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하는 요리사
뤽 랑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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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스트레인지웨이즈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죄수들은 2인용 감방에서 네다섯명이 함께 지냈고,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을 갇혀 있어야 했다. 샤워는 일주일에 한번 뿐이었고, 음식은 꿀꿀이죽과 진배 없었다. 대처가 집권하던 시기의 일이었다.

죄수들은 담벼락 밖으로 벽돌과 나사못 따위들을 던지며 저항했고, 교도소 주변에 위치한 집들의 정원과 지붕이 파손됐다. 피해를 입은 집 중에는 스트레인지웨이즈 교도소의 요리사 헨리 블레인의 집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교도소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해 기자들에게 10파운드씩 받고 출입을 허가해주고 있었다. 

사실 헨리 블레인은 교도소에 오기 전 배에서 요리를 했다. 당시 그는 농축 산화마그네슘으로 음식에 장난질을 쳐 선원들의 뱃속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꼈다. 그러던 그가 교도소에 취직을 했으니, 이번엔 죄수들의 위장을 괴롭히는 데 골몰했을 것은 뻔한 이치다. 어쩌면 폭동의 원인은 헨리 블레인의 음식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죄수들이 파손된 이웃들의 집에 대해 사과하는 의미로 자신들이 만든 종이꽃들을 담 밖으로 뿌리면서도, '고문하는 요리사 헨리 블레인을 위한 꽃은 아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자 헨리 블레인이야 말로 이번 폭동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헨리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신은 요리를 했을 뿐이라고, 도저히 못 먹을 저급한 식재료를 공급한 것은 윗선의 책임이라고 항변한다. 또한, 화장실 가기 귀찮아 식당 구석 아무데나 오줌을 갈긴 거지같은 직원을 채용한 것도 자신이 아니었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인터뷰가 방송을 타자 분위기가 반전된다. 교도행정의 부조리와 불쌍한 죄수들의 처지가 부각되면서 국민들의 동정론이 일게 된 것이다. 죄수들 역시 항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유쾌한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여론은 더욱 죄수들 쪽으로 기울었다. 헨리는 얼떨결에 죄수들을 후원하는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까지 맡게 된다.

아무도 헨리가 두 명의 부인과 한 명의 정부, 그리고 목격자 한 명을 살해해 자기집 정원에다 파묻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물론, 최근 사귄 <앙글리칸 트리뷴>의 노처녀 기자 루이즈 베이커가 숫처녀 딱지를 떼자마자 색정광으로 변해 목을 졸라달라고 애원하는 지경에 이르자 죽여버렸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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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랑은 1956년 파리 출생으로 철학을 전공한 뒤 퐁투아즈의 세르즈공립미술학교에서 미학과 예술사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32세 때 첫 작품 <수평선으로의 여행(88)>을 출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뒤, 추리소설 <리버풀 밀물(91)>, <분노(95)>를 차례로 펴내며 명성을 얻었다.

<고문하는 요리사>는 1998년 작품으로 원제는 <천육백 개의 배(腹)>이다. 1990년 4월 영국 맨체스터의 스트레인지웨이즈에서 일어났던 교도소 폭동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유머인데, 대처가 펼친 신자유주의가 공적 영역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1998년 '고등학생들이 뽑은 콩쿠르 상'을 수상하였는데, 논쟁적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것 같다. 얼핏 마틴 에이미스의 유머가 연상되는데, 마틴 에이미스 보다는 어둡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43757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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