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블랙 캣(Black Cat) 18
로버트 리텔 지음, 김수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브루클린의 중국집 2층 폐업한 당구장에서 살면서 사립탐정 일로 먹고 사는 전직 CIA요원 마틴 오덤에게 어느 날 한 여자가 자신의 형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하지만 마틴은 거절을 한다. 자발적 실종자를 찾는 일은 품만 들고 성과가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난 뒤 그의 예전 상사인 프레드가 그를 찾아온다. 마치 마틴을 감시하고 있었던 듯 실종자 찾는 일만을 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고 간다.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마틴은 사마트라는 실종자를 찾는 의뢰를 받아 들이고 이스라엘까지 간다. 

유대법에 따라 남편이 랍비 앞에서 종교적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 평생 재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딸을 위해 사위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가족의 정체는 금방 알게 된다. 이들은 FBI에 의해 증인보호프로그램으로 보호받고 있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가족이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찾아 이스라엘로 딸과 결혼해서 간 사마트는 러시아의 마피아라 불리는 신흥재벌의 조카로 폭력단 싸움에서 잠시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한 남자였다. 마틴 오텀과 언니를 소개하기 위해 작은 딸이 떠난 뒤 마틴 오텀의 벌통을 봐주던 중국 식당 종업원 민이 벌통이 폭파되어 죽게 되고 사건을 의뢰한 딸의 이혼을 원한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마틴 오텀은 다시 한번 위험한 일에 들어선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전직 CIA 요원이 사립 탐정이 되어 실종자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고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십여년에 걸친 마틴 오텀이 단테 피펜과 링컨 디트먼이라는 레전드로 활약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을 통해 국제 정세의 변화를 사실적 픽션으로 담아내는 작품이고 또한 그 레전드라는 것이 단순히 CIA에서 사용되는 위장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인간 모두에게 적용될 수도 있는 변하는 인격, 살아가기 위한 위장과 지금 쓰고 있는 속마음과 다른 겉모습도 레전드라고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여기에 스파이 소설이 지니는 매력인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겪게 되는 위험과 마틴 오텀을 방해하는 세력을 피하는 마틴 오텀의 활약과 마틴 오텀의 여러 레전드를 만나고 여러 나라의 비밀 요원들과 관계를 보여주면서 마지막에 알려주는 이 작품의 큰 그림으로 뒤에 나오는 대 반전은 이 작품이 스파이 소설의 대가 로버트 리텔이 새로운 스파이 소설의 장을 열었음을 알려주는 멋진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LA 타임즈 도서상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했을 때보다 더욱 와닿는 스파이 소설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사건을 수행하는 것은 마틴 오텀이지만 과거 아일랜드 출신의 폭탄 전문가 단테 피펜과 남북전쟁 전문가이자 무기거래상으로 활약한 저격의 명수인 링컨 디트먼이 행한 스파이로서의 행적을 읽는 것은 스파이소설의 재미를 독특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고 여러 레전드를 가지다보니 원래의 자신을 잃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마틴 오텀의 자아 찾기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있다. 마틴 오텀의 레전드들은 레전드일뿐일까, 아니면 마틴 오텀의 다중인격장애가 낳은 산물일까 정신과의사도 확신을 못할 만큼 그들은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고 여러 레전드들 사이를 오가며 그것으로 씨실과 날실을 삼아 탄탄한 구성의 현대적 스파이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마틴 오텀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스파이 소설이라기 보다는 끈질긴 탐정 소설에 가깝다. 그의 성격은 스파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잔인하고 냉정함이 결여된 인간이 스파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단테 피펜이 등장하는 장면과 링컨 디트먼이 등장하는 장면은 스파이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그들 내부로 침투해서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폭파 기술을 전수하고 무기를 판매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의심을 받기도 하고 오사마 빈 라덴과도 만나게 된다. 이런 현실적 인물의 등장은 이 작품을 팩션처럼 느끼게도 만든다. 또한 이들이 행한 일들이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불행한 역사를 느끼게 되고 버려진 스파이라는 점에서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로버트 리텔의 스파이 소설, 아니 스파이 소설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파이 소설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으로 통해 세계사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커질지도 모른다. 거기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다각적인 관점에서 읽게 되는 작품이다. 개인의 삶이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듯이 역사 또한 우리고 보고 듣는 것이 다는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세 사람의 인생을 살든, 그로 인해 진짜 인생을 어디에선가 잃어버렸든지간에 삶은, 역사는 계속되는 법이니까. 이 작품을 읽으면 대가의 작품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존 르 카레와는 또 다른 놀라운 스파이 소설을 만들어낸 로버트 리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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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0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탐정소설 스파이소설 너무 좋아요~~
또 땡투를 날리며 저는 갑니다 ㅎㅎ

물만두 2009-06-03 19:09   좋아요 0 | URL
아주 좋습니다^^

lazydevil 2009-06-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좋은 스파이 소설을 읽고 나면 항상 시대와 역사를 보는 눈을 넓어지는 것 같아요. 세상을 읽는 작가의 통찰력이 작품에 묻어나서 그렇겠죠. 리텔의 새 작품이 기대됩니다.

물만두 2009-06-04 13: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은 작품입니다.

paviana 2009-06-0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어찌 지내시나 궁금해서 들렀어요. 페이퍼를 안 쓰시니(너는 쓰냣!!) 리뷰에다 안부를 묻기가 좀 그렇거든요. 왠지 여기는 공적인 공간 같아서.ㅎㅎ
전 잘 있어요.

물만두 2009-06-05 13:11   좋아요 0 | URL
글을 올리는 한 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리뷰 올리기도 좀 벅찬것도 있고 또 안쓰다보니 페이퍼는 안쓰게 되네요.
잘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