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기억들 Medusa Collection 4
토머스 H. 쿡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범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그 범죄의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은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듯이 범죄도 늘 되풀이된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이다. 기억하기 싫은 밤의 기억들, 사악한 기억이 이제 막 펼쳐지려 한다. 

에드거상, 앤소니상 수상작가 토머스 H. 쿡이 단순한 이야기를 썼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 그레이브스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하는 이야기와 그에게 의뢰되는 50년 전에 살해당한 한 소녀의 사건을 상상을 더해 이야기로 재구성해달라는 이야기는 처음에 내겐 생뚱맞게 다가왔다. 그리고 폴 그레이브스가 그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이 너무 밋밋해서 작가는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걸까를 과도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다 보면 이야기는 간단한데 말이다. 

너무 일찍 부모를 잃은 남매, 외떨어진 시골 농장에서 남매만 산다는 자체가 위험 그 자체인데 그 시절, 그 시골에서 범죄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린 남매만 살도록 방치한 것이겠지. 또한 남매도 둘이 살아도 무방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도 안이했다. 범죄는 일어났고 누나는 잔인하게 동생의 눈앞에서 살해당했다. 남동생은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19세기를 배경으로 범죄소설을 쓰는 작가가 됐다. 하지만 책 속에서도 악당이 탐정보다 강해서 언제나 탐정은 곤욕을 치르고 악당은 유유히 빠져나간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런 공포를 억누르고 자살만을 꿈꾸며 금욕적 삶을 사는 그레이브스에게 리버우드의 대저택에서 앨리슨 데이비스 부인이 사건을 의뢰한다. 자신의 저택에서 살던 자신의 친구와도 같던 한 소녀 페이예가 살해된 사건을 좀 더 그럴듯하게 소설처럼 꾸며 주기를 바라는 이상한 의뢰다. 범인이 누군지도 안다. 하지만 그 범인은 재판을 받지 않고 자연사했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페이예의 어머니를 위해 그녀가 납득할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그레이브스는 누나가 생각나고 과거의 공포로 돌아가게 될 줄 알면서도 그 의뢰를 맡아 사건을 다시 꼼꼼히 조사한다. 

사람들은 상처를 헤집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봐야 좋을거 하나 없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잊어버리고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러기 쉽지 않다. 선한 사람들은 늘 죄책감을 지고 산다. '내가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범죄를 저지른 악마들은 죄책감이라는 것, 양심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범죄를 또 저지르며 살다 잡히고 나와서 또 저지르고를 반복하는데 말이다. 

작품은 누가 페이예를 죽였는가와 왜 그레이브스는 누나의 기억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인가의 두 축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시점이 1940년대에서 1960년대, 그리고 사건을 생각하다 자신의 책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19세기까지 왔다갔다 한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범죄라는 공통점, 피해자의 고통,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이다. 그것을 작가는 적절하게 잘 배치하고 상충되지 않게 잘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은 조금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회피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레이브스가 침묵을 택했듯이 말이다. 리버우드 대저택의 여주인은 살인사건 이후 평화롭던 그곳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곳이 평화롭다 생각한 것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그곳은 절대 평화롭지 못한 곳이었으니까. 결국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피해자의 입장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작품 속에 이런 실험 내용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을 마주보게 앉혀놓고 아이들의 한쪽 팔만 자유롭게 해서 전기 스위치를 누를 수 있게 한다. 아이가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아이에게 전기가 흐르고 스위치를 누르면 부모에게 전기가 흐르게 된다. 그런 공포속에 아이들은 모두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포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순자의 성악설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공포에 약하다. 그러니 그 밤의 기억들이 되풀이되는 작금의 상황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단순한 공포를 공포 그 이상으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폴 그레이브가 쓴다는 소설은 마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를 연상시킨다. 시골이 무서워 뉴욕으로 나온 폴 그레이브스, 하지만 그는 늘 높은 빌딩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생활하고 뻔뻔하고 무지한 사람들 빼고는 모두 저마다 고통과 절망이라는 삶의 끝자락에 감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여인이 등장해 그와 같이 사건을 풀며 그의 삶에 온기를 지피려는 듯하다. 피해자라고 꼭 피해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 아니냐고 말이다. 작품 속에서라도 악당을 잡지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삶에 희망이 있어 사는 건 아니다. 만약 폴의 누나 그웬이 지금 그에게 나타난다면 너라도 내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으로. 그 기억들을 짊어지고 말이다. 잔인하다 하지 말라. 네 침묵은 그보다 더 잔인했다. 인간이 공포라는 거대한 정신적 고통속에서도 과연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살아가야 한다면 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답을 요구하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포 그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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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연휴에 꼭 읽어보아야겠네요.

물만두 2010-02-23 14:54   좋아요 0 | URL
연휴 잘 보내셨어요^^

paviana 2010-02-20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즉 우울하세요? 아니면 어머님과 올림픽 보시느라 책 안보고 계신나요? 궁금해서 와봤어요.^^

물만두 2010-02-23 14:55   좋아요 0 | URL
감기걸렸어요 ㅡㅡ;;;

레몬향기 2010-03-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결말을 예측해버려서;; 너무 흔한 설정이 아닌가 싶어요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예요 ㅎㅎ

물만두 2010-03-10 11:04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