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으로 향하다 - 리암 니슨 주연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9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뉴욕이라는 도시는 현대 사회의 범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도시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그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는 결국 브루클린에는 비상구가 없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는 비상구는 없는... 그렇게 브루클린에 비상구가 없다는 것이 너무 와 닿는 작품이다. 백주 대낮에 여자가 도로에서 납치를 당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그래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살아간다. 마치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어찌하겠는가. 거기다 총이라도 들고 있다면 그야말로 나서는 일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되고. 어쨌든 젊은 주부는 그렇게 납치가 되고 그녀의 남편 케넌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온다. 남편은 마약거래상이라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돈을 건내지만 돌아온 것은 아내의 처참한 죽음뿐이었다.  

알코올중독자이자 무면허 탐정인 매튜 스커더는 금주 모임에 나가고 애인인 경찰 시절 알고 지내던 창녀 일레인과 잘 지내고 있다. 그의 범죄자 친구 믹은 아일랜드로 경찰을 피해 도망중이고 어쩌면 평온해서 더 술의 유혹을 느끼게 되는 날들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금주 모임에서 만난 남자 피터에게 사건 의뢰를 받는다. 마약거래상의 형이 동생의 사건을 의논하고자 한 것이다. 매튜는 사건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범인을 찾아달라는 의뢰. 복수를 하려는 것을 돕는 일이지만 범인을 잡아 경찰에 넘길 수도 있으니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할 일이라고 여기고 탐문에 들어간다.  

하드보일드의 대가 로렌스 블록은 매튜 스커더를 통해 뉴욕이라는 도시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건은 점점 잔인해지고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마약을 파는 일도 나쁜 일이다. 알코올 중독도 나쁜 일이다. 매춘도 나쁜 일이다. 살인은 더 나쁜 일이다. 하지만 가장 나쁜 일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점이다. 범죄자들은 점점 범죄를 저지르면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되고 있다. 아니 짐승만도 못하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끝이 어디인지 생각할 수조차 없고 두렵기만 하다.  

이 작품에서 매튜 스커더는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한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범죄자의 성향을 유추해서 미해결 사건을 찾기도 하고 티제이가 만나게 해준 콩 브라더스라는 해커를 고용해서 전화번호를 뒤지기도 한다. 매튜의 꼬마 친구 티제이의 활약은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길거리 흑인 청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티제이가 아니었다면 매튜는 손 놓고 있어야 했을지 모른다. 또한 늘 생각하게 되는 거지만 경찰과 탐정 중 누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날까 하는 문제다. 경찰은 여러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범죄는 날로 늘어나고 인력은 한정되어 있고 각 지역간 알력은 심해서 협력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해결 사건은 늘어나고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으면 이 작품에서처럼 알아차리기 쉽지 않게 된다. 하지면 탐정은 하나의 사건을 맡아 해결한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는 어쩌면 경찰보다 탐정이 더 믿을만한 협력자일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 사립탐정제도가 있다면 어땠을까를 이런 작품을 보면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매튜와 일레인을 통해 브루클린에 비상구는 그래도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여전히 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세상 어떤 끔찍한 곳에서라도 사랑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살아볼 만 하다고, 아니 살아 있는 자는 살아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믿어볼 수 밖에 없다. 뉴욕에서 누군들 처음부터 마약상이 되고자 했을까. 누가 자신의 몸을 팔게 되리라 생각했을까. 누가 알코올중독자가 되리라 생각했을까. 누가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버린 걸까. 세상이 딱 좋은 놈, 나쁜 놈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살이가 고단한 것을 어쩌겠는가. 사연이야 다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쁜 것과 도와줄 것을 구분하는 매튜, 그런 매튜를 이해하는 일레인, 매튜를 무조건 돕는 티제이가 있어 끔찍한 일을 해결하고 다시 그곳에 남을 수 있는 것이리라.  

내가 매튜 스커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과 악,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마약상을 돕는 일은 찜찜하게 생각도 되지만 그렇다고 마약상의 아내가 그렇게 살해되도 된다는 건 아니다.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 이 작품을 보면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이는 매튜 스커더를 만나게 될 것이다. <800만 가지 죽는 방법>에서보다 한결 유머도 있고 말도 좀 많아 지고 달라진 매튜 스커더가. 그리고 그는 아직도 금주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튜가 술을 아직도 마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취하면 비상구를 찾을 수 없을테니까. 로렌스 블록의 따뜻한 하드보일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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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1-30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흑 전 수요일날 주문했는데 아직도 못받았어요 울컥~
그러나 기대기대

물만두 2009-01-30 15:12   좋아요 1 | URL
에고 설날 지나서 이제 갈겁니다.

진주 2009-01-3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영화는 못 봤지만,
삽입곡 a love idea는 좋아해서 자주 들었어요.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

물만두 2009-01-31 11:13   좋아요 1 | URL
저는 영화도 못보고 음악도 못들어봤지만 들은 풍월로 그냥 머릿속에 좀 있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9-01-31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잔인한 영화였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정말이지...
뉴욕에서 잠시 이방인 생활을 했던 어느 형님이 브룩클린 말하길...
분명히 누가 그 골목으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나오는 건 한번도 못봤다. 다른 나가는 길이 없는 골목인데..그들은 과연 어찌 된 것일까.궁금해 본토배기 친구에게 물어보니 시체도 못찾게 제거된 거라는 말을 들었다...라더군요.

물만두 2009-02-01 16:34   좋아요 1 | URL
아, 동생은 봤다고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정말 끔찍했다던데요.
그래서 브루클린에 비상구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으... 님의 말씀 들으니 무서워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