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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 동화 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박기범 지음 / 보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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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2000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 글을 엮은 것이라 한다. 서두에는 '훌륭한 일기글의 한 본보기'라는 제목으로 심사를 맡으신 이오덕 선생의 추천사가 실려있었는데, 벌써부터 마음은 감동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 이 책은 '서울 어머니 학교'에서 자원 교사로 일했던 저자와 어머니 학교에서 글을 배우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엄마는 ... 내가 글짓기 할 일이 어디 있냐고, 그런 글 쓸 일도 없다 한다. 그저 어디 가서 글씨나 안 틀리면 된다는 거다. 못 배운 티를 넘자는 게 무엇보다도 절실하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기본 글자들은 쉽게 쓸 줄 아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글자 하나하나에 갇혀 있다. 보통 정도 교육받은 사람들이 틀리게 쓰거나 하면 '어, 그런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것도, 엄마가 그러면 그건 못 배운 티로 여기신다.

무식한 티인거고, 아직 글을 다 깨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시는 거다. 어떻게 해야 엄마를 글자에서 자유롭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엄마가 기본으로 읽고 쓰는 이 정도면, 초등학교 검정고시부터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작은 학력부터 인정받으면 그런 열등 의식을 넘게 되실까? - 본문 중에서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거짓없이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그대로 스며드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버스 안이든 친구를 기다리는 찻집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은 왈칵 쏟아지려 했다.

코끝이 시큰해질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가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는데, 글을 읽으면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자식된 도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같이 연필을 깎고 공책을 펴고서 하루 몇 시간씩 곁에 앉았다는 것만도 가슴 벅찬데 그동안 나는 엄마가 가슴 속에 묵히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절절히 들어 왔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새 엄마한테 아주 다른 아들이 된 것 같다.

그전에 언제 내가 엄마 얘기를 들어주기라도 했나. 학교 다닐 나이 되면서부터는 책가방만 던지고 나가 놀기 바빴고, 머리가 좀더 커서는 내 방문 꼭 걸어닫고 처박혀 있기만 했지. ... 밥상 앞에서도 엄마가 무슨 얘기라도 시작하면, 말을 뚝뚝 끊기가 일쑤였다. 잠깐이라도 들어드리려 하지 않았다. 저 잘났다고 엄마를 가르치려고나 들고.

스물다섯 넘기면서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엄마한테는거기가 거기였을 거다. 그러니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지금은 엄마도 나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벗이다. 옆에서 지내는 시간만 봐도 그렇고, 마음 통하면서 형 모르게 사소한 비밀들을 갖는 게 그렇다. 그런 데다가 엄마는 글자 좀 봐 달라고 일기를 보여 주니, 엄마가 하는 하루하루 걱정들을 그대로 안다. 하숙생들 밥 차려 주면서 드는 마음까지. 시장에 가서 찬거리 준비하는 마음까지. - 본문 중에서

위의 글을 읽고 보니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으로 어머니에게 상처를 드린 건 아닌가 하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곧 후회하게 되지만, 후회는 늘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 번쩍 들고야 만다.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내가 엄마가 되고나서야 정녕 가능한 것일까.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에서 유지나는 '하나님은 모든 곳에 있기 힘들어서 어머니를 창조했다는 칼릴 지브란의 혜안은 옳다'고 이야기한다.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온갖 궂은 일로 하루하루가 고단한 몸이지만 용기를 내어 학교 문을 두드린 어머니들은 앎의 기쁨로 하루하루가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너무 눈부시고, 예순이 넘는 연세에도 한글을 배우려 노력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참으로 눈부셨다. 방학을 해서 여느 때보다 시간이 많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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