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 누구나 읽어야 할 면역에 대한 모든 것


#6 『침묵의 봄』과 DDT


1962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미국 환경 보호국  EPA의 창설과 미국 내 DDT 생산 금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책은 인간의 건강이 전체 생태계의 건강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대중화했지만, 카슨 자신은 생태계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녀는 <생명의 정교한 그물망>이라는 은유를 선호했고, 그 그물망의 어느 지점에서든 교란이 벌어지면 그 떨림이 그물망 전체로 퍼진다고 설명했다. 카슨의 전기를 쓴 린다 리어는 <『침묵의 봄』은 우리 몸이 경계가 아니란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우리 몸은 분명 경계가 아니지만, DDT는 카슨의 우려와는 좀 다른 물질이었다. 카슨은 DDT가 널리 암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침묵의 봄』 출간 후 몇십 년에 걸쳐 시행된 DDT 연구는 그 가설을 지지하지 않았다. DDT에 심하게 노출된 공장 및 농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숱한 연구가 이뤄졌지만, DDT와 암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암을 살펴본 연구에서도 DDT가 유방암, 폐암, 고환암, 간암, 전립샘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종양학자인 아버지에게 했더니, 아버지는 어릴 적 마을에 트럭이 와서 온 동네에 DDT를 살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은 살포 중에는 집 안에 있어야 했지만, 트럭이 지나가자마자 뛰쳐나가 놀았다고 한다. 여태 나뭇잎에서 DDT가 똑똑 떨어지고 화학 물질 냄새가 공기에 감도는데도 말이다. 카슨이 DDT의 위험 중 일부를 과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몇몇 사실을 틀리게 말했다는 것에 대해 아버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할 일을 제대로 했으니까>. 카슨은 우리를 일깨웠다.



저널리스트 티나 로젠버그도 <이 책보다 더 크게 세상을 바꾼 책은 별로 없다>고 인정했으나,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 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의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 비난은 『침묵의 봄』 자체보다는 그 책의 상속인인 우리에게 가해져야 옳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DDT를 모기 퇴치제로 쓰지 않는 나라들 중 일부에서 말라리아가 되살아났다는 건 사실이다. 요즘 아프리카 아동 20명 중 1명이 말라리아로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아이가 뇌 손상을 입는다. 효과 없는 치료법, 독성 강한 예방약, 환경을 망치는 살충제가 여태 쓰이는데, 왜냐하면 말라리아에 쓸 수 있는 효과적인 백신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DDT는 현재 그런 장소에서 말라리아를 좀 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몇 가지 수단 중 하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부 지역에서는 일 년에 한 차례 집 안쪽 벽에 DDT를 바르는 것만으로 말라리아가 거의 근절되었다. 미국에서처럼 비행기로 수백만 에이커에 뿌리는 방법과 비교할 때, 이 적용 방법은 환경에 주는 충격이 비교적 적다. 그러나 DDT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해법이다. DDT를 생산하는 화학 회사가 거의 없고, DDT를 살 돈을 기꺼이 후원하려는 기부자는 없으며, 많은 나라는 딴 나라에서는 금지된 화학 물질을 쓰기를 꺼린다. 로젠버그는 <말라리아를 겪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벌어진 가장 나쁜 일은 부자 나라들에서는 그 질병이 근절되었다는 점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_ 『면역에 관하여』 출간 전 연재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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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수영이 2016-11-2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DDT는 어느정도 생활수준과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서는 더이상 쓰이지 않는 근절물질이지만 빈곤한 나라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대안일 수밖에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드네요. 우리가 이제는 더이상 쓰지 않고 의미가 없는 것은 다른 곳에선 대안일 수 밖에 없고 과연 그 물질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가 되어있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구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번화였어요.

stillmyhero 2016-11-2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카드 예뻐서 눈에 쏙쏙 들어왔어요.

샛별투 2016-11-2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의 봄‘을 평가함에 있어서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지는 다시 봐야겠군요.

ICE-9 2016-11-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DT에 대한 사실은 뜻밗이군요. 인체엔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이가 창궐하자 DDT를 아이들에게 많이 뿌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카슨의 저 발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은 DDT가 그렇게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군요. 그 때문에 저개발 국가에서 더 효과적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는데도 할 수 없게 되었다니. 이번 글을 읽다보니 의료에 관계된 정책의 경우, 수립과 집행이 더욱 어렵다는 것 알게 되네요.

Nabisch_T 2016-11-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젠버그의 두 마디가 강렬하게 남아요.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 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이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와 <말라리아를 겪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벌어진 가장 나쁜 일은 부자 나라들에서는 그 질병이 근절되었다는 점일지 모른다>는 말은 기존의 생각들을 흔들 강력한 메세지네요.

carpe diem 2016-11-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택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선 꼭 필요하지만 누적되면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니...참...어쩌죠??

carpe diem 2016-11-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택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선 꼭 필요하지만 누적되면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니...참...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