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번역의 유령들(조재룡, 문학과지성사) 

 "번역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라고 썼다. 이 어딘지 익숙하고도 낯선 경구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있다. 과연 번역은 이데올로기인가. 우리는 번역 혹은 번역비평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가. 아니, 어디까지 생각해봤는가. 번역이 가질 수 있는 사유의 정도, 방향, 형식, 이동... 흔히 일종의 매개어, 인공어로서 이해되던 번역(어)의 '운명' 같은 것을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과잉의식했던 것이 아닐까.  지난한 직역과 의역의 싸움, 혹은 철마다 불거지는 오역 논쟁 등을 떠올려도 좋겠다. 번역(어)는 언제나 '제대로 옮겨졌는가'만이 문제시되는, 철저히 기능적인 언어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체념하듯 알고 있다. 번역이 다다르는 것은 언제나 미달된 정확성이라고. 그러나, 그래서 더 중요하다. 번역의 동학과 정치가 매개해온 역사와 신화가. 그리고 여기 그 작업을 기꺼이 떠맡은 적임자가 있다. 조선의 고어와 불어 등 통언어적 사유를 직접 실천하며 저자는 최남선과 김현, 조세희를 거쳐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역사적 의욕들을 다시 불러낸다. 이제 '번역가'로서 다시 선 그들은 저자 앞에 그들의 문학과 정치, 그리고 무의식에 대해 고백해야 한다. 언제나 원전과의 위계 속에서 애물단지 취급 받던 번역어, 그런 알량한 위계 속에서나마 소인배들의 구별짓기에 심심찮게 동원되곤 했던 번역 논쟁만이 번역(학)의 전부는 아닌즉, 이제 "번역의 유령들"을 읽자.

 

2. 예쁜 여자 만들기(이영아, 푸른역사) 

  

 지금이 아니라면, 그저 넘겨버렸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여자도, 예쁜 여자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도 통속적으로 소비되는 코드가 되어 버린지 오래니까. 참신한 식민지적 사례를 아무리 찾아낸다 해도, 결론은 항상 같으니까. 예쁜 여자라는 강박, 거기에 스며 있는 남성과 여성의 (불균등한) 공모, 그를 통해 성립하는 성정치. 우리 모두 조금쯤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린 정말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아는 것은 자명한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작금의 신정아사태와 그녀의 책, 그리고 장자연사건에 대한 세간의 분분한 해석들은 말해준다. 예쁜 여자, 섹시한 여자.... 그녀들은 정말 뭘 할 수 있고, 그 표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해주는 걸까. 중요한 건 외모보다 마음이라는 식의 도덕주의적 복음에 기대지 않으려면 책을 잃어야 한다. 근대 초기 조선의 여성들이 부딪혔던 미인 강박의 역사, 그 사연과 이에 대한 여성들의 해석의 역사가 이 책에 쓰여 있다. 

 

 

3. 언어의 감옥에서(서경식, 돌베개)  

 

 부제에 "어느 재일지식인의 초상"이 아니라,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이라고 썼다. 독자들에게 그는 이미 독특한 학문적 지평을 확보한 '지식인'이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재일조선인 2세'라는 어구로 시작한다. 그 명함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등 그간의 사유의 궤적들을 통으로 엮어낸 출발임을 우리는 안다. 온몸으로 언어 내셔널리즘을 마주해야 했던 그의 독서가 궁금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에게 아직도 '고통의 흔적과 현실'을 보여주기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계속 쓰고 있고, 한국과 일본에서, 학술논문과 에세이, 그리고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더 나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4. SYNC 2호(싱크편집부, 이미지프레임) 

 

 씽크, 라는 잡지 이름 들어본 적 있으신지. 몇달 전 1호를 보고 크게 놀랐다. 인문학의 위기, 태만, 자만 등등에 대한 진단과 대안이 횡행하는 요즘, 씽크는 젊고 빠르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가장 명징한 산물이다. 인문학의 장을 넓히고, 보다 개방적인 말걸기를 시도하자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하지만, 그 누가 했는지? 씽크는 최신의 인문학 담론들을 공들여 만화로 만들고, '잡지'의 형식으로 펴냈다. 물론 여전히 '교양만화'같다는 인상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맨날 답도 없는 상업성과 오락성이라는 이분 구도에 대해 회의만 주구장창 거듭하는 젊은 인문학도들은 보라. 여기, 일단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잡지가 있다.

 

 

 

5.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베네딕테 잉스타, 수잔 레이놀스, 그린비

 

 그린비가 새롭게 '장애학컬렉션' 출판을 시작했다 한다. 실로 박수를 쳐주고 싶은 기획이다. '장애학?'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수전 손택이 '질병'에 대한 은유를 사유함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인식체계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탁월하게 밝힌 것처럼, 또한 이 책에게도 기대한다. 저자가 서로 다른 지역과 문화권에서 장애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서술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장애'에 대한 고정된 상을 상대화해야 하며, '장애' 개념에 내재한 균열과 폭력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장애'에 대한 시각의 외부를 확보하고자 했을 테다. '장애'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사유가 어디 흔하던가. 이 책은 3월의 신간 중 가장 직접적으로 '인문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한 책이다. 기꺼이 추천하고,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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