠앵은 제노비스 사건을 소설화 하면서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는데, 그가 생각한 답은 '방관자' 들인 것 같다. 그리고 '방관자'들은 '다름 아닌 우리'이니, 우리가 제노비스를 죽였다는 울림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제노비스는 엄연히 시체성애자 모즐리가 죽인 사건이다. 시민들은 살인을 방조하여 침묵한 적이 없다. 물론 일부 상황을 잘 못 파악했거나, 이웃에 대한 관심이 다소 기대에 못 미쳤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가 죽였는가?'라고 물을 정도는 아니다. 

디디에 드쿠앵은 소설 속 주인공 나단에게 아내 길라가 "나단, 당신이었따면 정말 내려가 봤을까?"라고 질문하며 소설을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사건 당시 모즐리가 되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제노비스의 곁을 지킨 이웃 주민도 있었다. 소설가의 자극적인 도발에도 불구하고 실제 주민들은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범인이 명백한 살인사건에 '누가 죽였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인간성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뿐이다. 제노비스를 죽인 것은 시체성애자 모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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