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카린 포숨 지음, 김승욱 옮김 / 들녘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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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기억마저 복제하는 존재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백여 권 가까이 소설을 썼는데 그 책들을 읽어보면 비슷한 소재와 비슷한 플롯의 작품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조차도 자신의 작품을 말하자면 복제한다고 볼 수 있다. 추리소설의 선구자겪인 크리스티 여사가 이런 상황이니 그의 작품을 읽고 작가가 된 다른 많은 후배 작가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최고의 탐정을 창조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가 그 후배 탐정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 이야기를 첫머리에 꺼내는 것은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어떤 작품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플롯은 아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가 현대에 그 작품을 다시 썼다면, 범죄소설, 사회파 소설로 썼다면 혹 이런 방향으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만큼 이 작품이 좋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원으로 복잡하지 않고 반전과 빠른 전개 없이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꼭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작품은 아니다. 작가는 그보다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일상적이고 꼭 누군가가 피해를 입거나 살해되어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콘라드 세예르라는 거구의 나이든 경감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범인을 잡는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여기에서 누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일 수 있다. 사악한 늑대는 자동적으로 언제나 범죄 현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마을의 전설처럼 되어버린 정신병자 에르키가 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에르키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무엇이 사실이고 아니건 간에 그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누가가 에르키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악한 늑대는 자동적으로 그를 범죄자 취급하며 따돌리는 마을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에르키는 그들을 두려워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정신병자라는 측면에서 에르키가 내면의 사악한 에르키를 조종하는 인물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에르키는 생각한다.


'우리를 이렇게 도망치게 만든 게 누구지? 결승점에서 누가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거야? 우리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지? 피, 땀, 눈물, 고통, 슬픔, 절망!'

누가 이들을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게 하고 고통과 슬픔, 절망에 몸부림치게 하는가? 누가? 우리는 생각해야만 한다. 에르키의 이 외침을...


범죄는, 대부분의 범죄는 동기를 가지고 일어난다. 동기 없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지만 그것도 파악해보면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동기라 할지라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외된 자들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범죄자와 피해자, 목격자까지 모두. 누가 이들을 소외시켰는가? 바로 우리들이다. 피해자의 돈을 상속받기 위해 싫어도 의무적으로 찾아가는 조카와 아들이 인생에서 방해가 된다고 문제아들이 맡겨지는 시설에 아들을 보내고 찾아오지도 않는 엄마와 범죄를 같이 저지를 동료를 불지 않고 그에게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 친구와 아들이 정신병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한 아버지... 이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라고 말해야 할까. 그러므로 이 작품의 범죄의 동기는 엄밀히 따지자면 방치와 무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르키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정신과 의사보다 에르키는 그를 인질로 잡은 범죄자를 더 신뢰한 듯 이야기를 한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 읽고 나서 과연 누가 진정한 사악한 늑대이고 누가 진짜 두려운 대상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악한 늑대가 되어 가고 있거나 그렇게 인식될 두려움을 주고 있지 않은지, 그런 무관심과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있지 않은지 거울 속 자신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접하기 힘든 노르웨이 작가의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시리즈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또 중간 작품을 출판했다. 시리즈는 첫 작품을 출판하던가, 아님 모두가 바라는 가장 유명한 작품을 출판했으면 하는 바람을 저버렸다. 물론 이 작품도 북셀러상을 수상한 작품이니 유명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이력 속에 등장하는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니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단 한 작품을 출판할 예정이었다면 끝이 이렇게 끝나는 작품은 출판하지 말았어야 한다. 시리즈이기 때문에 이런 마지막이 올 수 있는 것이고 다음 작품을 궁금하게 만들려는 포석일 텐데 이 시리즈의 여러 작품을 읽어보고 검토했다면 시리즈이면서도 단권으로 독자를 만족시킬 작품을 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치 이 시리즈가 단 세권뿐인 듯이 말을 하는데 더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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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0-1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속삭이시나요? 아침과 같지만 힘내볼려고요^^;;;

가랑비 2006-11-1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리뷰, 진짜 재밌잖아요!

물만두 2006-11-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아우 근데 이거 달랑 하나 올라 있는데 너무 티나는 걸 퍼갔어 ㅡㅡ;;;

다락방 2007-02-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그래도 살까 말까 무지하게 망설이고 있고 이게 보관함에만 몇개월째 들어있었거든요. 오늘 생각나서 다시 와봤다가 만두님의 리뷰를 읽고 확실히 맘을 접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 리뷰에 완전 땡큐거든요. 그런데 왜 이럴때의 땡스투는 적립할수 없을까요? 반드시 사야만 적립되다니. 어쩐지 불합리한 기분이예요. 흐음..

물만두 2007-02-0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접으시다니요~ㅠ.ㅠ 보시고 판단을 하셔야죠~~~~~~~ 제 땡스투 돌려주삼^^ㅋㅋㅋ

토록마루 2009-06-22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입니다! 여름이라 범죄소설이 땡기는데
이 소설을 발견했어요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물만두님의 리뷰에 결정을 내려서 샀습니다.
그리고 읽었죠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요
돌아보지 마도 읽으려고요 ^^

물만두 2009-06-22 20:40   좋아요 0 | URL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전 이 시리즈가 제발 더 나왔으면 합니다.
돌아보지마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