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박정규 지음 / 문이당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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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것저것 막 걸터듬으면서 전개된다. 간략히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주인공 정혁이 IMF로 명예퇴직을 하고 실업자가 된다. 정혁의 아내는 병사했고 슬하에 남매가 있으니 생계가 막막해야 정상이겠으나, 작가는 부잣집 처가를 배치하여 곤란을 해소해준다. 

비록 직업은 없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없으니 주인공으로서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마침 장인이 뜬금없이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다. 그가 서울역 노숙자가 된 것도 아닐진데, 정혁은 추레한 모습으로 서울역과 용산역을 돌며 IMF로 인해 피폐해진 민중의 삶을 관찰한다. 

장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장인의 서랍을 뒤지던 정혁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죽음>이라는 육필원고를 찾아낸다. (이 원고 내용이 또 가히 대하소설급이다)


뭔가 밋밋하게 돌아가는 소설 스토리가 맘에 안 드는지 작가는 정혁을 까페 트레네라는 곳으로 이동시켜 지연이라는 삼십대 후반의 미모가 출중한 마담과 조우시킨다. 지연은 두 번 만난 정혁에게 몸이 달아 집으로 유인하여 곧 교접을 시도하지만 정혁의 신체가 정신과 따로 놀아 교접은 실패하고, 여기서 지연의 기구한 스토리가 한바탕 펼쳐진다.

지연이랑 예전에 프랑스에서 짝짜꿍 하던 남친이 간첩 조작 비슷한 것으로 비극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지연의 아버지가 안기부 간부! 아버지는 지연의 남친이 그렇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아 폐인으로 생을 마감!


지연과의 밋밋한 러브라인에 양념을 치는 의미로 처제 혜인도 정혁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망상을 현실화 시킨 작가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죽음> 떡밥을 풀어헤친다.

알고보니 정혁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일제 앞잡이로 오인받았고, 아버지는 정치깡패 노릇을 하다 뒤늦게 아버지의 유지를 알고 참회하다 폐인이 되어버리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혁의 장인이 구명운동을 벌이다가 끝내 실패하자 위와 같은 기록을 남긴 것. 


참고로 장인은 행려병자 행색으로 발견되어 끝내 죽는데 유서에 따르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은(수십억대임) 사회에 환원! 따를 필요는 없지만 장모와 딸 혜인, 사위 정혁은 흔쾌이 동의! 

  

갑자기 지연이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게되어 독일로 떠나버리고, 거기까지 지연을 찾아간 정혁과 지연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뒤 동반귀국하지만.... 공항에 마중나온 혜인을 본 눈치빠른 지연은 그길로 입산하여 비구니가 되고! (뭐?) 정혁도 시골가서 농사나 짓겠다며 막노동판을 전전, 체력을 키우며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적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시대에 대한 작가의 부채의식은 진지한 것으로 보인다. 작중 정혁이 지연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에 남아 적어 놓는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들은 자신의 비굴함을 잊기 위해 일생동안 자책의 곡괭이질을 해대며, 그 고통을 느낀 만큼 자신이 면죄되었다고 믿고 싶어 하거나 혹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다른 오류를 저지르게 마련이지요. 

 

책날개에 수록된 정보에 따르면 작가 박정규는 1946년 서울 출생으로 1991년 <문학정신>에 단편소설 <니느웨로 가는 길>로 등단하였고, 소설집 <로암미들의 겨울>, 장편소설 <흔적>이 있다.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237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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