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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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 년 만에 처음이라는 찌는 듯한 6월의 더위가 도시를 집어 삼킨 어느 날. 아내 이르까와 아들 보브까는 오데사로 휴가를 떠났고, 집에는 천문학자인 말랴노프와 고양이 깔럄만 남아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부엌을 서성이던 말랴노프의 머리에 문득 쥬꼬프스끼의 공식이 떠오른다. 이를 실마리로 말랴노프는 최근 진척시키다 막혀버린 연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 그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또다시 외인관광국을 찾는 전화다. 최근 들어 너무 자주 잘못 걸린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그거야 어찌 되었건, 말랴노프의 머리는 여전히 작동을 계속하여 연구를 진척시키고 있었는데, 이번엔 식료품점에서 고급 술과 캐비어 따위를 잔뜩 배달해온다.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말랴노프는 생각을 더욱 진척시켜 마침내 스스로 <M-캐비티> 라 명명할 새로운 이론의 언저리에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왠 아리따운 여인이 말랴노프네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는 이르까의 소개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소개장에 따르면 리뜨까 뽀노마레바라고 했다. 그런데 이르까도 없는 말랴노프의 집에서 그녀는 며칠 묵어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말랴노프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앞집에 사는 물리학자가 말랴노프의 집에 방문한다. 결국 그날 밤 셋은 술을 진탕 마셨고, 연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날, 앞집 물리학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수상쩍은 느낌의 경찰이 찾아와 말랴노프가 범인이라며 한바탕 소란을 떨어댄다. 말랴노프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수상쩍은 경찰은 꼬냑을 반명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뒤, 말랴노프의 집에 동료 과학자가 찾아와 자신들의 연구를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이 있다고 폭로하는데... 말랴노프는 처음에 그 말을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다가 결국 모든 정황이 사실을 가르키고 있음을 깨닫고 경악하고 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지만 이후 계속된 내전으로 고참 볼셰비키들이 대다수 사망한다. 그리고 레닌이 사망한 뒤 스탈린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다. 트로츠키 등 영구혁명을 주장하던 볼셰비키는 모두 축출되고, 결국 살해당한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더욱 증가시켜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 속에서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외에는 문학적 가치가 없다는 테제가 통용된다. 언제나 공상하는 자들이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러한 소련의 문학 토양 속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형 아르까지와 뿔꼬보 관측소의 천체 물리학자인 동생 보리스가 풍자성이 강한 SF 문학을 시도한다. 이들의 시도는 러시아의 반유토피아 문학의 명맥을 되살리는데 한동안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하던 그들이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음은 자명한 이치다. 다분히 소련 사회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섬(69)> 출간 이후, 그들의 소설은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게 된다. 발행부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비평가들이 부정적 평을 쓰기 시작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76)>은 이들 형제의 후기작으로 평온한 현실을 감시하고 있는 권력의 음험함을 그린 수작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68461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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