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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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북촌 - 이혜경>

 

북촌 한옥에 여자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과 같이 숨어든다. 남자는 얼마 전 믿었던 친구 J에게 사기를 당해 거처가 마땅치 않던 차에 또 다른 친구 S가 임시로 빌려준 집에 살고 있었다. 그곳이 북촌 한옥이었다. 

집 부근엔 경사진 땅을 이용해 지은 집이 하나 있었는데, 창 안으로 돌해태, 큰 중국풍 도자기, 수동식 타자기와 우주소년 아톰 등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이유인지 사람은 통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자신을 버렸던 돈 많은 남자에게 돌아가기 위해 '나'를 속이기 시작하고,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전화번호와 문자들을 지우던 '나'는 여자의 사진만은 남겨둔다. 언제든 지울 수 있을 거라 믿으며...


<1968년의 만우절 - 하성란>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의사가 사망선고를 한 뒤 두둥실 떠오르던 영혼이 다시 아버지의 몸으로 돌아와 부활하곤 했다. 그동안 두 여동생은 얼굴이나 비추고 돌아갈 뿐이었고, '나'는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병간호에 불려다녔다. 남편은 영화판을 기웃대고 있었지만 가망 없다는 사실을 본인만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이혼은 복잡할 것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곧잘 남산으로 '나'를 데려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어쩌면 1968년 만우절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한 거짓말 덕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날 사랑한다고 말한 직후 돌아선 아버지가 반지를 꺼낸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벽에 대고 오줌을 내갈겼을 뿐이다. 

 

<빈 찻잔 놓기 - 권여선>

 

망원동 M연립립에 살던 연선배가 강변 H 오피스텔로 이사한다. 그녀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은 연선배의 암시에 의한 착각이었을 뿐이고, '나'는 장기판의 졸에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 - 김숨>

 

'오늘 밤 그들은 그곳으로 갈 거라더군' 이라는 뜬금없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남편, 아들이 뇌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악착같이 전기세와 수도세를 받아가고 전세비를 올려달라는 할머니(물론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을?), 약빠른 302호 여자(하지만 통닭을 가로챈 적 있다).

처갓집에 아쉬운 소리를 해 돈을 구하려 애를 쓰지만 여의치가 않고, 뇌수술을 해서 어딘가 이상한 주인집 아들은 남편의 부재에 대해 '어쩌면 오늘 밤 남편이 그들과 함께 그곳에 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죽음의 도로 - 강영숙>

 

K와 헤어지고, 자살하고 싶은 '나'는 동창 H로부터 볼리비아의 융가스로드에 관해 듣는다. 대출을 독촉하는 도서관에 <금발의 초원> DVD를 돌려줄 수 없는 사정이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자살하기 위해 강변북로로 차를 몰고간 '나'는, 그러나, 결행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메일은 발신전용 주소이므로 반송한다며 되돌아와 있었고, DVD는 장식장에서 발견된다.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 이신조>

 

소녀이기도 하고, 계집애이기도 하고, 여자아이이기도 한, 언제까지나 열세 살이 될 수 없는, 사실은 이미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누이가 상계 8동, 상계 9동, 이마트 은평점, 지하철 6호선 응암역과 1호선 신도림역을 떠돌면서 동생을 찾아 헤맨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 - 윤성희>

 

십이년 전 지구 저편으로 이민간 Y가 K에게 전화를 건다. 할머니가 위독하닥다고, 너희들을 보고싶어한다고. 십이년간 각자의 삶을 살던 J, K, L, S, P, W들이 캠코더 앞으로 불려나온다.


<크림색 소파의 방 - 편혜영>

 

소심한 박이 아내와 어린 아이를 차에 태우고 국도를 통해 신혼집으로 가고 있다. 비가 내리고, 와이퍼가 고장나고, 일단의 불량배들을 만난다. 잘 피해온 줄 알았는데 제법 큰 웅덩이에 빠졌다.


<벌레들 - 김애란>

 

장미빌라에는 끊임없이 벌레들이 출몰했다. 착한 남편은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서 '나'의 불평에 공감할 기력이 어없었다. 어느 날, 반지 케이스를 재개발 구역에 떨어뜨린 '나'는 폐허가 된 그곳으로 내려가고, 때마침 산통이 시작된다. '나'는 이 출산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 정말이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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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소설집은 될 수 있으면 사지 않는다. 작가가 쓰고 싶은 마음이 차고 남쳐서 쓴 소설들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주어진 테마로 소설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쓴 글이라면 어떻겠는가. '헤치운다'는 느낌으로 '숙제 하듯' 할 우려가 크지 않을까. 

하지만 '서울' 이라는 테마가 주는 느낌에 끌려 이번엔 그 규칙을 어겼는데, 실망스럽다. 써야해서 쓴 소설들이 그렇듯 작위적이고, 도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2009년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당시 분위기 때문인지 소설들의 정조가 무척이나 어둡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1547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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