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동서 미스터리 북스 26
뒤 모리에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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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처녀인 주인공 소녀. 나이 든 부인의 말벗 겸 하녀로 고용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이제 막 소녀에서 벗어난 여자. 그녀의 운명은 그녀가 한 남자를 만나면서 변한다. 그녀는 그를 로맨스 소설처럼 만났다고 생각하고 그런 멋진 삶을 꿈꾸며 그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 그의 죽은 전 부인의 그림자와 아직도 그 전 부인을 잊지 못하는 가정부, 그리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의 속을 알 수 없는 행동과 눈빛이다. 레베카는 그렇게 부유한 저택에 감금되어 순진함을 잃고 어른이 되지만 그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남은 것은 낭만적 사랑이 아닌 인내와 예전과 다름없는 자신의 처지뿐이었다.  

이 책은 진정한 고딕적 추리 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운명을 낯선 남자에게 맡겨 버리고 그때부터 주인공 소녀는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신을 하게 된다. 순진한 소녀가 강한 여인으로 바뀌어 다시 운명이라는 가혹한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되기까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점점 조여 오는 알 수 없는 공포로 그려내고 있다. 잠깐 잠깐 미래의 장면에서 회상하는 과거로 바뀌는 장면은 어떤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사건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서 레베카는 진정한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주인공의 변화하는 심리 묘사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공포와 불안,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탁월함은 가진 작가다. 다프네 뒤모리에는. 여기에 남자 주인공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주인공을 통해 불안감을 유발하고 특히 가정부의 모습은 영화에서의 섬뜩한 눈빛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왜 제목이 '레베카'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이 전 부인 레베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녀를 보지 못한 주인공조차도 그녀의 영향력 아래에서 놓여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작품은 마지막까지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압권은 마지막 몇 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극한에 다다른 공포와 불안, 그리고 그것 뒤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주인공과 레베카는 그렇게 공존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었고 영화도 봤으니 비교를 잠깐 해보자면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영화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의 섬뜩함이 더하기 때문이다. 눈빛 하나로 무언의 공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건 책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를 먼저 본다면 책을 읽을 기회가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므로.  

이 작품은 마치 19세기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꼭 추리 소설로 읽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정한 고딕 추리소설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고전적 품위와 추리소설적 서스펜스가 적절하게 어울어진 작품이라고나 할까. 암튼 읽게 되어 영광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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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긋 2004-07-18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치명적 사랑'과 비슷한 내용인가요?
루이자 메이 올콧 작품...?

물만두 2004-07-18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못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치명적 사랑을 하는 건 아닙니다. 글쎄요...

나그네 2004-07-31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이자 메이올콧의글중에 강렬한 사랑이야기가있습니다.
제목은 잊었는데 제인에어가 로체스터의 후처로가는데 열받아쓴글이라는데 살려고했는데 곧자취를 감추었더군요
방긋님이 말하시는게 그작품인거같습니다.
레베카역시 제인에어의영향이 느껴집니다.
어떻게보면 제인에어에대한 오마쥬이기도하면서도 패로디이기도한거같다는생각이듭니다.
영화도 좋지만 작품도 매력적입니다.
다프네 모리에의 다른글도 출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라던가 나의사촌 레이첼도 수작이라고 하던데요

물만두 2004-07-31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전 고딕 소설이 별로라서... 다프네 뒤모리에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보고 싶네요...

2005-01-07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