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보면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는 독자는 없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미스터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암색텐트라는 작은 연극단원들이 연극 한 편을 끝내고 휴가를 왔다 가는 길에 호텔 버스가 고장이 나서 기차 정류장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눈보라속에서 그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 호숫가의 거대한 서양식 저택을 발견하고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 집 사람들이 수상하다. 너무 무뚝뚝하고 주인은 얼굴을 볼 수조차 없다. 마침 그들과 같이 조난당해 먼저 와 있던 마을 의사와 그들 여덟명은 눈 속에 갇히고 어딘지 어두운 분위기의 저택에 갇힌 채 불안함 속에서 살인 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저택이 외부인의 미래를 알려준다? 저택 곳곳에 외부인의 이름과 같은 물건이 있다. 그리고 저택에는 그들이 모르는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무척 불안하고 공포스러울 수 있는 요소요소들이 클로즈드 서클과 비유 살인이라는 고전적 미스터리 방식을 만나 독자가 더는 그쪽으로 신경쓰지 않게 만들고 있다. 만약 작가가 좀 더 공포를 강조하고 싶었거나 독자에게 스릴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작가는 의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것을 배제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미스터리 안에서만 이용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작품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 무언가 나올 듯 분위기를 잡아서 독자가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결국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이라는 것,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점이 앞에서 기대가 컸던 독자에게는 조금 실망을 안겨줬을 수도 있고 아가사 크리스티식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앞에서는 약간 지치게 만들다가 마지막까지 가서야 비로소 만족을 주는 그런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볼 것이냐가 관건이겠지만 정통 추리소설로 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간적으로도 80년대니까 말이다.  

서양의 마더구즈 동요를 이용해서 비유 살인을 저지르는 작품이 많다. 이 책 안에서도 그런 작품들을 열거하고 있다. 반 다인의 '비숍 살인 사건'도 여기에 해당된다. 일본에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비유 살인에 해당된다. 이 작품에서는 일본 동요 '비'에 맞춰 살인이 꾸며진다. 저택의 주인이 드디어 나타나 연극 단원 중 소유자에게 범인을 찾아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살인은 이어진다. 1절만 있는 동요는 없는 법이니까. 왜 그들은 고립된 곳에서 살해당해야 했던 것일까? 범인은 왜 그때 자신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곳에서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을까? 살해된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저택은 정말 예언을 하는 것일까? 

작품은 앞은 약간 뜬금없는 감을 주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앞부분에서 독자에게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어 드라마적 요소를 조금 더 넣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지막이 좋아서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책을 덮으며 키리고에 저택이 관 시리즈의 핵심 중 하나인 나카지마 세이지가 지은 건물이었다면 어떴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탐정으로 여기에 합류하는 인물이 시마다 키요시였다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건 관 시리즈만 너무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책보다는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시각적으로 좀 더 만족을 줄 것 같고 오르골 소리는 청각적인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테니까. 무엇보다 거대한 키리고에 저택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미스터리가 될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8-12-2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었어요^^

물만두 2008-12-22 20:11   좋아요 1 | URL
저는 좀 더 오싹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초반부에 했다가 마지막이 좋았습니다^^

비로그인 2008-12-3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딴 저택에 고립... 그리고 살인!'
김전일 만화를 너무 많이 보았는지, 이런 설정을 들으면 김전일부터 생각나네요. ^_^;

물만두 2008-12-30 20:14   좋아요 0 | URL
일본 작품의 전형적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