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고 나서

 

 요즘엔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라든지,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라든지, 육체로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줄곧 사들이는 중인데, 이 책도 그 관심의 연장선으로 내게 들어왔다. '육체 탐구'라 하면 모든 오감을 총동원하여 어떤 일과, 사건과 때로는 찰나의 순간까지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육체 탐구'라는 단어와 깊게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초반의 강렬한 기억을 빼놓고서는. 오히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쭉 나열한 에세이에 가깝다. 간혹 육체의 고통과 육체가 느끼는 사랑 같은 게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육체 탐구'라는 말을 붙였느냐 하면은 말이지. 아마도 이 '김현진'이라는 에세이스트의 '글을 쓰는 방식'에 있는듯하다.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는 책에서 처음 만난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당당하고 솔직하게 청춘을 대변하고 있었고 그 책의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약간의 친절함과 편지글의 대상이 대상이니만큼 약간의 공손함을 갖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음을 넘어 다소 거친 듯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육체파 에세이스트' 혹은 '육체파 칼럼니스트'라고 불린다. 몸으로 뛰고 실제로 겪어보며, 글을 쓰기 위하여 단식까지도 불사한다. 파업 현장에 뛰어들어 플랜카드를 들고 온몸으로 맞서기도 한다. (그것은 물론 글감 때문이기보다도, 그의 관심이 반은 들어가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발로 뛰고 얻은 글감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그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재탄생한다. 녹즙을 배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도시 빈민, 자칭 타칭 미스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음성지원'이 되는 듯 하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지만 왠지 머리를 땡땡, 하고 울리게 하는 외침 같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시체'가 등장하는 책의 시작은 못내 당혹스럽다. 너무도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초반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뒤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작가가 쓰는 글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고부터다! 툭툭 뱉는 말 속에서 느껴지는 위트,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 그래서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아픔과 슬픔. 온몸을 부딪치며 살아온 그의 일상이 힘들지라도, 그의 신념은 무겁게 버티면서 자본주의 사회 속의 비정함과 그 비정함을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겪는 부정함을 그려낸다. 특히나 인상 깊은 것은 2008년 MB 정권의 시위를 <안티고네>에 비유하여 묘사한 장면과 자칭타칭 '미스김'의 일상을 3인칭으로 그려낸 장면들이다. 전자는 아프고 분노가 치밀며, 후자는 말그대로 '웃프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 아니 대다수가 보기에, 나는 30대 초반에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준으로 보면 얼마든지 책을 보고 마음대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는 거래 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 아, 왜 나는 좋은 회사원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아마 그건 내가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며 몸부림친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경쟁 시대에서,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을 때 즐기지 못했던 가을 정취 속을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낙오자다, 또한 하자품이다. 그리고 아주 낭만적인 낙오자다.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52쪽) 

 

  "알고 있어요? 이렇게들 살아요."하고 보여주는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또 다른 자신에게 살아갈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쿨한 위로를 건네준다. 그의 육체는 힘들지라도, 그는 분명 뜨거운 삶을 살고 있다. 직설적인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것도 이 '살아가는 힘'에 있다. 굳세어라, 미스 김! 굳세어라, 또 다른 미스 김이여!

 

 

 

Written by. 리니

한국에세이, 칼럼/ 사회 비평/ 노동, 도시빈민의 에세이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더 구질구질한 기분이 드는 건, 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들이 그 고함도 훨씬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는 것이다. 너 돈 없지, 당장 급전 빌려라! 애들 수학 학원 보내라! 편한 알바 안 해볼래? 싼값에 아가씨 끼고 술 마셔라! 그러다 보니 아아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리를 평생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돈 있으면 이 꼴을 안 볼 것이 아닌가. 돈 있으면 회사 바로 앞으로 이사 가서 광고 안 볼 수 있고, 돈 빌려가라는 광고지 꽂힌 지하철 탈 일이 없어서 그 고함 소리를 안 들어도 될 게 아닌가. 돈이란 건 좋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나쁜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어서 다들 돈을 좋아하는 거였다. 다들 사치하고 싶어서, 좋은 걸 누리고 싶어서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하고 뒤늦게 아주 절절히 깨닫고야 말았다. (39쪽)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누구 탓도 할 수 없고 이제 나를 때릴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그런데 내 영혼이라는 년은, 천장 어디쯤에 붙어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어, 하고 되풀이하면서. (83쪽)

사람들이 언제 `멀쩡한 일 가질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짜증이 와락 치민다. 멀쩡한 일과 안 멀쩡한 일의 구분은 뭐고 녹즙 배달하는 건 어디가 어떻게 안 멀쩡한 일이며 도대체 어느 정도로 멀쩡해야 멀쩡한 일 취급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며칠 전 프로야구 우승 결과를 가지고 내기하자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대강 짐작이 갔다. 내기를 해서 자기가 이기면 한 달 녹즙 공짜로 해달란다. 미스 김이 이기면 어떻게 할까 묻기에 그럼 나 대신 한달 배달하라고 했더니 사람 시간이라는 게 단가가 있는 건데 너무하다면서 자신은 단가가 비싼 사람이니 한 달 공짜 녹즙 대 자신이 하루 대신 배달하는 게 공평하단다. 녹즙병으로 때려주고 싶은 사람 명단에 이렇게 한 명이 추가되었다. 사람 시간 단가 운운하는 건 그 사람의 값을 매기겠다는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내 시간은 네 시간보다 몇십 배 비싸다는 이야기를 너무 당당하게 하니 미스 김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92쪽)

그런 대접을 당하고 싶지 않았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일 할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일 할 사람들의 일, 남의 일 이렇게 칼같이 줄을 그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그런 일 할 사람, 아닌 사람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한 바로 그 잣대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시장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사람 사는 질서라고 칼같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처럼 시장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런 분들과는 마구 척지고 싶다. 있는 대로 척지고 싶다. 평생 척지고 싶다. 만나봤자 서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확실하게 척지고 사는 게 피차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27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