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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바다는 이중적인 장소다. 태초의 엄청난 에너지를 간직한 바다는 태모신의 면모를 보이지만, 동시에 현기증나는 죽음의 공포와 닿아 있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과학도 바다의 섭리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바다는 인간을 진일보하게 해주었다. 인간은 거친 바다와의 싸움을 통해 세계를 넓혔다. 진보가 꼭 발전적인 것이 아니듯, 바다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선한 것만도 아니다. 인간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항해를 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항해는 정복을 위한 항해로 변주되기도 했다. 문명인은 야만인의 삶터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그들끼리도 서로의 영역을 빼앗기 위해서 바다를 전쟁터로 삼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바다는 생존을 위해서도 기능한다. 바다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 한 무리의 밀수꾼이 있다.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공포와 싸우며, 은밀한 일을 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경비대의 눈을 피해서 밀수를 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반쪽짜리 지폐의 나머지를 얻기 위해 묵묵히 바다와 사투한다. 밀수는 이미 그들 삶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언제든 발 뺄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다. 밀수는 삶의 다른 국면으로의 전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지브롤터 해협에서 지중해를 거쳐, 마요르카섬에 이르는 이 험난한 항해에 동참한 그들은, 이미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선장 레오나르 주베, 다른 선장 뿌익-사발, 선원 빼레 마르코, 갑판장 요렝 까브레, 2등 기관사 쁘루덴시, 조리사 뻬나 등에게 삶이란 매일 견뎌야 하는 형벌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고통스럽게 살았던 아버지의 삶을 물려받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죽거나 불구가 되고, 남을 착취하고, 밀고하거나 밀고당하고, 배신하고 배신당하면서 산다. 그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산다는 것은 매일 한 조각의 빵이라도 꼭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야 입에 가져갈 수 있다는 비참함이나 실의 같은 거였다'(95) ‘모든 것이 끝장나 완전히 파멸해버릴 것이라는 확신’(236)이 그들의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항해 중간에 그들은 ‘죽은 자들의 동굴’이라는 곳에 숨어서, 살기 위해 경비대가 철수하기를 기다린다.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을 위해 비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배에 탄 사람들끼리의 갈등은 깊어지고, 가족과 관계를 회복할 방법은 요원하며, 삶은 여전히 막막할 뿐이다.

밀수선 보따폭 호의 선장 레오나르 주베라는 이미 17세에 스페인내전에 참여했다. 그는 몸을 파는 여자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걸 보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사살당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는 7년이나 군대에 있었으며, ‘사회에서 유용한 기술은 하나도 배운 것이 없’었다. 그는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내와 만나 춤을 추었던 축제의 그 밤이다. 그러나 서툰 그는 아내와의 관계를 망쳐버렸다. 아내는 그를 떠났고, 그는 더욱 황폐해졌다. 밀수가 성공하면, 그는 아내를 다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희박한 희망이었는데도, 그는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밀수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그 요소가 자기 선원일지라도.

1등 기관사 비센 바랄이 그 방해자였다. 그는 몸의 이상을 느끼면서도 승선했다. 그가 보따복호에 오른 이유는, 간결하게 자식들 때문이었다. 그는 원인모를 복통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가족들을 염려한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유언을 남긴다.

 나를 바다에 묻지는 말게. 난 물에 빠지는 게 싫어. 육지로 데려가 가족들이 아는 곳에 묻어주게.(354)

비센 바랄의 병은 쁘루덴시와 레오나르의 갈등을 증폭한다. 쁘루덴시는 1등 기관사인 바랄을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우긴다. 그러나 레오나르는 항해를 멈출 생각이 없다. 그 와중에 뻬레 마르코는, 자신이 마시아나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밀수꾼들을 배신하고 도망간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밀수는 성공하고, 비센 바랄은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거친 바다 위를 항해 중이다. 

읽어내기가 만만하지는 않은 소설이었다. 낯선 지명과 이름들을 적어가며 기억해야 했다. 선과 악이 마구 뒤엉켜, 인물을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작가는 어떤 사상을 제시하기보다, 약점을 지닌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신난한 삶을 모자이크로 엮어낸 것 같다. 고통은 일단 견뎌내면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장이 내일은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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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5-0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사이 그리고 미요르카...제가 여행다큐를 통해 여러번 본 익숙한 곳이라서 이 소설에 관심이 가는군요.해양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라디바 2013-05-02 23:02   좋아요 0 | URL
그러시다면 저보다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겠군요.: ) 저는 풍경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읽기에 녹록치는 않은 소설이었어요. 스페인 내전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가 세밀화처럼 섬세하게 그려져 있거든요. 항해는 그들 인생의 여정 중의 하나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