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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라인 - 전2권 세트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그림 한 점이 있다. 보기만 해도 이상한 그림이다. 두 여인이 상체를 벌거벗은 채 모델이 되어 있다.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의 젖꼭지에 손을 데고 있다. 이런 기묘한, 그리고 작자 미상인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작가는 그 시대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추리적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실존하는 인물들... 4백 여 년 전의 프랑스 왕과 그의 소실에 대한 이야기로 그 시대 정치와 정치를 위해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알려준다. 왕비가 되고자했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죽은 여자. 그래서 많은 의문을 던져주는...
이 작품은 그림 한 점을 통해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고 사실과 소설을 넘나들고 있다. 그러니까 책 속의 과거 또한 소설속의 또 다른 소설이다. 역사가가 소설 형식을 빌려 썼다고 하지만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적 호기심이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작가는 이 책 속에서 그 어떤 점도 피력하지 않으니 그림을 통한 어떤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는 것이다.
추리적인 면에서는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림 한 점으로 이렇게 역사적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인정한다. 다만 끝이 없다는 것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 끝도 작가가 그림을 보는 사람이 각자 생각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정치가 등장하면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씁쓸한 뒷맛을 주게 마련이다. 어느 나라나 정치란 그런 것인 모양이다. 그림 하나도 그냥 바라볼 수 없다니 아마도 정치 없는 세상이 낙원이 아닐까 싶다.
꼭지 : 이 책을 읽으면 역사 속 인물들은 모두 불쌍하기만 하다. 왕은 자신의 정부가 낳은 아이를 자기 아이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속아야, 아니 우겨야만 했고, 정부는 가족과 정치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고 결국 원하던 왕비도 되지 못했다. 왕에게 억지로 아내를 빼앗긴 남자는 어떠한가. 자신의 성적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했다. 그래야만 결혼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또한 왕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 자신의 아이인지 아닌지, 그 아이에게 아버지임을 알리지도 못한채 살아야 한 남자는 어떠하며, 그렇게 태어나서 정략적 결혼을 한 왕자와 공주는 또 어떠하며, 고아로 자라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궁중 화가가 되려 했던 남자는 어떠한가. 그에게 단지 자신의 과욕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 말할 수 있을까. 시대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불쌍하다. 그 불쌍함이 있기에 사람은 그래도 서로 부대끼며 사는 건 아닌지... 허무한 인생이여... 불쌍한 영혼들이여... 우리는 모두 그런 미약한 존재인 것을... 그림 하나에도 감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