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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ㅣ 블랙 캣(Black Cat) 17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텔에서 20년동안 도어맨으로 일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산타 역할을 하며 호텔 지하에서 살던 한 남자가 살해되는 일이 발생한다. 에를렌두르 반장은 크리스마스에 집에 있기 싫어 호텔에 머물면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 남자의 감춰진 지난 날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한겹 한겹 벗겨진다.
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고운 보이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가졌었다. 셜리 템플같은 어린이 스타였던 이 소년은 목소리를 잃고 한순간 추락하고 만다. 자신이 원하지 않던 길을 강요에 의해 가다 어린 시절 모든 꿈을 박탈당한 것이다. 또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추운 겨울 동생과 함께 양떼를 찾으로 갔다 눈보라 속에 길을 잃고 동생을 잃고 자신만이 구조되어 지금까지 그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 한 소년은 살해당했고 다른 한 소년은 범인을 찾고 있다.
셜리 템플의 소공녀 포스터가 도어맨의 방을 장식한 유일한 것이었다. 내가 셜리 템플의 영화를 본 것이 197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어린 눈에도 셜리 템플은 깜찍하고 귀여웠다. 지금은 무엇을 하나 찾아보니 아직 살아 있었다. 할머니 셜리 템플도 어린이 스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잠깐 스타가 되었다가 한순간에 갑자기 추락해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타뿐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 꿈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어른들의 잘못이고 사회의 책임이다.
다시 한번 작가는 가족의 존재에 대해 묻고 있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아버지, 동생의 죽음을 자신들의 삶에 닥친 불행이라 여기는 누나가 있고 가정폭력에 상처입은 아이가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정신적 상처를 아직도 안고 살며 그 상처를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물려준 아버지도 있다. 아이는 순식간에 자란다. 그 순간을 놓치면 아이를 보살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목소리를 잃는 것보다 그것은 더 심각하고 끔찍한 일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번 너무 늦게 깨닫는다. 마지막에 들려주는 아베 마리아는 노래가 아닌 가족을 부르는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였다. 가족을 찾는 너무나 처절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주는.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정말 휴먼 미스터리의 힘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과도한 잔인함, 엽기적 살인, 흥분과 스릴이 없다.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미스터리함이 있다. 아이슬란드라는 작은 나라, 관광객의 말처럼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나라의 평범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드러내서 모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작가다.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는 읽고 나면 금방 또 기다리게 된다. 딸이 흔들린다. 어떻게 에를렌두르 반장이 잡아줄지 다음 작품에서의 그의 모습과 이제 막 마음의 문을 열고 로맨스를 시작한 에를렌두르 반장의 변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