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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닮은 사람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89
로알드 달 지음, 윤종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동화 작가로 더 유명한 로알드 다알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추리 단편집을 만들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가 동화 작가라는 사실이 의아하게 생각될 것이고 동화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가 이런 추리 단편들을 썼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느껴질 것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쉬운 작가다. 그가 더 많은 추리 소설을 남기지 않을 것이, 그가 동화만큼 많은 장편 추리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말이다. 스탠리 엘린의 <특별 요리>와 던세이니의 <두 병의 소오즈>에 비견될 만한 작품인 <맛있는 흉기>와 <맛>, <문신>들을 남긴 작가이기 때문이다.
로알드 다알의 작품은 그 특성을 잡아내기가 참 미묘하다. 그의 1954년 에드거상 수상 작품 <맛있는 흉기>를 보면 대단한 추리적 트릭을 사용하는 것 같고 <맛>을 읽으면 블랙 유머가 느껴지고 <남쪽에서 온 사나이>를 읽으면 공포를 맛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다양함이 특색이라면 특색이지만 더 특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어떤 깊이다. 한번 읽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두 번, 세 번 읽게 되면 좀 더 섬뜩해지고 좀 더 잔인함을 느끼게 된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피부>나 <목>같은 작품이 그 예다. 그래서 이 작가가 사랑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피부>였다. 이 작품에서 풍겨 나오는 공포는 처음부터 예견을 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전율하게 만든다. 그것은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를 보며 귀신이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왔을 때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과 같다. 거기에 더해지는 진한 페이소스는 작가가 얼마나 단편의 대가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나의 사랑스런 아내여, 비둘기여>같은 약간 평범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읽고 나면 전율하게 된다. <잘 나가는 폭슬리>같이 유머러스한 작품이 있는 가하면 <음향 포획기>같이 황당하면서 철학적인 느낌의 작품도 있다. 또한 동양적 어떤 에도가와 람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괴함마저 느끼게 한다. 누구나 생각하고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기 마련인 것들에서 미스터리와 호러를 적절히 뽑아내는 로알드 달. 정말 위대한 단편 작가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추리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군인>은 글쎄. 읽어본 사람들 각자의 생각에 맞길 수밖에 없을 듯 하다. 로알드 달에게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작품이란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진가는 독자의 손에서 빛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어쨌든 다 읽고 나면 스멀스멀 퍼져 나가는 공포를 되새김질하듯 꺼내게 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고 그런 공포의 미학이 에드거 앨런 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대부분 약간의 은근한 공포가 이 작가의 매력이지만 이 작가가 동화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 지 않을 정도로 스탠리 앨린의 <특별 요리>처럼 다양한 요리의 공포와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로드 던세이니의 <두 병의 소오스>처럼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공포와 그 공포를 추리하는데 매력을 느끼게 되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