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을 다 읽고 난 뒤 작품의 마지막 결말과 더불어 주인공 스카페타의 법의관이라는 입장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작품이 다시 쓰여 진다면 어떤 작품이 될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이제 그런 내 생각에 딱 어울리는 작품을 만났다. 바로 이 작품이다.

 

연쇄 살인범의 등장은 언제나 스릴러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들의 잔인하고 엽기적인 살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른다면 그것은 외면한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그런 단순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내용만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두 여성 캐릭터를 통해서 사회가 아직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범죄자만큼, 때로는 범죄자보다 더 잔인함을 강조하고 있다. 캐서린과 리졸리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비교해서 바라보게 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부각시켜 사회가 만든 두 여성을 직시하게 만들고 있다. 

 

캐서린은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사는 여성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치욕적인 폭행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려고 애를 쓴다. 비록 그것이 찢어지기 쉬운 애벌레의 고치에 불과하지만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텨나가는 인물로 그려지다가 점차 그녀가 고치를 뚫고 진정한 나비로 탄생하는 점을 보여준다. 진정한 용기란 자신의 과거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족쇄나 콤플렉스, 흠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납득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졸리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인 가정에서 자라 정신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여성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려 애를 쓰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또한, 자신의 내부에 이미 치유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는 관계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 스스로 그녀를 사랑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만족한 삶을 살기 어렵겠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처음에 이 두 인물이 서로 다르게 대비되다가 마지막에 한 인물처럼 오버랩 됨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릇된 치명적인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방식에 의해 상처 입은 여성들이지만 그들은 결코 그 어떤 것에도 스스로를 굴복시키지 않는 인물들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가 사회와 여성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불편한 스릴러 작품이다. 읽는 동안 처음에는 가슴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외면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너무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리고 너무 드러난 소재에만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범인의 나레이션을 보다보면 이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피에 대한 숭배와 잔인한 정복적 폭력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상대해야 하는 폭력과 진정한 공포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그런 공격적 성향이다. 그것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드러날지 모르는 것이므로 더욱 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메시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전작들 중 로맨스 소설이 있었던 것을 드러내듯 작가는 사랑도 심어 놨다. 인간의 상처 입은 영혼은 사랑만으로 치유된다고 했던가. 아마도 그런 뜻에서 등장한 사랑이지 싶다.

 

아프기 때문에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성숙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공감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불특정 다수를 범죄의 대상을 삼는 자들에게 희생되는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바로 옆에 범죄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린 알 수 없다. 그리고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한 경찰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 작품을 보며 단순한 스릴러로써의 묘미만이 아닌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일...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작품을 보시길. 절대로 외면하지 마시길. 이 작품에 우리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이들의 말없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7-1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은 꺼리는 편인데 이 책은 꼭 읽고 싶어지네요. 우리나라도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니......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리뷰 잘 쓰시네요.^^ 줄거리나 스포일러가 전혀 없으면서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리뷰가 왜그렇게 어려운지 줄거리를 안 쓰면 쓸 내용이 없더군요.ㅜ.ㅜ

물만두 2006-07-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좋은날님 꼭 읽어보세요. 제가 스포일러성을 자주 쓴다는 소리를 들어서 가급적 줄거리를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점점 글쓰는게 어려워요 ㅠ.ㅠ

미미달 2008-07-1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가 만든 두 여성, 이런 관점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역시 만두님의 통찰력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