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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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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모방범’에서 시작했다. 그 책은 여전히 내게 최초이며 최고의 작품이다. ‘이유’, ‘낙원’, ‘화차’ 등의 장편과 단편소설집을 몇 권 읽었는데, ‘모방범’만은 못하다는 기분이었다. 작가로서는 자기 소설들에 모두 애증이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그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생산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름 하나만으로 책을 고르는 작가가 될 뻔했으나, 다작과 들쑥날쑥한 완성도가 전작주의를 가로막았다. 오랜만의 현대물이라고 해서 기대했으나, 예상에는 다소 못 미쳐서 아쉬웠다.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은 딱히 추리물이 아니어도 대개 범죄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범죄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고립된 현대인의 기형적인 심리를 들여다보는 작가의 솜씨는 늘 경탄의 대상이었다. 작가는 범죄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범인의 심리를 추적한다. 특히 주변 인물들이 엮여 이루어지는 그림은, 우리가 타인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첫 번째 작품인 ‘눈의 아이’는 범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다. 범죄자는 영원히 혼자다. 그는 자신이 범한 죄의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산다. 더는 범죄 이전의 자신이 될 수 없다. 때로는 남들이 다 보는 것을 못 보기도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홀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는 다른 소설 ‘돌베개’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난다. 

‘눈의 아이’는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린 시절에 친구가 살해되는 일을 겪은 동창들이 한 데 모인다.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형체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타인의 불행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것도 폭로된다. 사건 자체에는 은밀한 흥미를 느끼면서도, 당사자나 유족에게는 죄책감을 느낀다. 관계가 먼 사람에게 일어난 범죄일수록 ‘극적’인 양상을 띤다. 극은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이에게 일어난 일은 바라볼 수 없다. 함께 겪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면 둘은 한 몸이다. ‘돌베개’는 가해자에게 사로잡힌 범죄자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핵심적인 아이디어 하나를 위해 너무 빙 돌아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테마는 비슷하다.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 숙식을 제공하다 돌베개 위에서 잠든 그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는 부부가 있다. 그걸 막으려고 딸은 스스로 돌베개 위에 눕는다. 부부는 딸을 살해함으로써 대가를 치른다. 그 부부에게는 딸의 죽음 그 자체가 유령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그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이런 사고방식은 인과응보적인 결말로 다가온다. 이전 소설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작가는 대단히 계몽적이다. 어떠한 완전범죄도 결국 밝혀지고, 범죄자는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고방식. 물론 대부분의 범죄소설에서 독자는 진실이 밝혀지고 범인이 처벌되길 바란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범죄는 모두 실패한 범죄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하는 탐정을 응원한다. 범인이 잡히는 순간, 카타르시스까지 느낀다. 

그러나 검거가 끝이 아니다. 남은 자들은 계속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는다. 작가는 그런 주변 인물들을 포착하는 데에도 능하다. 범죄 이후, 소년A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머니와 양부를 살해한 소년A는 청소년이기에 처벌을 받지 않으며, 교화시설에 머문 후 사회로 복귀한다. 이 이야기가 ‘성흔’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범죄자를 동정한다. 죄 자체를 두둔하지는 못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학대받은 소년A도 마찬가지였다. 공권력의 도움을 얻지 못한 소년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고,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급기야 ‘검은 메시아와 어린 양’이라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소년A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의 말을 믿는 무리들이 생겼다. 그는 ‘희생되는 어린양’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추종자들과 독립했다. 멀쩡히 살아있는 소년A를 죽여, 신으로 승격시켜 숭배하기 시작하는 무리였다. ‘철퇴의 유다’는 아예 전국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검은 메시아가 개입한 ‘조화’라고 주장했다. 우연을 필연으로 둔갑시키는 스토리는 실제의 소년A와 그의 친아버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숭배자들에게 이 신흥종교는 신성한 놀이이자 자신을 정당화해주는 도구였다. 무고한 어머니를 살해한 소녀의 사건까지 조화로 떠받들여지자, 철퇴의 유다는 침묵했다. 결국 소년A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죽어야 하는 형벌에 처해진다. 

범죄자를 추종하여 갱생을 막는다는 이 기묘한 설정이 ‘성흔’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게 해준다. 작가는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정보의 유해함을 보여주고 있다. 희생되는, 혹은 희생된다고 믿는 ‘양’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믿음은 얼마나 헛된가. 도대체 누가 정의의 줄을 분명하게 그을 수 있단 말인가. ‘철퇴의 유다’는 그저 영웅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모든 종교도 따지자면, 위대한 영웅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범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세밀했던 작품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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