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지옥>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이 18세기 베네치아를 무대로 재현된다. 지옥편과 같이 살해되는 연속 살인 사건, 그 배후를 알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감옥에 갇힌 일명 흑란이라 불리던 공화국의 첩자이자 난봉꾼을 풀어줘 음모를 파헤치려 비밀리에 총독과 몇 명의 정치인들이 움직인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살인이라는 범죄의 파국으로 들어서는 자,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정치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바라는 희망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그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관점은 18세기 베네치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흑란의 활약상과 그 시대 배경, 풍경, 카니발과 정치, 경제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흑락을 따라가면서 그저 그가 안내하는 길을 바라만 보는 것이다. 그 길은 스릴과 흥미 만점인 그러면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끝까지 단테의 제 9 지옥까지 우리가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가 찾아야 하는 살인범은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을 단죄하려는 사교집단의 우두머리로 자칭 키마이라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루시퍼인가 아니면 그것은 단지 베네치아의 카니발과 같은 화려한 무대 장치일 뿐 더 큰 정치적 음모가 깃든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그와 함께 떠나보면 알 일이다. 단, 한번 지옥의 문으로 들어 온 자는 끝날 때까지 흑란이 인도하지 않는 한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없음을 명심하시길...

 

두 번째 관점은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 최인훈의 <광장>이라는 작품은 내게 우리 정치사의 이념과 사상적 갈등에 대한 가장 강렬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 작품이다. 그 작품 이후 그보다 더한 작품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갑자기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작품이 정치적인 면에서 시대를 뛰어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점에 좀 더 큰 무게를 두고 싶다.

 

이 작품 속에는 한 인물이 악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그것을 읽는 재미가 흑란의 활약상과 함께 어우러져 작품에 빛을 더하고 있다. 300쪽에 이런 내용을 쓰고 있다. ‘정치에 있어서 악은 우선적으로 거짓말을 사용함으로써 형상화되는데, 일반적인 관행상 거짓말은 정치의 맛이자 본질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민중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민중이 권력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입지를 제한하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정권은 속임수의 원칙에 따라 운용된다. 즉, 권력은 행복을 위한 공약을 줄줄이 내놓지만, 실제 정치 집행의 과정에서는 능력과 꾀를 십분 발휘해서 약속 이행의 의무를 슬쩍 빠져 나가는 것이다.’ 

 

이 내용이 지금 얼마나 공감되는지 참담하기 그지없다. 정말 정치의 본질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이것이 작금의 우리 상황과 18세기 베네치아가 처한 상황이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아니 모든 정치란 본질은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속고 있는 우리는 어느 하나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권리가 없음을 안다. 사상과 이념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던 <광장>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강요당한 채 살았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안다. 마치 <광장>에서 이명준이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듯이. 18세기 베네치아인들이 일 년의 절반을 카니발에 할애하면서 눈속임 속에서 억눌린 채 살았듯이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정치인들에게 휘둘리리라 생각하니 입맛은 쓰다.

 

단테는 늘 여러 작품에 재등장하고 재탄생된다. 그는 <신곡>을 통해 우리에게 각기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늘 깨달음을 선사한다. 어떻게 읽어도 좋다. 추리소설로 읽어도 좋고 역사 소설로 읽어도 좋다. 또한 흑란의 로맨스가 이루어질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로맨스 소설로 읽어도 좋다. 그러니까 울트라 서스펜스 미스터리 로망 환타지 대하 역사 소설이라는 얘기다. 단테의 이름으로 또 한 번 우리에게 선사하는... 단테의 <신곡>을 추리소설로 쓴 작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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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트라 서스펜스 미스터리 로망 환타지 대하 역사 소설이라니 멋지군요.. 만두님의 리뷰도 울트라 캡숑 리뷰입니다~~
아침 신문엔 대통령 후보들 얘기가 주르륵 나왔더만 아이고.. 18세기 베네치아서 21세기 한국까지와도 정치에 있어선 변한 것도 변할 것도 정말 없는걸까요?

물만두 2007-04-2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시님 정치란 늘 쭈욱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음이 그렇더군요. 이 책도 대통령 선거전에 한번 읽어보세요.

mong 2007-04-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단테는 비껴가 볼까 했더니 안되겠네요
^^

물만두 2007-04-2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단테를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서는 제일 낫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