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 월의 친구들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0
미샤 담얀 지음, 이명희 옮김, 두산 칼라이 그림 / 마루벌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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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그냥 상록수라고만 생각했던 주목에 꽃이 핀 것을 보았다. 정말 꽃이 아니라 연녹색의 반짝이는 새순이 꽃 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단 얘기다. 자연은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무궁무진 신비의 세계이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계절이 아니건만 이토록 계절이 새로운 것을 보면 어렸을 땐 변화의 신비로움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자연의 신비. 써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거 같다. 그래, 자연이 신비하지. 당연한 걸 뭘 새삼스레 그러나 할지도 모르겠다.

꽃보다 새순의 아름다움을, 자연의 그 신비로운 반짝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십이 월의 친구들>이다. 꽃은 화려하기에 눈에 금방 띈다. 그런데 잎은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꽃만큼 화려 하지 않기에 사람을 현혹하지 않는다. 이 책도 언뜻 봤을 땐 아이들을 당기는 힘이 약하다.

이유는 제목에서 풍겨오는 교육적인 냄새 때문이 아닐까...그 느낌으로 이 책은 손해를 많이 보는 거 같다. 처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앉아 이 책을 읽자고 했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이었다. 그러나 한 번만 제대로 읽어주면 아이들에게서 금방 재밌다는 반응이 나온다.

처음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흥, 사계절을 가르쳐주는 책이군. 난 벌써 알고 있는걸... 봄, 여름, 가을, 겨울...숨을 쉬어야 살 수 있으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사계절의 나라에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숨을 쉬면서 입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신비로움을 무심히 당연히 그러하다는 듯이 지나친다. 이 책은 아이들을 그런 신비로움에 눈뜨게 만든다. 우리가 안다고 여기지만 실은 알지 못하는 당연한 이치들...

이 책의 주인공은 십이월과 친구들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겨울이 봄, 여름, 가을을 만나 그계절을 즐긴다는 줄거리이다. 계절이 나뉘어져 있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 분위기가 환상적이면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꽃잎 모자를 쓴 3월, 사과 모자를 쓴 10월...

아이들은 관조의 눈이 없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사색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사계절을 한꺼번에 바라 볼 수도 없다. 그런데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랐음 좋겠다. 관조하며 사색하라고 하고 싶다. 그것이 무리인줄을 알기에, 이런 동화를 재밌다고 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려 한다. 사계절을 가르쳐주는 과학서들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게 계절을 느끼게 해주는 동화는 드물다.

두산 칼라이의 그림은 선뜻 마음이 열어지는 그림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로 봤을 때 이상한 그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십이월에 나오는 그림은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 판에 박힌 그림일 때 그 그림은 내용을 설명할 수 있으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진 않는다. 그런데 두산 칼라이의 그림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며 아이들을 자연의 신비와 환상의 세계로 빠뜨려 준다.

우리 아이는 상상력이 부족해요...라고 느끼는 엄마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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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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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다. 세상 누구보다 인간답고 아름다운 냄새를 가지고 싶어서 무려 스물 다섯 명을 살해한 남자. 그르누이는 자신이 사랑 받는 인간으로 군림하기 위해 가장 축복 받은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들을 희생시켰다. 요즘,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한 지도자가 생각났다.잠시.

이 책은 1,2,3,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그르누이의 출생 배경과 성장 배경이 2부에서는 인간들에게 혐오를 느낀 그르누이가 인간냄새가 나는 고원 지대 동굴 속에서 7년을 고독하게 지낸 이야기, 3부에서는 그르누이가 세상의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고 그 또한 그런 인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이야기, 4부에서는 그르누이의 죽음이 다루어져 있다.

이 네 부분의 이야기는 상호 연결된 이야기지만 독자적으로 한 편씩 읽어도 나름의 완결성이 있고 독립적으로 읽힌다. 나는 특히 3부에서 그르누이가 죽음을 불사하고 맞섰던 고독...자기 들여다 보기, 자기 안에 침잠하기...그 처절한 외로움이 가슴에 와닿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더구나 그 철저한 외로움과 고독의 세월 끝에서 찾은 자기 존재감이 냄새 없는 인간이라는 자각이었다니...더구나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정작 냄새 없는 인간이라는 자각해야 했다니.

