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2013년 대만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언론은 살인범을 '사갈녀'로 지칭하며 자극적인 보도를 해댔는데, 사건 자체는 극히 단순했다. 79세의 남성 사업가(훙보)와 57세의 여성 대학교수(훙타이)가 단수이허 기슭에서 차례로 시신으로 발견된다. 범인은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자전이라는 이름의 27세  여성이었다. 자전은 단골손님이었던 노부부를 살해한 뒤 은행에서 우리 돈으로 약 1,300만원을 인출했고, 얼마 뒤 경찰에 체포된다. 


작가 핑루는 이 사건에 의문을 갖는다. 기껏해야 1,300만원에 불과한 돈을 차지하기 위해 노부부를 살해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단골 손님이었던 남자와 자전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을까? 판사가 자전에게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호통친 것은 정당한 태도였는가? (판사는 자전에게 속죄하라며 책을 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검사가 아닌 판사가!)


핑루는 메타픽션 기법을 사용하여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다. 핑루는 범행을 결행하기까지의 자전의 행적과 칼에 찔려 죽어가는 훙타이의 회상을 교차시킨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가는 자전, 그리고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훙보. 둘의 회상이 만나는 지점에 79세의 추악한 남성 훙보가 있다.


자전은 어릴 적 아버지가 자살한 뒤 부정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런 자전에게 훙보가 접근한다. 돈이 촉매제가 된다. 그런데 그가 자전에게 쓰는 돈은 아내를 기만하여 얻어낸 돈이다. 두 여성은 훙보라는 곰팡이 같은 인간에게 삶을 잠식 당한 피해자이다. 

어느 순간, 자전은 훙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를 친다. 결혼을 앞둔 자전은 초조했다. 고심 끝에 훙타이를 찾아가 모든 사실을 고백하지만 훙타이는 자신이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기만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훙타이는 훙보가 자전과 같은 여자를 돈으로 사서 조금 즐기는게 뭐 문제냐며 자전을 조롱한다. 죽기 직전, 훙타이는 자신의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연상케 하는 핑루의 <검은 강>은 자전과 훙타이, 두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두 여성의 시선을 편파적으로 조명한다. 남성인 훙보는 죽어 말이 없다. 훙보가 변명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는 것은, 현실이 훙보와 같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균형을 위해서, 소설에선 훙보가 침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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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 그게 내 업무 중 하나다. 봉사활동 하러 갈 사람을 모으고, 지원해줄 가정을 선정하고, 하루 동안 일을 해준다. 도배나 장판을 할 수 있게 돈을 지원해 주고, 세간살이들을 옮기거나 닦아준다. 오늘 봉사활동 하러 간 집엔 여자만 넷이었다. 다섯 달 된 아이와 다섯 살 아이,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곤고한 살림살이 보다,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할 두 아이가 안쓰러웠다. 나이 먹나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26602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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