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신드롬
앙리 뢰벤브뤽 지음, 권지현 옮김 / 들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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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진리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강해서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망상증, 편집증, 정신분열증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 말이 왜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느냐 하면 15년 동안 자신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받던 비고라는 남자가 어느 날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기 위해 자신의 주치의가 있는 건물에 들어서다가 자신이 자주 듣는 환청을 듣고 그 건물을 뛰어 나왔는데 바로 그때 그 건물이 마치 미국의 국제무역센터가 무너지듯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비고가 그때 들은 말이 이상한 말과 함께 건물에 폭파 이런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비고는 자신의 정신분열증을 의심하게 되는데 그 건물에 있어야 하는 자신이 다니던 병원이 존재하지도 않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듣고 다른 상담사를 찾아가 자신이 진짜 정신분열증인지를 알고자 하는데 거기에서 만난 여인에게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주치의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며 자신의 이름마저 가짜이고 자신의 집, 다니던 직장이 사라졌고 거기다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을 돕겠다는 해커집단 스핑크스를 만나 자신의 뒤에, 자신의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파헤친다.

이 작품은 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단순한 자아 찾기라거나 쫓고 쫓기는 생존게임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거대한 음모론을 선보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을지 모르는 그런 일에 대해서...

하나의 작품에서 두 가지의 만족을 얻기란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런 두 가지를 모두 채워주고 있다. 한 가지는 미스터리 스릴러가 가지는 긴박감과 스릴, 음모와 그것을 파헤치는 일련의 일들이 숨 쉴 틈 없이 사로잡아 마지막까지 쉼 없이 달리게 만드는 작가의 미스터리와 스릴러, 그리고 어쩌면 SF적인 느낌이 가미된 그러면서 그것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게 엮어내는 능력이다. 물론 그 마지막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런 결말이 아니라면 어떤 결말이 어울리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 작은 약점을 다른 한 가지인 몰스킨 수첩이라는 비고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 존재론에 관한 것을 하나의 주제로 잘 끝까지 마무리하고 보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몰스킨 수첩으로 이 작품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좀 더 광범위한 장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몰스킨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 것은 이 작품의 표면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의 내면이다. 미스터리 스릴러가 거울이라면 그 거울의 이면, 우리가 진짜 바라봐야 하는 것을 이 작은 수첩의 메모로 작가는 전달하고 있다. 이 방법은 작품에 균형을 맞춰주고 가치를 높여주는 단단한 알맹이 역할을 하고 있다. 몰스킨에 적혀 있는 것 중 내 맘에 드는 메모 하나를 여기에 적는다.

474쪽에 이런 메모가 있다.

   
 

중요한 문제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느냐에 앞서 인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타자성, 즉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나는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 모두 익숙해져야 한다. 타자성은 위협도 아니고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타자성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그렇다.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나와 타자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거리는 교환을 통한 풍요로움을 가능하게 만든다. 동일성은 교환되지 않는다. 차이만이 교환 가능하다.

남을 알고 싶지 않다. 남이 나를 아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단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이 작품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9.11 테러가 일어난 것도 각지에서 끊임없이 총소리가 들리는 것도 가장 단순한 ‘나’와 ‘너’라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이런 거대한 음모와 끔찍한 재앙, 그리고 한 개인의 인생을 망각의 늪에 빠트린 것이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것은 크게 보면 거대한 음모로 볼 수 있지만 작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통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소통을 못하면 안 된다는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같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같아질 필요는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코페르니쿠스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 의견만 옳고 다른 이의 의견은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것이 쌓여 거대해지면 어떤 일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 이 책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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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7-09-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자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히 이벌식과 삼벌식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음냐.

물만두 2007-09-12 12:2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 안되서 그렇지요^^:;;

비로그인 2007-09-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트릭스, 13층, 트루먼 쇼 같은 영화들이 생각이 납니다.

물만두 2007-09-12 13:22   좋아요 0 | URL
네. 그 비슷한 점이 있네요.

jedai2000 2007-09-1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관심 없었는데 급땡기는군요 ^^

물만두 2007-09-12 15:09   좋아요 0 | URL
제다이님이시라면 좀 결말이 시시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몰스킨 수첩이라는 거를 강조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