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1
하비에르 시에라 지음, 박지영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이 지금까지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장미의 이름에 비하면 한단계 아래로 생각되지만 <장미의 이름>을 어른에 비유한다면 이 작품은 그래도 중3에서 고1은 되지 않을까 싶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동시대에 일어나는 최후의 만찬을 둘러싼 수수께끼와 연쇄 살인을 담고 있으면서도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마지막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는 흔히 다빈치 코드에 대해 많이 말을 한다. 다빈치 코드가 헐리우드식 007영화라면 이 작품은 유럽의 작가주의 작품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빈치 코드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단순한 흥미 위주의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종교란 과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까지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다빈치 코드보다 한 단계 위의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수수께끼가 있느냐, 메시지가 담겼느냐가 아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대 부패한 종교와 교회, 그 교회의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통찰이며 반성이다.

누가 계승자인가, 예수님이 어떤 자를 어떻게 생각하셨는가가 그리 중요한 것인가. 나는 종교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에 부자가 교회에 낸 성금보다 가난한 어린 아이가 교회에 낸 동전 한 닢이 더 귀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 종교가 사람 위에 군림하여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에서 더 낮은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수수께끼를 풀려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부패한 교황과 권력을 쥔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교가 힘과 권력과 결탁하는 것이 하느님과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인간을 구원하려 하셨던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늘날도 그 당시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천주교를 믿건, 기독교를 믿건. 이슬람교를 믿건, 그들에게 자비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 종교만이 제일이다. 그들 모두를 쓸어내자. 십자군 전쟁 때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말이다.

이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는 종교재판관의 딜레마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단의 증거를 잡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단자를 종교재판이 아닌 방식, 즉 개인의 살인으로 처단한 것도 그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 들을 섬기지 말라
3.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지니라.
7. 간음하지 말지니라.
8. 도적질 하지 말지니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지니라.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여기의 6번째에 해당하는 것을 어긴 자가 비록 그 뜻이 옳다 하더라도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어디에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를 처벌하거나 죽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종교를 모르지만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설마 하느님이나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님이 이단이라는 이유로 죽은 일이 있는데 다른 자들을 이단이라고 해서 죽이라고 하셨을까? 그럴리 없다고 믿고 싶다.

내용을 얘기하면 재미가 없어질 것 같아 내용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다. 읽어보시기 바란다. 다빈치 코드보다 낫고 장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내세울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이 80%의 사실과 20%의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한 분들... 보시기를... 보시고 직접 판단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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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8-1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구약의 하느님은 죽이라는 말을 하지요. 유목민 사회에는 그런 규율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 시대 상황에 적절했던 율법을 현대에도 똑같이 적용하려는 이들이 있어 문제지요.

물만두 2005-08-10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느님이 그러섰군요... ㅠ.ㅠ

panda78 2005-08-1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긴 한데 너무 얇은 책 두 권이라 망설여지네요. ^^;
그런데 구약의 하느님은 정말 무서워요. 헐.

물만두 2005-08-10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그리 얇지 않아요^^;;;

설박사 2005-08-1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후의 만찬...제목이 너무 진부하면서도 인상적입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오해가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고요. 현재...십계명은 문자적인 내용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십계명은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에 하나님께서 써주신 헌법 정도인데 10개 항목으로 사람들의 모든 생활을 규제한다는 것은 어렵죠. 중요한 것은 법 정신입니다. 너무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그 얘기는 줄입니다.
종교 개혁 당시의 천주교는 가장 부패한 종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의 변질된 모습이 아니라 그 전의 모습을 보실 수 있다면 아마 생각이 조금 달라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소설을 읽지 않지만 이 책이나 다빈치 코드 정도는 읽어보고 싶네요.. ^^

물만두 2005-08-1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 몰라요. 종교인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읽으신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다빈치 코드보다는 낫습니다^^

신데렐라엄마 2005-08-1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는 신이 세운 게 아니라 인간이 세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권력을 쥔자들의 힘의 논리가 반영된다고 봐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교회. 홀로코스트 학살을 방관한 교회. 공산주의 척결에 나선 교회.
흐~끔찍하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베드로가 아니라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도 요한이 초기 교회를 세웠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혁명은 정권을 쥐고 나면 거짓이 되고 만다는 메를로 퐁티의 말이 언제나 옳은 걸까요? 아니면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까요?

물만두 2005-08-1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문제는 언제나 인간이죠. 글쎄요. 희망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쥐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것마저 없다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나그네 2005-08-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학자 조세프캠벨에의하면 기독교나 유태교,이슬람세계의신화는타자에대한 배척이 다른종교보다 강하다고했습니다.
예를들자면 호머의일리아드나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에서 그리이스의적인 군대의적인 헥토르나페르시아의황제에게도 작가는 그에게 찬사를주저없이 보내지만
구약성서에는 적들은 여자와아이까지도 남김없이 죽이라는 귀절이 수없이 발견된다는거죠
뿐만아니라 여성을 죄악의근원으로 몰아붙이는신화는 이들신화밖에없다고 일갈했습니
아마도 유목민족이다보니 적과의공존을허용할수없었던 환경의반영이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편견과증오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부르짖었건만 후세들은 그렇게 행동을하지못했습니다.
천주교뿐아니라 불행하게도 개신교도 이런부정적인면은확실하세 물려받았죠
다행히 지금은 많이 변해가는듯이보이지만요
리뷰를보도 꼭 한번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물만두 2005-08-1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보세요. 최후의 만찬이 포커스가 아닌 작품이라 더 맘에 드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