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1주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날아라 펭귄>... 임순례 감독은 언제나 경쟁사회에서 소외되고, 관심에서 멀어진 약자 또는 우리 주변의 친숙하고 소박한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온 감독이다.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딱 그들의 안쓰럽고 지쳐 있는 어깨만큼의 높이에서 지켜보곤 했던 감독...그녀의 신작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과 함께 그녀의 영화를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추위를 단단히 대비해 보자.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  

 귀향해서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선호(김영필).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님과 지루한 농촌 생활에 불만이 가득하다. 게다가 다른 소보다 엄청나게 먹고 싸는 소, 한수(먹보) 때문에 쇠똥만 치우다 남은 청춘 다 보낼 처지다. 어느 날 선호는 홧김에 한수를 팔기 위해 부모님 몰래 길을 떠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우시장에 도착하지만 소를 팔기에 실패한 선호에게 7년 전 헤어진 옛 애인 현수(공효진)의 전화가 걸려온다. 현수는 그녀의 남편이자 선호의 친구였던 민규의 죽음을 알리며 장례식장에 와달라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현수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는 선호와 달리 여전히 담담하고 자유로운 모습. 선호는 아픈 옛 기억과 현수에 대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괴로워하던 선호는 현수를 남겨두고 한수와 길을 떠난다. 선호는 추억의 장소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다시 현수를 만나게 된다. 결국 선호는 가는 곳 마다 나타나는 옛 애인 현수와 자신의 답답한 속사정도 모른 채 되새김질만 하는 한수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는 제목처럼 소와 함께하는 여행기이다. 푸근한 시골, 시원한 바다, 한적한 절, 소박한 국도...아기자기하고 잔잔한 풍경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일상이 버겁고 지루한 주인공이 느리고 더디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느낌이 꽤 괜찮다.  

조금은 거리를 둔 관찰과 약간의 미묘한 거리 감각에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김도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불교적인 관점이 나오는데, 굳이 불교에서 말하는 본성을 찾아가는 깨달음을 말하지 않더라도 오래된 사랑의 고통을 치유하고, 바쁘게만 몰아치는 인생 여정을 한번쯤 여유 있게 돌아보는 그런 여행길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잔잔한 웃음이 지어진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귀향한다. 수안보로 가던 중 섹스폰 주자 현구는 밤무대 밴드 생활에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수안보에 도착한 성우는 고교시절 밴드를 하며 꿈을 나눴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생활에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있다.  

 

고교시절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지금...

약국을 하고 있는 민수는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고, 시청 건축과에 근무하는 수철은 환경운동가가 되어있는 인기와 시위가 있을 때마다 마찰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다. 성우에게 음악의 지표였던 음악학원 원장은 알콜 중독에 빠져 출장밴드를 하는 폐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성우는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을 되새기며 이들의 변화에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현재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수안보에서..

여자를 좋아하는 올갠주자 정석은 여전히 여자들을 꼬시며 문제를 일으킨다. 강직한 드러머 강수는 목욕탕의 때밀이 아가씨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정석만큼의 재주가 없어 데이트 한번 변변히 못하는데... 정석이 때밀이 아가씨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게 된 강수는 정석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큰 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된다. 결국 강수는 밴드를 떠나고 밴드가 해체 위기에 놓이자 성우는 급하게 음악학원 원장을 팀에 합류시킨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계속 골치를 앓는 정석과 알콜 중독이 심각한 원장과 팀을 이끌어가는 것은 성우에게 버겁기만 하다.

고단한 현실에서 어린 시절의 꿈 맞닥뜨린 성우에게 이제 선택이 남아있다. 계속 밤무대 밴드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현구나 강수처럼, 또는 민수, 수철, 인기처럼 음악을 접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4인조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와이키키 브라더스>, 

현실에서 그들의 삶은 비루하고, 참혹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찬란한 시절은 있었다. 고교시절. 그가 꿈꾸었던 삶은 단란주점을 전전하며 뽕짝을 연주하는 삼류 딴따라가 아니라,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혹은, 레드 제플린의 그것 아니었던가.

영화는 음악이 돈과 밥이 되어 주지 못해도 그 길을 가려는 사람은 언제고, 어디에서고 있기 마련이라는 예술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멤버들과 싸우고 밴드를 떠나 마을버스 기사로 살아가는 드러머 강수(황정민)와 호색한 오르간 연주자 정석(박원상)이 핸드폰으로 나누는 눈물의 화해는 감독이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낙관을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도 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날아라 펭귄(2009) 

9살 승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승윤엄마,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보면 어쩌면 승윤이를 지금 보다 더 많은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된다. 아직 어린 아들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아내가 못마땅한 승윤아빠도 가끔씩 승윤이와 놀아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현실이 갑갑하다.

채식인에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신입사원 주훈에게 자신을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선배들과의 회사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다. 화끈한 성격으로 선배들과 잘 어울리던 주훈의 입사동기, 미선도 회사복도에서 흡연을 들킨 이후 선배들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아이들과 아내 없는 일상이 서글프지만 그들을 위해 쓸쓸히 빈집을 지키는 기러기 아빠 권과장. 가끔은 너무 외롭기도 하지만 우연히 만난 딸의 친구로부터 부럽다는 말을 들으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힘을 낸다.

늦은 나이 큰 용기를 가지고 운전면허를 따온 날, 차를 팔아버린 남편을 보며 더 이상 권위적이기만한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심한 송여사. 그녀의 이혼요구에 당황스럽고 또 혼자 살아갈 일이 걱정도 되는 권선생. 그렇다고 50년 넘게 지켜온 자존심을 쉽게 꺾을 수는 없다.

갑갑한 현실 속에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게 그려내며,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는 영화 <날아라 펭귄>은 우리 모두의 오늘의 문제를 따스한 시선과 유쾌한 웃음으로 그려낸다.  

인권영화라고 분류된 이 영화는 인권영화라고 하면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의 영화를 연상하기 쉬우나, 사뭇 경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가? 친근하지만 가슴이 아리고 슬프지만 유머가 있고, 절망스럽지만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임순례 감독은 각각의 영화를 통해 아프고, 고단하기도 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 고민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감독의 영화는 늘 그 감동이 남다르다. 또한 어려운 문제제기보다는 영화 속 모든 인물 하나 하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조명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스스로의 일상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감독의 존재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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