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입시
미나토 가나에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고교입시』 미나토 가나에 / 북폴리오

 최종 목표가 고교 합격이라니, 15살에 인생을 정하는 거야?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인생의 최종목표를 '대학'으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명성이 높은 고등학교를 나와도, 특목고를 나와도 사회로 나갈때 적히는 'ㅇㅇ'대학교라는 이름이 인생의 만족도를 결정하곤 하지요.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교입시』에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현 내의 가장 우수한 학교인 '이치고' 입시기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치고'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최종 목표가 고교 합격이라니, 15살에 인생을 정하는 거야?"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 이치고에 합격한다면 그 뒤에 어떤 삶을 살든 비판받지 않습니다. 이치고 졸업 이후 다소 부진한 성적으로 이름 모르는 대학을 가도, 백수가 되어도, 나이가 한참 먹을 때까지 '이치고'의 자부심을 이어갑니다. 학생들과 학부모, 주민들까지 모두의 이슈인 '고교 입시'는 많은 선생님들의 관리 하에 철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입시 시험 전날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고 쓰인 벽보, 한 선생님의 휴대전화 분실. 약간은 불안한 낌새가 보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이 상황은 시험 당일날에도 비슷하게 벌어집니다. 고사장에서 모든 휴대전화를 걷었지만, 시험 중에 어떤 학생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교사의 "실격"이라는 말 한마디에 학생은 과호흡을 일으키며 고사장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단순히 한 학생의 부주의라고 말했던 이 사건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됩니다. 그 학생은 알고보니 현 의원의 딸, 그리고 없어지는 누군가의 시험지 한장, 인터넷에 계속해서 생중계되는 학교의 상황까지.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고 외쳤던 벽보, 그것은 누구의 생각이고 어떻게 벌어진 일일까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소녀의 얼굴이 나와있는 표지와 '그날 하루가 한 영혼의 인생을 짓밟고 있다'는 카피를 보면, 생각보다 무섭고 오싹한 내용을 상상하게 하지만, 『고교입시』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간은 심심했던 소설입니다. 그리고 작가 미나토 가나에가 선택한 서술방식 - 거의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생각을 반복하는 - 은 조금 독특하게 느껴졌을지 모르나, 읽는데 약간 부담도 생기고 몰입을 방해하는 감이 있긴 했지요.

  그러나 『고교입시』라는 것이 이야기 속의 '이치고'를 빼놓고도, 많은 상황에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깊은 소설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의 입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치고 같은 명문고 입시, 우리나라의 특목고와 인생을 건 수능... 생각보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욱 씁쓸하고 무시무시할지도 모릅니다.

 

 

 

 

* 본 책은 일본 드라마로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최초 드라마 대본 도전작이기도 하고요.

등장인물이 많아 영상으로 볼 땐 더욱 흥미진진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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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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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코 선생, 지역에서 최고라는 데 의미가 있는 거야. 이 일대에서는 도쿄대보다 이치고라니까.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인 이치고에 합격하면 부모는 만만세. 그다음에는 도쿄대에 가든 백수가 되든 상관없어. 그렇지, 미즈노?" 미즈노는 천하의 도쿄대 출신이다. 이치고 동급생 시절부터 나를 깔보았지만, 지금은 같은 직장에 대니고 있다. 미즈노가 나를 싫어하는 만큼, 나는 미즈노를 싫어하지 않는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형제가 있는데, 형은 이치고에 붙어서 졸업한 후 삼류대에 진학하고 동생은 이치고에 떨어져서 다른 학교에 가서 졸업한 후 일류대에 합격했다고 쳐. 어느 쪽이 자랑스러운 아들인지 알아?" 아이다 선생이 간단한 예를 들어 교코 선생에게 설명했다.

"난 동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의 상식으로는 형?"

"정답." (26p)

​55번이 사와무라 회장의 아들이란 사실에 모두 얼굴이 어두워졌다. 46번의 답안지를 찾고 있었는데, 나온 것은 55번, 55번의 답안지는 두장이 되었다. 게다가 55번은 커닝을 고발당했다. 고발한 사람은 59번.

즉, 마쓰시마 선생님의 아들이 사와무라 회장의 아들을 고발한 것이 된다.

대체 무엇부터 해결해야 좋을까? (212p)

"대체 이 익명의 네티즌은 현행 입시에 어떤 불만을 품고 있을까?"

"입시 제도 자체 아닐까요?"

"학력으로 순위를 정하지 말고 초등학교나 중학교처럼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가게 하라는 건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행동을 통일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 "그러나 학력만이 인간의 우세를 결정짓는 것도 아니죠."

"그런 생각이 만연하다 보면 머리 좋은 사람은 냉혈한이고, 머리나쁜 사람은 마음이 너그럽다는 이상한 극단론이 생기는 거야. 어째서 열심히 공부한 것을 비판당해야 하느냐고."

"그런 서열이 낮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그것도 역시 극단론이지. 인간에게는 어차피 능력 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그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그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거나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학력을 판정하는 자리에서 얘기할 건 아냐."



"그럼 어디서?"

"부모가 집에서 칭찬해주면 되지. 자신이 자신을 칭찬해주면 돼. 옛날에는 그랬잖은가. 달리기 경주에서 꼴찌를 해도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우리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뛰었다고 칭찬해주었어."

"그렇군요. 우리 부모님도 서툴게 그린 그림을 언제까지고 거실에 걸어놓으셨죠."

"고교 입시란 그것도 같은 게 아닐까."​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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