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더 스토어』 벤틀리 리틀 / 황금가지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장 현실적인 공포

 

 

 

 

  책을 읽고 나서

 

 

동네 상권이 몰락하는 것은 어제 일만이 아닙니다. 조그만 슈퍼들은 문을 닫고, 재래시장의 발길이 끊기고, 대기업의 브랜드 편의점이 놀라운 속도로 거리를 점령해갑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창업했던 소담스러운 식당은 기업의 손길로 만들어진 대형 음식점 옆에서 밀리고 밀리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그렇습니다.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던 작은 서점은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밀려 근근이 삶을 이어가다가 문을 닫곤 합니다. 예전에 제가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서점도, 최근에 지나가다 보니 PC방으로 바뀌어 있던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착잡함이 든 기억이 있지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 속에서도 우리는 딱히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하진 않습니다. 아니, 바꿔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느샌가 잊혀져 가죠. 개인이 살기 바쁘고, 그것들이 편리하기 때문이죠. 대형 마트는 다양한 물건과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들이 있습니다. 주차도 편리하고 포인트도 쌓입니다. 대형 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좀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죠. '대형 마트에는 시계가 없다'고요. 요즘이야 다들 휴대폰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없는 대형마트에서 우리는 가끔 눈이 벌게지도록 충동구매를 합니다. 이것도 할인, 저것도 할인,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판촉행사 소리, 좋은 상품을 누구보다 빨리 사려고 길게 늘어진 줄…… 끝까지 소비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덫에 걸려있는 것 같기도 하죠.

 

대중들은 언제나 소상공인과 미국의 개척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들은 동네 구멍가게가 없어졌다고 한탄하고 커다란 기업체가 비인격적이고 대기업이 과잉이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그들은 서비스보다 편리함을 선택했다. 질보다 가격을 골랐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의리나, 공동체의 진정성 같은 것은 없었다. 이제 이 읍은 더 스토어, 뉴먼 킹과 그의 수백만 달러 짜리 회사의 편을 들고 있었다. 

 

 『더 스토어』는 이런 사회 현실을 공포, 호러 장르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공포나 호러를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책을 펼쳤던 이유는 거대 자본이 한 마을을 둘러싸 마치 흡혈귀처럼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을 어떻게 소름 끼치게 표현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고도 파격적인 설정의 『더 스토어』는 첫판부터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 '더 스토어'라는 마트의 입점이 결정 납니다. 그리고 거대 자본 속에서 도시는 그들, 더 스토어에게 건설과 그 이후의 모든 것들에 예외 사항을 두며, '어서 오세요' 하며 반기게 됩니다. 한 가족의 가장인 주인공이 사랑했던 마을의 길은 '더 스토어' 자본 속에 흔적 없이 덮이게 되고, 부지의 주변에 동물들이 어떤 상해도 없이 죽어 있는 이상 현상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도 연출합니다. 그리고 '더 스토어'가 오픈하자, 마을의 분위기는 조금 바뀌게 됩니다. 익숙지 못한 대형 마트를 극구 반대했던 마을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곳이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상품에 홀려 상품을 신 나게 구매합니다. 청소년들은 일자리가 생겨 기쁘게 지원서를 냅니다. 그러나 그 뒤에서 '더 스토어'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었죠. 두 딸이 모두 그곳에서 일하게 되고 위험성과 괴상망측한 상황을 접한 주인공에게 '더 스토어'의 문제는 더욱 가까이로 다가오게 됩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디스토피아의 공간 '더 스토어'와 똑같지는 않지만, 충분히 연상 가능한 거대 자본의 위협이 맞물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은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오싹합니다. 분명히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이며 현실에선 '설마' 있을법하지 않은 일들인데, 묘하게 공감 가면서 현실에서 자행되는 모든 일을 연상하게 한다고 할까요.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을 비판하고 호러 장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소설은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냅니다. (그 과정에서 선정적인 설정이나 장면들이 등장하여 공포는 더욱 극대화됩니다) 다소 거창한 소재와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 소설의 끝 부분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사회적 문제와 공포가 적당히 어우러진 색다른 소설을 만나 참 좋았습니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장르문학/ 공포, 호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조깅을 멈췄다. 살얼음이 언 아스팔트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트레일러 공원을 지나쳐 달려 주니퍼 주거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니퍼에 산 10년동안 조깅 루트를 바꾸지 않았다. 반쯤은 습관 때문이고, 반쯤은 일부러 그랬다. 그는 일과를 멋대로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그대로 계속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일과를 바꾸었다. 그는 더 스토어의 부지를, 가장 좋아하는 길이었으나 이제는 특히 더 피하게 되어버린 지역을 생각했다. 쓰러진 나무들돠 반반해진 땅에는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을 보면 오렌지 카운티가 생각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지만 오렌지 밭과 노지 딸기들이 복숭아색 콘도와 틀로 찍어낸 듯한 쇼핑센터로 바뀌는 모습을 본 곳. 그래서 밀어진 땅, 파괴된 산비탈, 중장비들을 둘러싼 철사 울타리를 보면 그는 우울해졌다. 속상했고, 화가 났고, 아침 조깅의 기분이 망쳐졌다. (79p)

지니가 기억하는 한 한 가지 화제가 이렇게 모든 대화를 지배한 적이 없었다. 지방 선거, 주 선거, 전국 선거, 전쟁, 국제적 사건 - 어떤 것도 교직원, 교사, 학생들의 흥미를 더 스토어만큼 휘어잡지 못했다. 할인 소매점의 개점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들보다 사람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슬픈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지북식간에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이제 이 읍에서 이용할 수 있는 놀라운 새 패션, 굉장히 싼 가격, 여러 가지 가사도구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이미 빚을 지고 있어. 내 마스터 카드를 한도까지 다 썼고, 두어 가지 물건은 할부로 사야 했어." (119p)

왜 그는 계속 그들을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었다. 그 모습들에는, 그들의 체격, 외모, 동작에는 뭔가 그에게 이상해 보이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점이 있었다.

그는 다시 걸어와 입구에서 떨어져 어둠 속에 섞이려고 했다. 그 모습 중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 유리한 지점에서 그는 그들이 더 스토어 안을 돌아다닐 때 지켜볼 수 있었다. 검은 후드와 모자 아래의 얼굴은 희었고, 피부는 설화석고 같은 색이었고 비정상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 보통 피부 - 인간의 피부 - 에는 없는 정체불명의 성질이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가 미쳐 있을 뿐이다. 동물들 때문에 기겁을 했고, 그때부터 겁을 먹은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 것도 이상한 점이 없고,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일 뿐이다. 그처럼 묘지 근무를 하는 사람들,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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