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만약에... 부질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인간은 만약에, 만약에를 달고 산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이기도 하고 미련이기도 하고 욕망이기도 하다. 누군들 살면서 이 말 한번 되새김질해보지 않았으랴. 누군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 기억 하나에 매달리고 싶지 않으랴마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인간인지라 체념하고 잊으려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나도, 당신도...
스벵가리라는 단어는 조르주 뒤 모리에가 발표한 1894년 작품 <트릴비>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메일을 받는다. 그 메일을 열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에게만 보이는 다른 사람의 자살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은 자살을 하게 된다. 우연히 한 여인의 자살을 목격하게 된 기자 도엽은 핸드폰에서 보여 지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이상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자살의 목격자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친 연재 기사로 자살을 다루던 그는 그들의 연관성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스벵가리의 선물에 대해 조사하는 한편 그들이 가입한 사이트 신기루를 알게 된다.
보여 지는 모든 것이 진실은 당연히 아니다. 사실도 아닌데 진실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보는 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남이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보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한다는 것이 공포의 근원은 아닐까? 날조되고 위조되고 왜곡된 것일지라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는 신기루를 보고 황홀해 하듯이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드는,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포 그 자체다.
보여 진다는 것은 외면을 말한다. 외면이라... 도엽의 딸이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픔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이고 나면 더 이상 아픔으로 느끼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만이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도 보여 지는 것 이상을 진지하게 여긴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문제로 보면 개인의 문제라 치부할 수 있지만 자살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킬 수 없는 것이다. 사회가 병이 들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깨어나 눈을 뜨고 진실을 찾으라고, 사실을 똑바로 보라고 말하는 작품 같다. 지금의 현실이 마치 이 속에서 스벵가리의 메일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같이 느껴진다. 책보다 그런 현실이 더 공포로 다가온다. 나에게 스벵가리의 메일이 온다면 나는 그 속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