그래서일까,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다. 얼핏 봐도 그가 태어난 조건, 그가 살아 온 환경은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여건이었다. 그는 그렇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삶을 지켜 내었고 그 맹목적인 삶의 끝에는 사랑 받지 못한 인간의 무모한 광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일면들을 세세히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있다. 글의 곳곳에는 현대인의 물질문명을 추구하는 맹목성과 인간의 이기성을 비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그르누이를 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욕을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우리를 보면서 '너희는 더해!' 이렇게 비웃고 있는 듯 하다.

결국 자신의 목적인 가장 인간답고 아름다운 향기를 가지게 된 그르누이가 그 향수를 사용하였을 때 버림 받은 한 인간 앞에 펼쳐진 고매한 인간들이 행동이란...그는 드디어 비천한 인간에서 그 보다 더 비천한 인간들의 실체를 확인하고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의 향수에 대한 사랑이 맹목적이었던 만큼 그 향수 냄새를 맡고 맹목적인 사랑을 받은 결과는...?

'향수'는 냄새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 점, 보이지 않는 소재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를 환각 속에 빠뜨릴 정도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물질 만능의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점차 가치를 잃어 가고 있다. 사랑이나 우정, 진실,믿음이 아니라 경제력과 직결되는 온갖 물질적인 가치들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들은 외모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실상 그들의 인상에 영향을 끼치는 실제는 냄새이다.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그르누이의 말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판단하는 잘못을 수시로 범하고 있다.

현대는 수 많은 살인자들의 집단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광기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맹목적인 목표의식으로,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면서 앞으로만 향해서 뛰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야말로 그르누이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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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 - 핀두스의 첫번째 특별한 이야기 핀두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1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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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를 잊지 않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태생적으로 그것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데 '올 한 해 많이 웃고 삽시다'이런 인사를 들으니 새삼 웃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를 읽으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 성별에 따라 나이에 따라 그 웃음의 강도와 웃음이 비어지게 하는 요소가 다르겠지만, <아주 특별한...>는 가족이 다 웃을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와 그림이 다 기발해서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책을 읽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삶을 살았음 좋겠다.인간과 동물 자연과 인간이 평등한 모습이 보기 좋다. 핀두스의 얄밉고도 귀여운 표정과 모습들...깔끔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갖은 잡동사니는 다 모아 놓고 사는 페테르손 할아버지.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그 인물들의 개성이 살아 있어 쉽게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림에만 등장하는 작은 동물(생쥐, 악어, 무당벌레...)들의 행동과 표정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그건 독자들의 몫이고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참여하는 재미다. 유아가 보기엔 글이 좀 많다. 그러나 입말로 씌여져 있고 반복되는 어구도 많아서 어른이 읽어주기엔 좋은 책이다. 학령전 아이부터 부모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가족용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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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락, 그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야노쉬 지음, 이온화 옮김 / 샘터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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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별(외국영화)', '로즈'에는 삶에 몸부림치는 인간이 나온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 여인들이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내다 거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여리디 여리면서도 강인한 이중적 성격을 지닌 그 여인네들을 보면서 실존한다는 것은 저렇게 고통스러운 것인가...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하드락, 그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에도 그렇게 고통스럽게 실존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나온다. '작별'이나'로즈'에서는 한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하드락...>에서는 '무방비 상태로 인생 속에 내동댕이쳐진 단순하고 비천한 민중인 클로트니체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민족이 분단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민족적 정서와 한이 있는 것처럼 폴란드 사람들도 전쟁에 희생된 민족이 갖는 불행한 정서가 있다. 그런 배경을 기본으로 지은이는 전쟁에 대해 종교에 대해 이기적인 인간들에 대해 통렬한 풍자를 보여준다.그런데 그 통렬함은 '하드락'이라는 '바보'를 내세움으로써 얼뜨게 뒤로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하드락...>은 읽을 수록 또 읽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 갑갑함을 뚫리게 해주는 시원함이 있고 무심코 지나치는 흘러가는 인생을 유의미하게 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마인카도 힘들었지만 삶을 사랑했다.그는 다른 방식을 몰랐기에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통증에 대해서도 민감하지 않았다. 그래서 탄광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다치면 마취제 없이 수술을 받고 사흘 동안 병원에 있다가 나와서는 곧바로 탄광으로 돌아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읽는 순간에 떠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자신이 이런 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엘제는 웃으며 행복해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웃고 있는 불행한 인간보다 더 멍청해 보이는 것은 없다.'

