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배달되었을때 나는 딱 한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 큰걸 어떻게 가지고 다니면서 읽지?' 책은 거의 560페이지에 육박했고 결코 가벼운 제질의 종이를 쓰지 않아서 책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한가지 다행스러웠던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블 (이 책도 장난 아니게 두꺼워서 집에서만 읽었었다.) 처럼 양장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이후 처음으로 책을 반으로 잘랐다. (당시 선생님들은 반으로 잘린 책들을 보면 마치 당신의 머리카락이라도 잘린듯 진심으로 가슴아파 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깨근육의 통증이 더 급한 문제였으므로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책을 자른다는게 좀 걸리긴 했었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너무 무거워서 내가 들고다니질 않고, 그래서 잘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어림짐작으로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반을 잘랐지만 잘린 두권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들고다니면서 읽을만은 했다.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과학교양서. 사실 나는 학교다닐때 과학과 수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다른 과목도 관심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학교를 다 졸업하고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그냥 취미삼아 읽어보니 그게 생각보다 어렵지도 재미없지도 않았었다. 과학과 수학이 재미없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때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내신 15등급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거지로 대학에 들어간 인간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스티븐 호킹과 아이작 아시모프 그외의 사회과학 서적 몇가지를 그럭저럭 재미나게 본 기억만으로 나는 이 책에 덤벼들었다. 두께가 두께이니만큼. 그리고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결코 만만치 않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읽으면서 종종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저자인 빌브라이슨은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 역시 과학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과학자들을 졸라서 자신이 이해가 될때까지 얘기를 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떤 단어들은 학교다닐때 분명히 들었고 그 뜻까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서인지 지금와서 남은건 대략적인 이미지 혹은 이런뜻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 뿐이었다. 그것만 뺀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제목부터가 거의 모든것의 역사이듯. 우리 인간과 관계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가장 처음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비교적 쉽고 재미있는 예들을 들어가며 과학이 절대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이 아님을. 또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가졌던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질문을 조금더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만약 지금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고 시험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이 책을 꼭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아예 처음부터 수학 과학은 나와 무관한 너무나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으로 찍어버리고 포기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읽다가 보면 간혹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시험에 나온다면 교과서에 적힌대로 답을 적어야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이 투껍고 무거우며 약간 비싸다는 것만 빼면 내용 면에서는 100점 만점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더구나 저자가 과학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본인 스스로 공부를 했다고 하니 그 노력만 해도 점수를 주고도 남는다. 빌 브라이슨이 쓴 전작 [나를 부르는 숲]도 그렇지만 책 이상의 책이라 불리울 만하다. 다 읽는데 제법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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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나서, 빌 브라이슨의 능청스럽고도 재치있는 어법에 매료됐지요. 그 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도전해 볼까 어쩔까 망설이는 중인데, 플라시보님의 리뷰가 '지르게' 만드는군요.

늘 솔직하고 편안하게,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칼을 쓸 줄 아는 님의 글솜씨에 매료돼 자주 이 방에 들락날락했습니다, 발자국 남기지 않구요.....
이제 신고했으니, 가끔씩 인사 나누어요^^

플라시보 2004-09-1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 와인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어설픈 제 리뷰를 좋게 봐 주시니 고맙네요^^ 결코 편하고 쉽게 그리고 빨리 읽히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거 읽고나서 현재까지 책 읽는걸 잠시 쉬고 있거든요 (물론 주문한 책이 안오기도 했지만)
아무튼 지르시게 되면 (이 표현 재밌네요) 즐겁게 잘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종종 여기서 뵈어요^^)

픽팍 2004-10-1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두깨에 질려서 포기했는데 봐야 겠네요
ㅋㅋ 암튼 리뷰 와방 잘 쓰시는 듯
ㅋ 자주 올께요
중간고사 끝나고 꼭 읽어 봐야 되겠네요 ㅋ

플라시보 2004-10-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이 참 특이하시네요^^) 저책 무지 두텁죠. 아마 휴대하면서 읽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나시면 집에다 두시고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