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0
쥘 베른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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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쥘 베른 / 인디고 (글담출판사)

동화책을 읽는 느낌,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어릴 땐, 청소년 용으로 나온 세계문학 책들이 (굳이 읽지는 않더라도) 책장에 꽂혀있었습니다. 공부도,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때긴 하지만, 가끔 심심할 때 엄마가 책장에 넣어준 책들을 읽고는 했지요. 지금이야 '고전'이고, '세계문학'이고하면 살짝 어려운 느낌이 들어 부담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나마 그땐 축약본이기도 했고, 제목에 따라 재밌어 보이는 책을 그저 골라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책들이 있다면, 가장 슬픈 책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그리고 가장 흥미진진했던 책들은 『15소년 표류기』와 『80일간의 세계 일주』 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후자는 둘 다 '쥘 베른'의 책이었네요.

 

 

  기상천외한 모험과 공상 과학 소설로 유명한 쥘 베른의 소설은, 정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굉장히 꼼꼼하고, 상상력이 넘칩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이야기는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도 기억에 확연하게 남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내기에서 주인공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한 부분들, 한 여자를 구해내고 사랑하게 되는 부분들, 그리고 어렸을 때 좀 놀라움을 갖고 봐서 그런지 '칼리 여신' 행진 장면은 머릿속에 콕 박혀 있었죠. (어릴 때 본 책에서는 칼리 여신의 동상?? 모형? 같은 그림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기억이 나더군요.)

 

 

  소설 속에 나온 캐릭터의 개성은 정말 다양해서, 정말 갖출 건 다 갖췄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영국 신사하면 떠오를 것 같은 과묵하고 진지한 (그러나 어쩔때는 꽤나 과감한) 필리어스 포그, 성실하고 재미있고 충실한 하인 파스파르투, 도대체 왜 증거도 없이 그렇게 쫓고 있는지 답답함에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픽스 형사, 책 속에서도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실제로도 이렇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여행을 따라다녔을 것 같은 '아우다 부인'까지도요.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이 흥미로운 주인공들과 함께 긴장 넘치고 몇몇의 우연을 넘기는 세계일주를 보여줍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각 지점에 머무는 시간이 꽤 적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내기를 위한 '일주'입니다. 지금이라면 좀 심심한 여행이지만, 당시 1800년대에는 지금의 편리한 교통수단을 절대로 따라갈 수 없었으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이 상상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지요. (실제로 이런 기사가 당시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사회를 넘기고 그런대로 안정을 찾아가는 신대륙 미국의 모습도, 종교적인 행사를 통한 인도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도 잘 묘사되어 있네요. 의복이나 음식... 그다음에 나오는 서커스는 살짝 아리송하긴 하지만, 뭔가 그 당시에 이렇게 다양한 세계를 한 권에 펼쳐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요.

​  그렇지만 어릴 때 읽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행 중에 뭔 일이 생기면 자꾸 돈으로 해결하는 부분이 거슬렸습니다. 될 때까지 막 불러, 값을 올리니 ㅋㅋㅋ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비법은 '돈' 밖에 없는 거야?!" 하고 삐딱하게 묻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라도, 재치 있는 사건들과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에피소드'까지 있고, 신중하고 과묵하지만 정 많은 '포그'라는 주인공에 호감이 가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기게 되더라고요.  뭐, 이 소설의 중요한 것은 '모험'이니까요. 신나게 읽었습니다.

 

 

 

 

 

 

  -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를 처음 갖게 되었는데, 이렇게 살랑살랑한 일러스트가 왠지 동화책을 읽는 느낌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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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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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마침내 10월 7일 <영국왕립 지리 학회> 회보에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여러 관점에서 문제점을 살펴본 결과, 이 계획이 정신 나간 짓이라는 기사 내용이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인재든 자연재해든 모든 것이 여행자에게 불리했다. 계획이 성공하려면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이 기적적으로 들어맞아야 하는데 그런 일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은 유럽에서는 기차가 정각에 도착할 수 잇겟지만 인도를 횡단하는 데 3일, 미국까지는 7일이 걸리는데 그 계산이 정확하다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기계 고장, 기차 탈선, 예상치 못한 사건, 폭설과 같은 악천후 등이 전부 필리어스 포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50p)

아우다 부인은 코끼리 안내인이 들려주었던 그녀의 사연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녀는 정말로 인도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속한 사람이었다. 인도에는 면화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번 파르시 무역상들이 있었다. 그중 제임스 제지브호이 경은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는데, 봄베이에 사는 그 부유한 무역상이 바로 아우다 부인의 친척이었다. 또한 그녀가 홍콩으로 만나러 가는 사람은 제지브호이 경의 사촌인 제지흐였다. 그가 과연 그녀를 받아 주고 도와줄까?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포그 씨는 그녀에게 걱정할 게 전혀 없으며 모든 일이 수학적으로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그 씨는 분명히 '수학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우다 부인이 이 끔찍한 표현을 이해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녀는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호수처럼 맑은' 두 눈으로 포그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무뚝뚝한 포그 씨는 늘 그렇듯 과묵해서 그 호수에 뛰어들 남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165p)

이때 누군가가 세관에 들어왔다면 포그 씨가 전혀 분노하는 기색 없이 평소처럼 차분한 모습으로 기다란 나무 의자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잇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포그 씨가 체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일결마저도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처럼 보엿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아니면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러 놓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폭발시킬 은밀한 분노를 감추고 잇는 건 아닐까?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포그 씨는 차분하게 앉아서 기다렸다. 하지만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이번에도 감옥 문을 뒤로 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3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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