'인생에서 이별만큼 몰인정한 것도 없다. 이별은 죽음만큼이나 별볼일 없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야노쉬는 인생을 시니컬하게 그리면서도 삶을 사랑한다. 따뜻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야노쉬가 좋다. 그의 소설이나 동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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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는 돈을 사랑해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2
니콜라우스 피퍼 지음,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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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 책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요즘 아이들은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에야 경제용어를 처음 보는 듯이 접한, 또는 그런 개념을 이제야 뒷머리 긁적긁적하는 정도로 이해하게 된다면 그런 책을 일찌거니 접한 요즘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할 밖에.

흔히 12살 소년이 경제 원리를 이해하기 까지…라는 설명이 붙는 이 책은 12살 소년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친구들과 회사를 차려 경제활동을 해보고 그 생리를 체득한다는 줄거리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초등학생들에게는 아직은 어려운 책이다. 그 쪽 동네 12살과 우리 동네 12살이 다르다는 것도 이유 中의 하나이고, 그 쪽 동네의 사회 문화적 배경과 우리 동네의 그것이 또 많이 차이가 나는 까닭이다. 그래서 경제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서 썼다고는 하지만 초등생들이 읽기엔 무리가 있다. 다만 낱말이나 개념은 두루뭉실 그냥 넘어가더라도 줄거리 위주로 읽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게 한 번 읽고 中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으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 부모님이 교육관에는 경제적인 개념은 자리하지 않았던 듯 싶다. 가정 경제야 어떻게 되었건 자식들은 그런 눈치 없이 티없이 밝고 맑게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부모님 밑에서 우리 형제는 참 철부지로 자랐다.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 만큼은. 그리고 그 때의 부모님들은 대다수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렀고, 요즘의 아이들은 사실 이런 책을 읽히지 않아도 일찍이 ‘돈’에 눈을 뜨는 편이다. 그리고 요즘 아이건 예전 아이건 태생적인 차이로 경제 관념이 있는 축과 없는 축으로 나뉘기도 하겠지만, 내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지금에 드는 생각은 어릴 때 경제 개념을 익히게 해 줄 필요가 있고 그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알고 안하는 것과 모르고 안하는 것의 차이는 자각했느냐 하지 못했느냐 이다. 자각했을 경우는 결과에 대해 자신이 승복할 수 있고, 자각하지 못했을 경우는 후회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성장한 후에 그렇게 고이 키워주신 점이 고맙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면 자식을 곱게 키우려고 치룬 부모의 희생이 감사함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니라 가슴 아픔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녀들의 성장기에도 고통 분담을 하게끔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것이 멀리 내다 보았을 때 그 자녀의 인생에 있어서 훨씬 교육적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래서 문학적인 가치를 따지기 여부에 앞서 이런 식의 안내서는 교육적으로 유용하다. 그리고 재미도 있다. 그래서 14세 이후의 아이들은 재밌게 읽는다. 단 이 책을 읽고 ‘돈’에 얽매이는 아이가 되라는 게 아니다. ‘돈’이라는 것의 진정한 개념과, 경제적인 것에 밝은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비경제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덜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과, 부의 사회적 분배, 노동의 가치, 이런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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