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 빈스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차분하고 다부진 추리소설을 만났다. 이 작품에 대한 말들이 모두 거짓이 아님을 책 몇 장을 읽다보면 금방 깨닫게 된다. 추리소설로 읽어도 좋고 한 시민의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작품 속 모든 구절들이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버릴 단어 하나, 인물 한 명 발견할 수가 없는 탄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시티즌 빈스, 즉 시민 빈스인 것이 시민 케인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과 이 작품이 시민 케인과 비교된다는 점은 빈스나 케인이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늦게 깨닫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도...

 

때는 1980년, 카터와 레이건이 선거를 앞둔 시점 조그만 도시에서 도넛을 만드는 빈스는 새벽에 일어나 독특하게도 자신 곁을 떠난 죽은 사람의 숫자를 센다. 그리고 마을의 도박장에 들러 포커를 하고 매춘부들을 만나 마리화나를 팔고 신용카드를 위조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잘 보이고 싶은 여자를 만나 자신을 고급스럽게 포장하기 위해 헌책방에서 그녀의 눈길을 끌만한 책들을 앞의 몇 페이지만 들춰보며 살던 어느 날, 협박을 당하게 되고 자신과 동업하던 사람이 살해되자 누군가 자신을 헤치러 보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찾아가 빚을 청산하려 한다. 그는 증인보호프로그램에 의해 다시 태어난 유령 같은 존재였으므로.

 

빈스가 사는 마을의 사람들과 뉴욕에서 몰락한 마피아와 신흥 마피아 세력, 그리고 그의 친구인 변호사,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뉴욕까지 따라온 신출내기 경찰과 그의 파트너가 된 뉴욕의 부패한 경찰, 선거 이틀을 앞두고 고뇌하는 카터와 여유 만만한 레이건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보고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내일의 소중함을 모른다. 내일은 자고 나면 올 날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매번 투표를 하거나 정치에 염증난 사람들은 투표 한번 못해본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예전 모습을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할 때 또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공포도 알지 못한다. 작은 것,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변화를 원하면서 누가 변화를,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지도 모른 채 투표를 하는 것과 같다. 알 수 없으면서 아는 듯 투표하고 그리고 후회하고 다시 투표하고 후회하고... 이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며 빈스가 기회가 있었을 때 잡지 못하고 날린 뒤 늦은 후회를 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역사가 되풀이 된다는 것. 우리가 한치 앞도 알지 못한다는 것. 그들이나 우리나 늘 가라 타면 더 나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때뿐이고 차라리 동물원 이름을 바꾸고 단장하자는 공약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는 것이... 또한 당시 이란에게 취했던 미국의 행동들이 지금 북한에게 취한 것과 똑같은 패턴이라는 점은 더욱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에게는 미국만이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 후보에서 마피아 보스, 시민 빈스까지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미국인이므로. 그럼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장 중요해야 하지 않을까?

 

추리와 스릴과 웃음과 풍자,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이 작품 안에 들어 있다. 올 해가 대통령 선거 해다. 선거하기 전에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선술집 막걸리와 담배 연기, 그리고 작은 즐거움을 간직한 작은 범죄자들 속에 있는 것이 왜 편안한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읽어야 하는 세계와 우리가 원하는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여기에서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더 큰 위선과 거짓보다 작은 위선과 거짓이 그래도 나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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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3-1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역쉬!!! 님 덕분에 끌리는 책이 또 생겨났어요. 이러다 우리집 파산 나면 어쩌죠?

물만두 2007-03-1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읽어보세요.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짱꿀라 2007-03-1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오늘 저녁 퇴근하고 리뷰 읽으려고 했는데 만두님이 또 점심을 못먹게 만드시네요. 다 읽고 밥 먹겠습니다.

물만두 2007-03-1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점심 맛난거 드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