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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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어떠한 문제를 두고도 과학기술이 해결책을 제시할 거라는 관념을 낳게 한다. 그러나 삶을 개선하는 과학기술의 능력을 얼마나 열렬히 신봉하든, 우리가 자원을 생산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소비하는 문제를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는 없다. 자원은 언젠가 바닥나기 마련이다.”(15)

최근 벌어지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그에 따른 방사능 위험물질에 대한 공포는 효율성에 기대어 과학기술을 맹신하는 일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스리마일아일랜드와 체르노빌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른 발전 시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친환경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효율성에 대한 미련과 초기의 기술이 가지고 있던 위험한 문제들을 새로운 기술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기란 힘든 일이다. 물론 효율성 추구와 기술 개발의 노력이 인간에게 지금과 같이 발전된 문명을 가져다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문제되고 있는 원전 사태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초래한 갖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가 지구를 사용했던 방식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이러한 성찰의 목록에 ‘흙’도 올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나 화력발전소 등과 같은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증가,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한 사막화, 불법적 폐수 유출로 인한 수질 오염, 오남용으로 인한 석유 고갈 등 우리들 앞에 산적해 있는 심각한 환경 문제들에 ‘흙’에 대한 성찰을 추가해야 한다니, 다소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흙이란 어디든 널려 있으며, 오히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흙이란 한 문명의 지속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다. “한 문명의 수명은 농업 생산이 쓸모 있는 경작지에 자리 잡고 겉흙을 침식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331) 왜 그런가? 무엇보다 인간은 땅에서 자라는 농산물을 주식으로 삼는 존재이다. 농업 생산량이 인간의 생존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그런데 농업 생산량은 농경지의 면적과 비옥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다시 말해 인간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넓이의 비옥한 토지가 없다면 한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자체의 생존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역사상 존재했던 다양한 문명들의 쇠퇴가 무분별한 농경의 확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지리적 역사적 조건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대개 문명의 이야기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인구가 늘다가 비교적 갑작스레 사회가 쇠퇴해 가는 패턴을 따른다.”(72) 이러한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는 발달된 농업 기술로 인한 생산량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불러오고, 증가된 인구의 식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땅의 재생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농경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땅의 영양분이 모두 소멸되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거나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땅이 빗물과 바람에 침식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갑자기 줄어들게 되고, 늘어난 인구를 먹이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황폐해진 땅에서 흙이 침식되고 갑자기 인구가 줄어든 뒤에는 낮은 인구밀도가 유지되면서 흙이 되살아난다.”(120) 마치 맬서스의 인구조절론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과정이 모든 문명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구의 얇은 토양맨틀(soil mantle)은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꾸준히 파헤치고 있다. 말 그대로 지구의 살갗을 벗겨 내고 있는 것이다.”(39)

특히 저자가 지적하는 토양 침식의 주범은 양분을 급속히 소비하는 대규모 단일 경작 방식의 플랜테이션 농장, 겉흙의 침식을 가속화하는 쟁기나 트랙터 등의 경운 기계, 그리고 흙의 재생산 능력을 저하시키는 화학비료 등이다. 이 방식은 현대적 농업 혁명이라 불리며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업 방식이다. 그러나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과거 대부분의 문명사회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마찬가지 위기에 직면할 거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흙의 침식이 지구적으로 미친 영향에 관한 1995년의 한 보고서는 해마다 경작할 수 있는 땅 1천200만 헥타르가 침식과 토질 저하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사라지는 경작지가 전체 경작지의 1퍼센트에 가까운 것이다.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244)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산업화된 기술 집약적 영농 방식을 버리고 소규모 노동 집약적인 영농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랙터와 쟁기로 땅을 파헤치는 방식을 버리고 무경운 농법을 시행해야 하며, 화학비료에 기댄 단일 경작 방식에서 벗어나 돌려짓기와 똥거름 주기 등을 통해 흙의 비옥함이 자연스럽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던 망가이아나 이스터 섬과 다르게 농업 전략을 다듬어 지속가능한 경제를 유지한 티코피아 사람들의 사례나 새로운 녹색혁명의 대표적 모델로 여겨지는 쿠바 농업의 사례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상태가 되기 위해 농업을, 그리고 흙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인류의 시간 동안에는 되살릴 수 없는 흙은 다루기 힘든 잡종이자 재생되는 시간이 더디고 더딘 필수 자원이다. 오랫동안 무시될수록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여러 환경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흙의 침식은 사회제도가 지속되는 것보다 오랜 시간의 범위 동안 문명의 기초를 뒤흔든다. 그러나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흙이 꾸준히 침식된다면 농업이 점점 늘어나는 인구를 먹일 수 없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329)

환경에 대한 관심은 그 세대의 양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환경의 변화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적 효과들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고 그 피해의 결과도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시대의 무분별한 화석 연료의 사용이 지금 우리에게 이상 기후라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떠올린다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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