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처음 본 이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처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블랙 에코>를 본 해는 2001년이었다. 그 뒤로 장장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인이 다시 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같다. 이런 절묘함이라니. 그런데 읽는 내내 나는 우울했다. 고독한 코요테 LAPD 해리 보슈는 은퇴한 사립탐정이 되어 있었고 5살짜리 딸을 둔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내 기억 속의 해리 보슈는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지. 이래서 시리즈는 제발 순서대로 출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해리 보슈가 등장하지 않는 <시인>의 후속작이기 때문에 연속성을 가지고 본다는 장점을 준다. 시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범이 사라진지 8년만에 FBI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한 레이철 월링 요원에게 소포를 보낸다. 그리고 시인은 레이철의 뒤를 밟는다. 그 즈음 해리 보슈는 친구이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전직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컬럽의 아내에게서 죽은 남편이 살해된 것 같다는 의뢰를 받는다. 해리는 친구를 살해한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가 예전 사건을 조사하던 문서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다가 추적을 시작하는데 거기서 레이철과 조우하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에는 해리의 전처와 딸이 산다. 그리고 그곳으로 테리는 그를 인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미 그곳에서 많은 피해자들을 발견한 FBI가 진을 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시신들이 있는 이유를 모른다. 그들이 어디에서 온 이들인지도 모른다. 삼각형의 한 점을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고 해리는 발견한다. 거기에서 해리와 자신이 단지 그들이 시인을 잡기 위한 유인물일뿐임을 알게 된 레이철은 해리와 함께 해리가 발견한 곳에서 시인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전작 <시인>이 긴장감 넘치는 스릴을 선사했다면 이 작품은 짜임새있으면서 근원적인 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하나의 작품을 1부와 2부로 나눠서 작가가 1부에서는 범죄를 다루고 2부에서는 그 범죄의 이면을 다룬 느낌이다. 여기에 빈틈없고 물러서지 않는 해리 보슈의 노련함은 잘 어울린다. 그의 어린 딸이 세상의 악에 노출되기 전까지 순수함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해리는 어린 시절의 시인을 불쌍히 여긴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지만. 

크라임 스릴러에서 이렇게 탐정 추리소설로 작품은 변신을 한다. 하지만 변신을 해도 악마적인 연쇄 살인범 시인의 그림자는 늘 드리워져 있다. 거기에 시인이 찍은 테리 맥컬럽의 가족 사진과 해리 보슈를 아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딸 매디의 안위까지 걱정하게 만든다. 범죄의 공포는 픽션일지라도 무섭다. 하지만 이 점이, 가족이 등장하는 모습이 작품에 균형점을 찾게 해준다. 단순한 크라임 스릴러가 아닌 시인의 어린 시절 그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에게서 자랐다면 그의 모습이 지금과 다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서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생각해보면 시인이 왜 등장했는 지 알 수 있다. 시인의 성격을 안다면, FBI가 정치적인 면을 버렸다면 진작에 그의 타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은 전작 <시인>에 비하면 스릴은 적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끼던 속도감 대신 이 작품에는 해리 보슈가 있다. 해리 보슈를 통해 전통적 추리소설의 맛을 현대에 잘 살려내고 있다. 시인을 해리 보슈가 상대하게 만든 것은 작가의 일종의 메시지다.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하는 FBI의 능력으로는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거기에 마지막 반전까지 기막히게 잘 어울어지고 있다. 그 반전은 진정한 반전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기도 하다. 변함없이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친구의 살인자를 잡으려는 해리, 딸을 생각하고 예전 월남전을 생각하며 강에서 살아 남은 것을 기뻐하는 해리, 다시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해리 보슈와 그가 선사하는 고독이. 천상 경찰인 해리 보슈는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혼자 파트너없이 다니던 그가 파트너를 원하게 되고 딸을 위해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들으며 딸에게 불러줄 생각을 한다. 여전히 그에게 세상은 어둡고 나이가 들어 희망적일 것도 없지만 그는 다시 천사 없는 천사의 도시로 돌아와 천사는 보이지 않는 거라는 딸의 말을 믿으려 한다. 그런 해리 보슈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한번 헐리우드의 코요태는 영원한 코요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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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기 2009-09-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가 제대로 출판되지 않을 때,,, 전 분노합니다 ㅠ ㅠ
읽기 힘들어요!!

물만두 2009-09-11 19:08   좋아요 0 | URL
전 워낙 많이 당해서 그러려니합니다.
이젠 화낼 기운도 없습니다 ㅜ.ㅜ

[그장소] 2013-08-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순간에 집중하고 휘리릭 읽어버린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