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인생은 연극 무대이며, 인간은 배우라는 말을 한 사람은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다. 어쩌면 현재의 삶 자체가 우연이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나의 선택과 외부의 요인들이 나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만이 모든 생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 선택 역시 결과의 일부이니까. 그래서 우연에 의해 몰아닥치듯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불행은 그로테스크한 뒷맛을 남긴다. 우리는 그런 역사 속 인물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와 햄릿이 그 대표격이다. 그러나 우연은 삶에서 흔한 것이므로 이야기에서는 절제되어야 하며, 추리나 스릴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으로 이루어지는 결말은 독자와 관람객을 얼마나 맥빠지게 하는가. 물론 그리스비극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에서, 극적인 요소들은 흥미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출생의 비밀이나 삼각관계, 영웅의 귀환, 신데렐라의 탄생, 불세출의 영광, 배신과 복수 이야기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고, 이미 보르헤스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조합은 가능하다. 새 시대는 항상 새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이야기가 언제나 탁월한 건 아니다. 탁월한 이야기는 너무나 주관적이면서도 또 객관적이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격찬한 고전이라도 내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또 엄청난 베스트셀러라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시기가 문제인 경우도 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는 얼마나 따분했던가. 그러나 지금 개츠비의 이야기는 내게 큰 울림을 준다. 개츠비의 화려한 노란 차는 마음을 아리게 한다. 적어도 ‘검증’을 거친 작품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확률이 높다. 반면 최근작일수록 오히려 감동을 줄 가능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과학적 발견이라면 최신이 가장 훌륭할 수 있겠지만, 문학은 다르다. 과학이 쌓아온 업적 위에 올리는 것이라면, 문학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탁월함은, 그 이야기가 탄생한 시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끝까지 연기하라’는 제목이 가장 훌륭했다. 제목은 충분히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극적 장면을 강조하는 소설이 보이기 쉬운 단점들이 꽤 많이 발견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영화화를 목적으로 쓰인 것 같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이 영화의 기법을 흉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일갈했다. 풍경에 대한 아무리 뛰어난 묘사도, 실제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 소설과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장르인 것이다. 소설만으로 가능한 소설, 소설적으로만 ‘기능’하는 소설이 매력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간혹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소설을 접하게 된다. 워낙 헐리우드의 영화 산업이 호황이기 때문일까. 이야기판에서 영화만큼 잘 나가는 영역은 없다. 특히 영미소설에는 그런 경향이 다소 강한 것 같다. 이것이 내 편견일지라도, 앞으로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주게 되리라. 이 소설도 영화화를 목적으로 쓰인 듯했다. 장면 전환이 자주 일어나고, 사건 해결 방식이 우연적이며 극적이다. 특히 해결방식은 또다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닐 수 없었다. 신이 아니고서야, 누군가의 운명을 정말로 조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인물들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고, 변수가 끼어든다. 그 변수 자체가 재미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이 충분히 납득가능해야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토비 플러드는 책표지를 장식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조정하는 끈에 매달린 마리오네트다. 실제로 토비는 그런 역할을 한다. 데릭 오스윈이 찾아오는 순간부터 토비는 그의 말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의 동기는 아내 제니에 대한 사랑이다. 데릭은 처음에는 아내를 위협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데릭은 토비를 여러 가지 황당한 상황 속으로 이끈다. 토비는 의지도 없이 조종되는 자동인형이 아니지만,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합리화하지만, 그건 로저 콜본이 말한 대로,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심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다면서, 아내에게 소홀한 것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등장인물의 행동과 말은,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를 되찾는답시고 그가 벌이는 소동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에도 나오듯이, 제니는 토비가 차분하게 자기를 기다렸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소리친다. 그 말이 너무 적절했다. 물론 이 이야기의 조정자는 복수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소기의 목표는 이룬 셈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이 그렇잖은가.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공은 궁금해해야 하고, 함부로 모험해야 하고, 불필요하게 갇히거나 난관에 일부러 부딪혀서 헤어나오도록 애써야 한다. 그러나 그 복수를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희생되었다. 또한 지나치게 걸출한 악당들에게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악인의 캐릭터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제 악당마저도 단순한 악인이어서는 안 될 정도로, 독자들은 영리해져 버렸다. 그래서 악행이 밝혀졌어도 어떤 전율도, 해방감도 없었다. 중요한 건 악행이나 트릭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이며,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반응인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