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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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캥 부인은 베르농의 오래된 잡화상이었다. 그에게는 카미유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몹시도 병약했다. 병마는 카미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고, 라캥 부인은 온갖 약을 아들에게 먹이며 십오년간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카미유는 살아났다.

라캥 부인의 집에는 테레즈라는 이름의 계집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테레즈는 라캥 부인의 오빠 드강 대위가 맡기고 간 아이였다. 그는 알제리 여자에게서 얻은 테레즈를 동생에게 맡기고 떠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에서 사망한다.


카미유와 테레즈가 성인이 되자 라캥 부인은 둘을 결혼시킨다. 결혼 직후, 카미유는 베르농으로 가서 살겠다고 어머니에게 선언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라캥 부인이 새로 얻은 상점은 음습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한 돈벌이는 되었다. 카미유 역시 펜대 굴리는 직업을 얻어 나름대로 만족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직 테레즈만이 생활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습기와 함께 집안에서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미유의 친구 로랑이 라캥 부인의 가게에 들른다. 테레즈가 로랑을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욕망에 불이 지펴진다. 로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의 욕망을 감지한 뒤 미묘한 몸짓과 속삭이는 대화를 이어가다 마침내 로랑의 다락방에서 관계를 갖는다. 

그 뒤로 둘은 정염의 노예가 되어 불륜을 이어간다. 불륜이 거듭될 수록 테레즈는 카미유를 못견뎌 했다. 병약한 그에게서 나는 체취와 나약한 분위기들이 로랑의 그것과 대비되어 역겨움을 불러 일으켰다.


악마적인 생각이 로랑과 테레즈의 머리 속에서 피어난다. 강가에 놀러간 어느 날, 배를 빌린 로랑이 테레즈에게 카미유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속삭인다. 테레즈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지만 무엇엔가 홀린 듯 그들과 함께 배에 오른다.

강심에서 로랑이 카미유를 물에 빠뜨린 뒤 배를 전복시켜 테레즈만 구한다. 주변에 있던 뱃사람들이 구조하러 왔지만 카미유는 이미 흔적이 없었다. 그들은 배가 뒤집혀 카미유가 빠졌고 겨우 테레즈만 구할 수 있었다는 로랑의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가 본 것처럼 증언까지 해준다. 카미유는 사고사로 처리된다.


로랑이 2주일간 시체공시소를 드나든 끝에 마침내 물에 퉁퉁 불은 카미유의 시신을 발견한다. 퉁퉁 불어 회색으로 썩어가는 그 시체의 모습이 로랑의 뇌리에 강렬한 화인을 찍는다.


라캥 부인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은 카미유와 로랑을 결혼시켜 자신의 곁에 두고 노년에 보살핌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다소간 치유된다. 그러나 테레즈와 로랑은 어찌된 일인지 과거처럼 붙어먹지 못했다. 카미유가 물어뜯어 생긴 목덜미의 상처에 피가 돌아 붉어지면 로랑은 끔찍한 고통에 휩싸였다. 둘 사이에 카미유의 썩어버린 몸뚱이가 누워있는 것 같았다.


카미유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욕을 돋구어보려는 시도가 모두 무화된 뒤 싸움이 시작되었다. 낮동안은 그래도 어느 정도 평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밤이 되어 둘만 남으면 그들은 서로를 비난했다. 둘만 남게 되면 어김없이 카미유가 찾아왔다. 

그래서, 테레즈와 로랑은 라캥 부인을 잘 대해 주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그나마 카미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캥 부인이 중풍에 걸리자 둘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녀가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음습한 상점에 로랑과 테레즈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캥부인이 몸을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된다. 테레즈와 로랑의 싸움도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조심성이 바닥에 떨어진 어느 날, 라캥부인은 테레즈와 로랑의 언쟁을 통해 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카미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라캥부인은 둘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목요일 모임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을 들어 철자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장은 완성되지 못한다. 그 손가락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라캥부인은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 어떠한 움직임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옥같은 싸움이 반복되고 카미유에 대한 공포가 고조되자 이제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경찰에 밀고하러 가지나 않을까, 검사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지나 않을까. 그러다 거의 동시에 둘의 머리 속에 상대편을 죽여야 이 지옥이 끝나리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테레즈가 준비한 부엌칼을 로랑이 보게된다. 그리고 로랑이 준비한 청산가리가 담긴 질그릇 병을 테레즈가 보게된다.


둘은 서로의 당황한 얼굴에서 은밀한 계획을 읽으면서 서로 가엾게 여기고 서로 무서워했다. 별안간 테레즈와 로랑이 울음을 터트렸다. 감사의 시선을 교환한 뒤, 테레즈와 로랑은 질그릇에 담긴 청산가리를 나눠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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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쫓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학살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에밀 졸라는 1868년 제2판에 이와 같은 서문을 달아 독자와 평론가에게 자연주의 소설의 기초에 대해 辯 하고 있다. 


전통적 문학은 인식으로서의 문학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 플로베르와 졸라가 각각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의도했고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이와 같은 기존의 문학의 결함을 수정하여 문학의 본래적 기능인 인간과 그 삶에 관한 진리를 밝혀내는 문학을 하자는 데 있었다.  

에밀 졸라는 플로베르의 사실주의 문학이론을 발전시켜 자연주의 문학일이론을 발명함과 동시에 그 구체적 예로서 장편소설 <테레즈 라캥>을 창작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그후에도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박이문)

 

욕망과 정념에 두 남녀를 몰아넣어 극단까지 밀어붙인 뒤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불멸의 밤을 선사하여 파멸의 과정에 이르도록 설계한 작가 에밀 졸라. 이 두 남녀를 지켜보는 에밀 졸라는 어찌보면 마조키스트적인 조물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기계적 유물론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자연주의의 소설 이론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의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과학'과 '객관' 이라는 이름 뒤에서 읽히는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183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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