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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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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루는 풍경, 그 속의 '나'와 '책' <책인시공 - 정수복>

 

 

 

 

 

 

  어느샌가 나도 책을 '책'으로만 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책에 배치된 문자들의 나열이 좋다. 책의 향기가 좋다. 책이 쌓여져 빈틈없이 붙어있는 그 모습이 좋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머리 속에서 뒤섞이는 생각들이 좋다. 책 속에 나온 것들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그런 환상같은 기분이 좋다. 같은 책을 본 사람과의 진한 유대감이 좋다. 책을 읽으면서 시간의 흐름이 멈추는, 혹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그 느낌이 좋다. 어느새 책에 관련한 많은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책에 대해 말하는 책에는 그냥 '책'보다 더욱더 애정이 샘솟는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책인시공>은 책에 대한 책이 아니다. 작가가 쓴 단어를 빌리자면, 이 책은 '책이 이루는 풍경에 관한 책'이다. 아마도 세상에 살고 있을 사람들의 거의 몇배는 될 책이 만들어내는 풍경, 그리고 풍경 속에 들어간 사람들, 그 사람들이 책과 함께 만들어내는 또다시 다른 '풍경'. 나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감탄을 금치못할 아름답고도 행복한 풍경이다. 작가 정수복은 이러한 풍경들을 '우리보다 책에 대한 다양한 문화가 발전되있는 듯한' 프랑스의 '책이 만들어내는 풍경'들과 함께 그 풍경속의 부분들을 세밀하게 살펴보게 한다.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서재, 집 밖으로 나가 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파리의 특별한 '책의 공간들'. 그 부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이라는 것이 펼쳐내는 이야기가, 그리고 그림이 얼마나 풍성하고 다양한지 떠올리게 된다. 특히나 파리의 부키니스트 중고서점과 길가의 자그마한 초록박스에서 우연하게 멋진 책을 고르는 기쁨은 나도 가서 직접 체험해보고 싶을 정도로 낭만적이고 재미있다. 또한 책의 첫부분,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자유와 즐길 수 있는 '독서 산책'을 위한 '독자 권리 장전'은 방에 써서 붙여놓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간다. 하나 하나 그 권리에 체크하면서 읽어보자. 책읽기가 부담이 되지않고, 마치 음악의 선율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독서기행을 펼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또다시 다른 책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어디서나 읽을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책과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에 그 풍경화들이 수없이 그려질 수 있도록.

 

 

 

  - 책은 단어와 문장과 면들로 이루어진다. 문장의 한 부분을 이루는 단어는 의미로 가는 길에 떨어져 있는 관념의 한 조각이다. 단어라는 조각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고 그 문장들이 연결되면서 의미세계를 창조한다. 책의 면은 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면의 가장자리에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 종이 면 위에 인쇄된 글자가 목소리라면 행간과 가장자리의 여백은 침묵이다. 그렇다면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요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나 불로뉴 숲의 바가텔 정원이 서로 다른 여러개의 작은 정원들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통일된 공간을 이루듯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의 연속되는 면들은 거대한 관념의 정원을 이루며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다. 독자의 눈은 그 정원에 뿌리내린 식물들이 바람의 흐름에 맞추어 추는 춤을 감미롭게 음미한다. 책을 읽는 일은 커다란 정원을 이루는 연이어진 작은 정원들을 거니는 유쾌한 산책이다. (31p)

 

  - 서재는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책과 책상이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각자 하는 일에 따라, 취향과 취미에 따라 그 서재에 서로 다른 주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서재는 일상의 여가를 보내는 영혼의 사랑방이 될 수도 있고, 언제라도 달려가서 깨끗한 공기를 들이 마시는 '아름다운 숲'이 될 수도 있다. (...) 서재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갈 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먼지가 날아다니는 세속에서 벗어나 몸을 숨기는 은둔처가 되기도 하고 책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감금처가 되기도 한다. (99p)

 

  - 도서관과 책은 둘 다 육면체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행위는 육면체 속에 들어가 또하나의 육면체로 들어가는 일이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수많은 책들이 매장되어 있는 책의 공동묘지로 보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책이 좋아 책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거대한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이 되는 곳이 천국이라면, 독서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야말로 천국에 가장 가까운 장소일 것이다. (233p)

 

  - 얼굴의 형태는 태어날 때 결정되지만 얼굴의 분위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달라진다. 스무 살까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로 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행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씩 그 사람의 삶이 얼굴 표정 속에 반영된다. 인생을 피상적으로 함부로 막사나 사람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삶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발자크의 말대로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정현종)' 시인은 이미 어느 산문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은 두 배로 환한데, 그 까닭은 책 속에 들어있는 꿈, 곧 바깥에서 오는 에너지와 독자가 읽으면서 꾸는 꿈, 곧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 읽는 사람은 왜 풍경이 되는가? 산과 강, 들판과 바다는 내가 없어도 거기 그냥 있다. 스스로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바라보며 관심을 기울일 때 풍경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 나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의 일부가 된다. 책 읽는 사람도 독서삼매에 빠져 주변을 인식하지 않고 그냥 거기 풍경처럼 존재한다. (291p)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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