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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매트 존슨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5월
평점 :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유지되는 기괴한 낙원,
우리는 이 거대한 거품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책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읽는 사람의 배꼽을 잡는 소설이다. 마치 스탠드 업 코미디 무대에서 한 개그맨이 사회와 정치를 대놓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뉴로어노크라는 가상의 세계가 지닌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 분열 등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비틀면서 독자들을 웃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가상의 세계 ‘뉴로어로크’는 낯설기보다는 어딘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줄거리를 말하자면, 인류 최초의 목성 유인 탐사선인 SS 딜레이니 호에 오른 사회학자 날리니 잭슨. 뛰어난 관찰력과 비상한 지능을 가진 그녀는 우주선 안의 승무원들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는 이 사람들은 밥 일당과 드웨인으로 대표되는 유치한 파벌싸움과 정치질에 몰두한다. 한편 지구에서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납치된 전 부인을 구하기 위해서 체이스는 우주로 향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오래전부터 가끔 상상하던 내 머릿속의 기묘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 세상 전체가 사실은 외계인이 세운 거대한 실험장이나 세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겠지만 사실은 거대한 사회 실험 혹은 인류학적 연구 프로젝트 속에서 움직이는 피실험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자꾸 떠올랐다.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에 지어진 거대한 돔 도시 ‘뉴로어노크’ 이곳은 노골적으로 독실한 기독교가 지배하는 한 미국의 남부 주를 풍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독실한 신앙심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보가 철저히 통제되는 곳. 사람들의 신앙심과 불안을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곳.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안락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침묵을 선택하는 바로 그곳.
이 책이 진짜 재미있는 이유는 우선 인물 묘사가 기가 막힌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갠다고 우주선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는 인간들. 사람들을 괴롭히고 정치질을 하던 밥과 그의 일당은 ‘뉴로어노크’에서도 권력층과 결탁해 기득권을 독차지하고 언론까지 통제한다. 날리니는 여전히 냉정하게 인간 사회를 관찰하고 아흐메드는 자기 살 길 찾기에 바쁘다. 반면 드웨인은 끝까지 모순과 불의에 맞서며 충돌한다. 결국 배경이 우주든 지구든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웃기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들은 희화화 기법과 냉소적 태도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와 정치를 비판한다. 상당히 깊이 있고 철학적이며 지적인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실컷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엄청난 지식인이 무대 위에서 농담을 던지면서 인간 사회의 위선과 어리석음이라는 민낯을 드러내는 느낌이다.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떤 규칙으로 세상이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곳 ‘뉴로어로크’ 그러나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책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힘’ 사람들을 공중에 매달기도 하고 내던지며 공포를 자아내는 이 힘을 사람들은 ‘신의 힘’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이는 사람을로 하여금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침묵하면서 안락한 질서에 머무르기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독재 국가나 종교 단체에서 이런 인간 심리를 잘 이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과연 ‘뉴로어로크’의 납치된 사람들과 딜레이니 호의 승무원들은 이곳을 탈출하여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읽다 보니 커트 보니것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체를 떠올리게 했단 책 <보이지 않는 것들> 이 소설은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정말 자유로운 존재일까?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과연 우리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혹시 더 거대한 존재가 이미 짜놓은 판 위에서 그동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매우 독특한 유머감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SF 소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