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장


고속도로터미널 화장실에서 소녀가 아이를 낳는다. 누군가 소녀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를 하자 곧 구급차가 오고 소녀가 실려간다. 난리통에 아이는 돼지엄마에게 건네진다. 돼지엄마는 아이에게 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아들처럼 키운다.

돼지엄마와 제이가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은 형사였다. 형사에게는 제이와 동갑인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동규였다. 동규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아서 말을 못했다. 동규와 제이는 함께 놀았는데, 동규가 말을 못하는 것에 대해 제이는 별로 불편해하지 않았다. 어떨 땐 제이가 동규의 심중을 미리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었다. 둘은 돼지엄마가 주방을 맡아보는 룸싸롱 창고 따위를 놀이터 삼아 나름대로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낸다.

사학년 때 동규는 갑자기 말을 하게 되고, 일반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런 뒤 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진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동규가 이사간 뒤에 둘 사이는 더 서먹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이 제이의 집에 가보라고 한다. 제이가 학교를 계속 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이가 사는 동네에 가보니, 그곳은 재개발 때문에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돼지엄마는 뽕에 취해 집을 나가버렸고, 제이만 홀로 남아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제이는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세워놓고 악마를 잡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는 동규의 뒤를 밟은 사회복지사 등에게 잡혀 대전 논산의 보육시설로 끌려간다.


2장


제이가 수용된 보육시설의 뒷편에는 개사육장과 버섯농장이 있었다. 티켓다방의 아가씨가 두 곳을 오가며 몸과 커피를 팔았다. 그러므로 둘은 동서지간이었겠지만, 사이가 나빴다.

어느 날, 개사육장쪽에 큰 불이 난다. 개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졌고, 개장수는 불길을 빠져나오다 차에 치인다. 불이 잦아든 뒤, 버섯농장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버섯농장 주인은 온몸이 난자당한 채였고, 티켓다방 아가씨는 교살당한 것 같았다.

개장수들이 도망친 개를 잡아가기 위해 트럭을 몰고 나타난다. 제이는 트럭 타이어를 모조리 펑크낸다. 성난 개장수들에게 잡혀 온 제이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서 설파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아직 체계화 되지 못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얼마 뒤 제이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간다. 처음엔 대학로 부근을 얼쩡거렸다. 거기서 아버지가 영화감독인 목란을 만난다. 목란은 제이에게 호감을 느낀다.

목란과 헤어진 제이는 PC방에서 만난 질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가출한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여자아이들이 몸을 팔아 푼돈을 벌어오면 그 돈으로 술을 사다 마신 뒤 밤에는 되는대로 짝을 지어 난교를 벌이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제이는 그곳에서 총각딱지를 뗀 뒤 다른 애 하나를 맥주병으로 작살낸 후 독립한다.


3장


제이가 동규의 전화기로 목란에게 전화를 건 것이 인연이 되어 셋이 어울리게 된다. 그 당시 제이는 남이 버린 책들을 읽고, 생쌀을 씹어 주린 배를 채움으로써 음식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었으며, 키가 훌쩍 커서 어른처럼 보였다. 제이는 자신의 영혼이 다른 물체에 스며드는 경험을 한다고 뇌까렸는데 어찌보면 정말 그런 것처럼 보였다. 제이는 숫자에 의미부여를 하여 자신의 행동준칙을 정하는 등 일면 신비로운 면도 보였다.

동규가 새엄마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다 가출한 뒤 셋은 원효대교 아래 폭주족 무리와 어울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는 오토바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무리를 이끌게 된다. 목란의 전 남자친구 태주 역시 큰 무리를 이끌고 있었지만 둘 사이의 경쟁관계는 형성되지 못한다. 제이가 워낙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태도로 아이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목란과 동규는 제이에게 열광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정쩡한 위치가 되고 만다. 제이와 가장 친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둘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제이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동규는 목란에게 고백하지만, 목란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목란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쩌면 제이도 목란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4장


박승태는 할리타는 경찰로 유명했다. 그는 어렸을 적에 누군가에게 동성애적 성향을 간파당해 강간 비슷하게 당한 뒤, 자신도 어린 남자애들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게 된다.

바야흐로 폭주족들이 3.1절과 8.15 광복절에 대폭주를 하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자 박승태에게 대폭주를 잠재우고 아이들을 검거하는 임무가 떨어진다. 박승태는 태주를 힘으로 굴복시켜 강간한 뒤 자신의 끄나풀로 삼고, 동규 역시 자신의 정보원으로 둔다.

한편 제이의 무리는 점점 규모가 커졌고 행동 양식도 기존의 폭주족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제이는 폭주의 진정한 의미를 '자신들이 화가 나 있음을 온세상에 알리는 행위'로 규정하고, 경찰서를 타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경찰정은 박승태로 하여금 어느정도 희생을 각오하고 강경진압을 지시한다.

대폭주가 시작되자 경찰은 범퍼로 아이들을 박는 것도 서슴지 않고 몰아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가시가 박힌 바리케이트로 아이들을 몰아 넣는다. 제이는 바리케이트를 무서워 하지 않고 질주했다. 질주의 끝에, 제이가 다리 난간 너머로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지도 모른다. 당시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이가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 날 목란은 한쪽 눈을 실명한다.


이상의 이야기는 소설 쓰는 '내'가 한때 연인이었던 Y로부터 동규를 소개받아 전해들은 것을 옮겨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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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90년대 중반 매우 개성있는 글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그의 글은 젊은 감성에 세련미를 더했으며, 사유의 깊이에 있어서도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특한 감성과 세련미는 사라지고 노련한 잔재주와 기교남 남은 글들이 발표되고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잔재주로 어찌어찌 마무리는 했지만 과거에 자신이 쓴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서머싯 몸의 <면도날>과 모파상의 <벨아미>를 연상시키는 제이는 사실 한꺼풀 벗겨놓으면 별 것 없는 인물이다. 길거리에서 남이 버린 책을 주워 채워넣은 난잡한 지식, 악마를 잡는다느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느니 하는 신비로운 언사, 자신의 영혼이 물체에 스며들어 고통을 함께 한다는 발언 등 갖은 똥폼은 다 잡도록 하지만 작가는 거기서 딱히 더 나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니면 되게 귀찮아서 그냥 얼버무리는 느낌도 든다) 

아이들이 제이에게 열광한다는 설정이지만, 그 아이들이 제이에게 매료된 이유가 뭔지 갸우뚱한 상황이 반복되고, 선택적 함구증으로 한때는 영혼을 교감했다는 설정의 동규도 인물을 입체적으로 굴려가기 어려우니(혹은 귀찮으니) 나중엔 자살로 몰아버린다.

그야말로 등장인물들에게 후까시만 잔뜩 줬다가 도저히 제어가 안되니(혹은 귀찮으니) 나중엔 모두 죽는 걸로 처리해 버린 뒤 멋적었는지 '들은 얘기' 운운해버리며 손쉬운 도피처를 찾아가버리는데 소설 전체가 반칙의 연속인 느낌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매우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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