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이 너무 많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 2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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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추리소설에서 보면 사건이 발생해서 범죄를 입증하려고 경찰이나 탐정이 등장했을때 증인이나 증거가 너무 없어 애를 먹으면서 증인과 증거를 찾고, 범인을 잡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범인도 미리 정해져 있고 증인은 차고도 넘칠 정도로 많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 증인들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바람에 피터 윔지경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느라 정말 구름을 뚫고 날라 다녀야 했다.  

<시체는 누구?>에서 사건을 해결한 뒤 피터 윔지경과 하인 번터는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지내던 중 피터의 형 덴버 공작이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급하게 귀국한다. 이미 덴버 공작은 감옥에 갇힌 상태고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말하지 않는 이상함을 보인다. 여기에 살해된 자가 여동생과 결혼하려던 남자였고 그들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다퉜다는 것이 밝혀지고 여동생마저 오빠를 살인자로 의심하는 상황과 증거물인 총이 덴버 공작의 것이라는 점이 아주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귀족이 과연 사형을 당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가운데 누구보다 고지식한 형을 잘 아는 피터는 필사적으로 형의 무죄를 입증할 단서들을 추적한다. 

피터 윔지경이 밝혀내야 하는 비밀은 이런 것들이다. 동생이자 오빠인데도 말을 하지 못하다니 참 대단한 형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이동생은 분명 누군가 살인자를 아는 것 같은데 큰오빠를 빼낼 생각을 안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녀가 숨겨주는 자는 누구이고 비밀은 무엇인가와 덴버공작이 그 시간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리바이를 대지 않는 이유와 필사적으로 제 목숨을 걸고 감추려는 비밀 또한 무엇인가, 그리고 덴버 공작과 매제가 될 캐스카트 대위가 불명예스럽게도 카드 사기꾼이었는지의 확인과 그것을 알려준 편지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도 비밀에 포함된다. 자, 피터 윔지경 실력 발휘를 한번 해보라구. 

작품은 피터 윔지경의 대대적이고 장황스런 활약상을 영웅담처럼 보여주고 있다. 전작에 비해 이 작품에서 피터 윔지는 진짜 탐정처럼 뛰어 다닌다. 번터와 파커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추리하고 추측하고 증인들의 이야기속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탐문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때론 셜록 홈즈처럼 기어다니며 증거물을 찾고 발자국에 매달리고, 때론 현대적 탐정처럼 증거 수집을 위해 다른 나라의 공조 수사도 하고 자신이 프랑스로 미국으로 직접 증거와 증인을 찾아 다니는 과감한 모습을 통해 좀 더 다른 모습의 피터 윔지경의 매력을 발견하게 한다. 웃음 코드가 줄어든 게 아쉽기는 하지만 - 늪에 빠진 장면과 마지막 술주정이 그나마 웃겼다. - 더 미스터리적이었음에 만족한다. 

이 작품에서 기본을 이루는 것은 여동생의 결혼이다. 결혼 전까지 자신의 재산권 행사를 오빠에게 의존하게 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귀족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20세기초에도 변혁기를 맞은 상황하에서도 그들의 특권 의식과 계급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부르주아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를 자랑스러워 하는 하위 계층의 귀족 계층의 눈에 비친 위선과 하위 계층으로 그들과 반대되는 가정으로 등장하는 그림소프와 그의 아내의 사는 모습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사회적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뭐, 주인공이 귀족 탐정인데 당연한 거겠지만 좋게 보자면 어떤 계급이든 계층이든 사람 나름이라는 것이다. 어디나 위선과 비밀은 존재하는 것이고. 

제목은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장이 너무 많다>, 그 작품의 오마쥬 작품인 랜달 개릿의 <마술사가 너무 많다>를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모방한 것 같다. 하지만 원제목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귀족 재판이라 할 수 있는 재판 장면의 생생함과 귀족들의 특권 의식에 대한 묘사 - 설마 귀족을 사형시키겠어? 하는 느낌의 - 도 좋았다. 뭐, 부르주아 추리소설이라고 불리운다지만 귀족 탐정이 등장하는데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어쩌면 변화하는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귀족들을 희화하거나 아니면 그런 모습에 대한 향수를 담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시리즈가 피터 윔지경 시리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동시대의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코넌 도일이 만든 명탐정 셜록 홈즈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에 더 큰 의의를 두어야만 하지 않나 싶다. 피터 윔지경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셜록 홈즈의 단서를 통한 추리와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셜록 홈즈는 척 보고 마술사처럼 이야기하지만 피터 윔지경은 좀 굼뜨게 나중에 단서가 모아지고 나서 깨닫게 된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세심하게 범죄 현장을 뒤져서 단서를 찾아내고 옷에 묻은 흔적을 CSI에서 하듯 채취해서 분석을 의뢰하는 점, 측정 단위를 세밀하게 새긴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단서의 추적을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점은 셜록 홈즈의 후예다운 모습이었다. 여기에 셜록 홈즈가 가지지 못한 유머러스한 점은 피터 윔지경만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매력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셜록 홈즈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3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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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브라운 2010-04-2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즐겁게 읽고 있어요 ^^ 세이어즈는 정말 시대감 안느껴지는 고전인 것 같아요~ 저두 3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만두 2010-04-26 11:58   좋아요 0 | URL
아주 좋은 고전이죠. 이 시리즈는 몽땅 나왔으면 합니다.

BRINY 2010-04-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체는 누구?]가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는데, 이건 읽고 싶어집니다. 시리즈 몽땅 나오는 건 대환영인데, 무척 늦게 나와주는군요.

물만두 2010-04-26 15:15   좋아요 0 | URL
전 시체는 누구?는 유머러스한 면이 좋았어요. 미스터리는 거의 없었지만요.

카스피 2010-04-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윔지경 만세지요^^ 좀더 많은 작품이 나왔으면 합니다.

물만두 2010-04-27 09:57   좋아요 0 | URL
그럼요^^

lazydevil 2010-04-2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첫권과 둘째권의 간극이 너무 크네요. 걍 한권 나오고 끝인 줄 알았어요.

물만두 2010-04-27 15:54   좋아요 0 | URL
늦게라도 나와주니 고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