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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김원, 이매진, 2011. 4) 

 1999년에 처음 나왔던 책이 2011년인 지금 다시 출간된 이유는 자명하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그 물음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에. 1999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잊혀진 것들'이 제대로 복원되고 애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누구에게 읽힐까. 80-90년대 신화화된 학생운동의 주인공들? 혹은 그것을 '풍문'으로만 전해 들은 지금의 철없거나 영악한 대학생들? 거의 제대로 직시된 적 없는 80년부터 91년 5월까지의 수많은 죽음과 파토스들이 아직 해석을 기다리며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그 죽음을 헛된 치기로 치부하며 망각하는 것도, 혹은 당시의 경험을 훈장처럼 지니며 신화화하는 것도 모두 올바른 애도는 아닐 것이다. 이를 잘 알기에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 꼼꼼히 적어두었다. "80년대의 트라우마는 증언돼야 하며, 증언될 수 있도록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 동시에 나는 여전히 80년대를 '낭만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경험하고 지켜본 현실과 그 의미를 망각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쓴다는 저자의 그 '윤리적 이성'이야말로, 80년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미덕이리라.

 

2. <국민과 서사>(호미 바바 편, 류승구 역, 후마니타스, 2011. 4) 

  독창적인 탈식민 이론가 호미 바바의 신간이다. 그가 서문에서 잘 밝혀놓은 것처럼 '국민'과 '서사'의 유비관계는 흥미롭다. "국민은 마치 내러티브와 같이 시간의 신화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잃어버리고 마음의 눈 속에서 자신의 윤곽을 온전히 드러낸다" '국민'이라는 공고한(듯 보이는) 역사적 전통이, 기실, 어떻게 그 역사적 기원을 은폐하고 '문화적 강박'이 되는지를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국민'의 문제를 내러티브 작용의 문제로 보고 연구하려는 것이 "단순히 언어와 수사에 주목하는 것만이 아니라 개념 대상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국민 담론을 구성하는 언어의 양가성, 국가 내러티브 속 언어의 수행성 등 '국가'와 '내러티브'를 겹쳐 사고할 때 사유 가능한 층위와 교호관계, 그리고 그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저자들은 성실하게 새로운 개념과 방법론을 모색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라틴 아메리카의 고전들이 형성한 국가 내러티브의 계보와 그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논한 저자들의 문제의식이 16편의 글 속에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 책이 근대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자연화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인지 기대된다.

  

3.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웅진지식하우스, 2011. 4)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잘 지은 제목이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라는 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요구되는 미덕이자 올바름, 그리고 궁극의 아름다움으로까지 이야기된다. 그러나 그 '최선'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혹, 누군가 그런 나의 '최선과 열정'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열정 강박'의 논리와 담론에 대해 저자들은 '열정 노동'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출한다.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노력의 탓으로 전가시키는 사회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열정은 어떻게 맹목이 되는가'일지도 모른다. 나의 '열정'의 외부에 대해 '열정적'으로 사유하지 않는 이의 '열정'은 오히려 '맹목'에 가깝다. '열정 논리'에 개재된 계급과 세대의 착취구조를 감히 알려고 할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열정과 패기'의 주체인 젊은이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열정적 지성'일 것이다.

  

 

4. <뉴레프트리뷰> 3, (마이크 데이비스 외, 공원국 외 역, 길, 2011. 4) 

 

이 시대 석학들의 가장 진보적인 사유를 소개해왔던 <뉴레프트리뷰> 3권이 나왔다. "기후 변화와 지구 환경"이라는 특집도 흥미롭지만, 새삼 '서구 신좌파의 역사'라는 제목을 단 스튜어트 홀의 글과, 에릭 홉스봄의 대담에 눈길이 간다. '일만 사회주의자 선언' 등 최근 한국의 젊은 지성들로부터 사회주의가 '진보의 가능성'으로 타진되고 있는 사례를 볼 때, 유럽 신좌파 지식인들이 어떠한 이론적, 정치적 실험을 거듭하며 <뉴레프트리뷰>를 발간해 내고 있는지를 회고한 스튜어트 홀의 글은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좌파 이론의 핵심 키워드인 노동자계급 주체론, 국제주의, 종교사멸론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힌 에릭 홉스봄의 견해는 어쩌면 <뉴레프트리뷰>의 내부이면서 동시에 외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에릭 홉스봄과의 대담에 대한 평가를 언급한 서문에서는, 노회한 그가 좌파 역사학자로서의 입장을 철회하고 있으며, 세계사에 대해서는 명확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했다. 이 글을 단서 삼아, <뉴레프트리뷰>라는 매체의 이론적 지평과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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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홉스봄을 싫어한다.

홉스봄은 알려진 것과 달리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다. 이 사람 글을 보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아주 하찮게 여기고(그는 식민주의자다) 페미니스트들을 아주 경멸하고 게이와 같은 성소수자들을 아주 혐오하고 흑인운동을 무시하는 철저히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백인 남성 마르크스주의자가 홉스봄이다.

너무 그런 거는 모르고 우리 학계에서는 이른바 진보 또는 이른바 보수 학자 전부 다 홉스봄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쨌든 홉스봄은 그런 사람이다. 책을 면밀히 읽으면 그런 것을 알 수 있고 파악이 되는데 왜들 그렇게 홉스봄이라면 늘 난리들을 부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