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쏜살 문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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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보물섬』 이라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 소설가 '스티븐슨'에겐 작가의 행복한 명성만 있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던 그는 마흔넷으로 요절하기까지 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작품을 골몰하고 집필하였다. 활동적인 삶을 갈망하던 그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뜨거운 삶을 이어나갔다. 그래서였을까. 국내 첫 번역된 그의 에세이집에선 행복과 죽음에 관한 언급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의 삶과 연결해 생각하면 책에 등장하는 행복과 죽음의 상반된 이미지의 연결고리를 파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을 위하여 Virginibus Puerisque'라는 책의 원제도, 인생의 '후배'들을 염려하고 행복의 관해 전하는 작가의 말이 왠지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책에는 표제작인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을 비롯하여, 다양한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진정한 행복을 찾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행복을 위한 삶과 죽음, 청춘과 노년, 사랑과 결혼, 여행의 맛,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철학적 사유와 고뇌가 담긴 글은 그 길이가 아무리 짧다고 하더라도 읽기 쉽지는 않으나, 다양한 은유적 표현과 강렬하고 매력적인 스티븐슨의 문체는 소중한 글들을 깊이 음미하게 한다.

 

그가 전하는 행복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게으름'인데, (예상했을지 모르나) 이는 아무것도 안 하며 빈둥대는 개념이 아니다. 지나치게 근면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지식보다는 지혜를, 소유보단 진정 원하는 것을, 극도의 분주함보다는 여유로움을,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시스템을 벗어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라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이들에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나 젊은이의 패기와 용기가 맞붙어 발휘되는 것을 상상하면 그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을 보고 "그때 용기가 더 있었더라면"이라는 후회 섞인 말로 잠깐 지난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고 아쉬움에만 잠겨 있는 것은 작가의 바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혜와 지성을 찾고, 고정된 일상과 사회에서 벗어나 게으른 행복을 찾는 것. 이 작은 책 속에 꼭꼭 담긴 작가의 마음이 내게 전해준 용기에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는 바닥에 물이 새는 배를 타고 거칠고 위험한 바다를 항해한다. 해군의 구슬픈 옛 노래에서 한 구절을 따오면, 우리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고 마른 땅을 결코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늙거나 젊거나 우리 모두 마지막 유람중이다. 담배 한 대를 가진 선원이 있다면 출발하기 전에 부디 한 모금씩 돌려 피우기로 하자!" (50쪽, 심술궂은 노년과 청춘)

 

 

 

 

23쪽, 엘도라도
삶이 행복할 때 우리는 하나가 다른 하나로 끝없이 이어지는 상승 음계에서 살아간다. 앞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우리는 작은 행성에서 보잘것없는 일에 빠져 살아가고 짧은 기간 너머로 영속하지 못하더라도, 별처럼 도달할 수 없는 희망을 품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희망의 시간을 늘려 가게 되어 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의 문제이지 어떻게 끝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소유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78쪽, 사랑과 결혼의 미로
"아, 잠시만 죽어 있을 수 있다면!" 이라는 톰 소여의 열망을 누구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는 "해적질을 계속하는 한은 자신의 행동이 절도죄라는 오명을 다시 쓰지 않으리라."라는 두 해적의 결심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소년 시절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소년기는 끝났고 (글쎄, 언제 끝났을까?), 스무 살에 끝나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스물다섯에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서른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도 그 목가적 시기의 한가운데 있을지 모른다."

145쪽, 도보 여행
우리는 너무 바쁘고, 실현해야 할 먼 장래의 계획이 너무 많고, 상상의 성에 착수하여 자갈땅 위에 견고하고 살 만한 저택을 세워야 하므로, 생각의 땅과 허영의 언덕으로 유람을 떠날 시간이 없다. 깍지를 끼고 밤새 난로 앞에 앉아 있으면 실로 시간이 달라진다. 그 시간을 보내며 아무 불만 없이 생각에 잠겨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의 세계가 달라진다

195쪽, 가스등을 위한 간청
이 별이 그것의 원형만큼 안정적이지 않고 그만큼 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 광채는 최고의 밀랍 양초만큼 우아하지 않다. 그러나 가스등은 더 가까이 있으므로 목성보다 실용적이고 유용하다. 또한 가스등이 창공에서 필요에 따라 하나씩 켜지는 별처럼 고유하게 자발적으로 빛을 발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스등을 켜는 점등원은 매일 저녁 부리나케 움직였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다. 이렇게 천체의 정확성을 흉내 내려는 사람의 모습은 근사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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