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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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히어 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였다"

 

 

 

  책을 읽고 나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어 있고,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 좋은 글들이 보인다. 하지만 내게 그는 항상 관심 밖이었다. 표지 탓일까, 바나나라는 다소 가볍고 귀여운 필명 때문일까. 남성적이고 힘 있는 작품들만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작가였다. 다행히, 지금은 다양한 작품들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어서, 깊게 박혀버린 나쁜 편견을 뒤로 한 채 읽어보기로 했다.

 

 아, 사실은 '편견을 타파하자'는 포부보다는, 최근 '죽음'에 대한 책들을 부쩍 읽고 있던 찰나에 이 책의 내용을 보게 된 탓도 있었다. 거의 연속적으로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과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었다. 그리고 이어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스위트 히어 애프터』다. 셋 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과 느낌은 굉장히 다르다. 일단은 '죽음에 대하여' 냉철하게 말해보자. 우리는 결국 '죽음'으로 살려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눈을 감는 순간이 두렵지만, 눈을 감는 순간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모두가 철저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생애 절대로 알지 못할 '죽음'에 대해 궁금해한다. 하지만 그 궁금증과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게 한다. 뜻밖에 먼 사이의 사람들에게도…….

 

 『스위트 히어 애프터』는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 문턱에 갔다 온 여자를 그리고 있다. 남자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자신은 기적같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신비스러운 (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체험 이후, 돌아온 생에서는 세상을 떠도는 '혼'들을 본다. 한마디로 말해서 '죽었다 살아나서 귀신을 보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남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단연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의 섬세한 손길일 것이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삶과 죽음, 격하디격한 체험을 오로라의 신비스러운 색채로 표현하고, 같은 슬픔을 공유한 '죽은 남자친구와의 가족'과는 어느새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감싼다. 그리고 편안하게 자신을 감싸주는 친구들, 단골 바의 '신가키' 씨, 그리고 새롭게 자신과 만난 '아타루'를 보게 된다. 세상을 떠도는 귀신들의 모습에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슬픔을 느낀다. 그렇게, 주인공 사요코는 지금 뛰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와 그것을 뛰게 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강아지가 죽었을 때, 그렇게 슬퍼해서는 안 되는 거였네. 슬퍼하면 슬픈 색이 여기 하늘에, 공기에 흘러들고 만다. 그렇게 실감했다. 우리 참 즐거웠지, 시간을 공유했고 같이 산책도 했고, 정말 잘 지냈어.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였다. (16쪽)

 

 일본 소설 특유의 담담함과 물기 어린 슬픔이 이 소설 속에서도 잔잔히 전해져 온다. 순수하면서도 담백한 그녀의 언어들이 가슴을 어루만진다. 나는 뜬금없이 그 담백한 언어 속에서 그녀의 강아지에 감정을 이입해서 울컥하고 만다. 그러나 잠시 뒤에 보니 이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제대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기억의 공유와 인연,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였다." 언제까지나 "사랑하는 이여, 내게 돌아오기를." 하며 울부짖겠지만, 그 인연을 소중히 했다면, 사랑했다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하려면 나는 오늘을 더욱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겠다. 먼 훗날 기억할 소중한 추억을 위해서.

 

 

 

 

 

Written by. 리니

일본 소설/ 힐링 소설/ 죽음, 이별, 위로 

 

 

그 세계의 하늘은 언제나 오로라처럼, 무지개처럼 신비로운 색이었다.

모든 것이 아침이나 저녁노을처럼, 생명의 반짝임으로 은근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맑고 상쾌한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살랑 스치고 지나가 나무들이 흔들리면, 솜털이 바람에 날리듯 뭔지 모를 반짝이는 것이 사방으로 화르르 퍼졌다. 그 풍경은 만화경처럼 매일 모양이 바뀌어 며칠을 두고 봐도 싫증 나지 않았다. 정말 아름답네, 하고 생각했다. (16쪽)

이제는 만날 때마다 서로가 눈물을 참지는 않는다. 울지 않기 위해 참거나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당시처럼 누군가가 괜찮으면 누군가가 엉망이어서, 견디지 못하고 교대로 오열하지도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입장에서 힘겹게 쌓아 온 시간을 서로가 차분하게 나눌 뿐이다. (25쪽)

영혼에 상처받고, 영혼으로 치유되는 이상한 날들.

내가 방긋 웃어도, 그녀는 별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고, 나와 거리를 똑같은 것으로 인정해주고, 그런 상태로 방긋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나는 자신이 세계와 반듯하게 하나가 된 것처럼 여겨졌다. 궁지에 몰려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거야, 잘 섞여 있어, 대기에 녹아 있을 수 있어. 그렇게 안심할 수 있었다. (60쪽)

아타루 씨가 컵도 두 개 들고 있기에, 우리 둘은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제 먹고 남은 마늘 바게트를 조금씩 먹으면서, 아침 해는 어느 거리에도 고루 아름답고 하얀 빛을 뿌리고, 온갖 것을 싹 쓸어 어제의 세계로 가져갔다. 또 아침이 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얼마나 꿈같은 시스템인가. 인간이 제아무리 대단한 사고를 한다 한들, 여기까지는 따라올 수 없다. 억지로 밝게 하는 것 외에는, 모든 일을 리셋하거나 백지로 돌릴 방법은 없다. 이 흐름에 올라 있으면 생명이 있는 한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 태양도 얼마나 굉장한지 모르겠다. 감동하게 된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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