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추리소설이 시작되어 처음 황금기를 맞았던 시대의 중편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출판된 작품들로 작품 자체만으로도 읽는 가치는 충분하다. 요즘은 추리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이 출판되고 있다. 하지만 그 외형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잘 팔리는 것 같다고 너도나도 출판하는 묻지마식 일본 추리소설과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서양 작품은 팩션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서 무늬만 팩션인 작품도 있고. 물론 좋은 작품이 잘 팔리면 좋겠지만 그것이 독자들의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그 시점에 나온 이런 책은 치우친 추리소설 출판계에 중심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프랭크 보스퍼는 처음 보는 작간데 그가 남긴 유일한 작품이 <3층 살인사건>이라고 한다. 희곡을 소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문체와 당시 하숙집의 풍경, 그들의 일상적 모습을 유쾌하고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의 스릴을 위한 반전이 아닌 재치넘치는 반전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재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숙집, 일을 잘 못하는 하녀, 억척스런 하숙집 여주인과 마음씨 좋은 딸, 존재감없는 아버지, 그리고 아는 것 많은 하숙인, 말 많은 노처녀, 인도인 학생, 무명의 작가, 이들 사이에 점점 높아가는 긴장감, 드디어 일어나는 살인 사건... 마치 그 시대 영국의 하숙집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고 연극을 보는 것처럼 다소 과장된 것 같은 표현은 화자가 작가이기 때문이겠지만 그 덕분에 독특한 재미를 만끽했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데드 얼라이브>는 그가 마지막에 설명하고 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지금처럼 과학 수사가 발전된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재판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미국의 배심원제도의 헛점은 지금도 논란거리지만 우리나라도 그 배심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시작 단계이니만큼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가 나쁜 형제와 농장 관리인, 이들 사이에 나타난 어여쁜 사촌, 나이 많은 노처녀 누나와 농장 관리인 편만 드는 아버지, 그리고 시골이라 이들 사이를 잘 아는 이웃들. 어느 날 이들이 싸우고 농장 관리인이 사라졌다면? 불에 탄 뼈와 그가 지니고 다니던 칼과 형의 지팡이가 함께 나타난다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단순한 작품이지만 이 안에 간과할 수 없는 심리적 맹점이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의 <안개 속에서>와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의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은 엘러리 퀸이 선정한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의 단편집 안에 들어 있는 작품들이다. 메이슨의 작품은 The four corners of this world에 수록 되어 있는 단편이다. <안개 속에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회원제 클럽 안에서 4명의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국의 해군 증강에 대한 국회 표결을 막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 싶다는 남자가 국회로 가려는 의원의 발길을 잡기 위해 처음 만난 남자에게 이야기를 종용하고 이에 미 해군이라는 남자는 자신이 간 밤의 안개 속에서 겪은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영국의 안개가 그렇게 짙은 것인지 안개에 대한 묘사가 스티븐 킹의 안개에 대한 묘사보다는 간결하지만 이해하기 쉬웠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그야말로 반전 그 자체였다. 영국의 회원 클럽 안의 묘사, 시대상의 반영은 재미를 한층 더해주는 양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개라는 것은 결국 그날의 날씨를 뜻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머리 속 생각을 뜻하기도 한다. 안개는 그런 이중적 의미로 남는다.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의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은 메이슨이 창조한 아노 탐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다. <독화살의 집>을 읽을때는 아노 탐정을 그렇게 자세히 알기 어려웠는데 이 작품을 통해 아노 탐정의 외양에서 그의 친구 리카르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포와로와 헤이스팅스처럼, 홈즈와 왓슨처럼 말이다. 한 젊은 친구가 지난 밤에 만난 여자가 겪은 절도와 살인 사건 이야기로 작품은 시작되는데 아노는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젊은이가 마약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환각에 의한 착각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신문에 나고 젊은 여인이 나타나자 사건에 흥미를 갖게 된다. 아노 탐정의 매력이 가득 담긴 고전 탐정물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버클 핸드백>은 부유한 말치 가문의 딸 클레어의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사가 간호사를 위장해 탐정으로 나선다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다. 라인하트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만나기가 어려운지 말이다. 아동용으로 <나선계단의 비밀>을 읽은게 아마도 전부인 것 같다. 이런 힐다 애덤스 시리즈 정도는 출판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간호사 탐정이라니 독창적이지 않은가. 여기에 여성 심리 묘사가 좋고 과도한 잔인함없이 스릴과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고전 추리소설들이지만 그 나름의 색깔은 각기 다르다. 현대물로 보면 일상의 미스터리, 법정 미스터리, 모험 미스터리, 탐정 미스터리, 실종 미스터리로 나누어볼 수 있겠지만 고전 추리소설은 그렇게 나누지 않아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치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현대물의 과도한 반전, 잔인함, 서스펜스에 너무 흥분되었다고 생각된다면 이런 고전 추리소설을 읽으며 미스터리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미스터리는 단순한 오락을 위한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가보자. 고전 미스터리의 황금기로. 미스터리의 황금기를 개척한 그 시대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들어보자. 그리고 황금을 캐다가 현대물에 입혀보자. 모든 추리소설의 시대를 골든에이지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5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두께가 상당하다. 그 두께만큼 읽고 나면 뿌듯해지는 황금같은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08-07-1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저도 이책 읽고 있는데 참 재미있는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고전기의 단편 소설들이 계속해서 출간되었으면 하네요

물만두 2008-07-17 16:06   좋아요 0 | URL
이스라엘 장월의 작품이 나왔더군요^^

카스피 2008-07-1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스라엘 장월의 책은 출판사에서 비닐로 꽁꽁싸매서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수가 없네요.좀 읽어봐야 살지 말지 할텐데... 너무 한것 같아요 ㅡ.ㅡ

물만두 2008-07-17 19:07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인터넷만 이용해서^^;;;

madrabbit7 2008-07-18 12:09   좋아요 0 | URL
방금 출판사에서 책을 받았는데 일본 미스터리 단편 "빨간고양이"를 실은 꼬마책과 함께 빅 보우 미스터리를 랩으로 싸놓았군요. 책이 쉼쉬기 힘들겠단 생각이 들지만 꼬마북은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요. 이웃에 살면 한 권 가져다 드릴 텐데 아쉽네요^^;

물만두 2008-07-18 14:12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