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갓 - 그 의사는 왜 병원에서 몸을 던졌을까?
사무엘 셈 지음, 정회성 옮김, 남궁인 감수 / 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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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몸이 고장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찾게 되는 장소가 병원이다. 어쨌든 그렇게 병원을 찾아가면, 의사가 내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제대로 진단을 내려서 완벽하게 치료 해주길 모두들 바랄 것이다. 사실 의사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고 병원에 가는 것이라 우리는 의사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가 기대하는 의료진 ( 의자, 병원 ) 의 모습과 의사 본인이 생각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일치할까? 의대에 다녔을 때 품었던 이상이 병원에서 그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의대를 갓 졸업한 의사, 의학적 소견이 높지 않은 인턴들은 더욱 더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느낄 것이다.

" 하우스 오브 갓 " 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 대형병원이다. 하지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턴이 다른 동료들과 병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기 때문에 현대의 병원이 첨단 의료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소설 내용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했다. 이 소설엔 통칭 " 고머 " 라고 불리는, 요양 외에는 더 이상의 진료가 필요하지 않은 고령의 환자가 등장한다. 더이상의 진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환자들에게, 병원은 요양원에 침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은 개인 병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그들에게 입원을 권유한다.

" 고머들은 인간일 수 있는 상태를 상실한, 대체로 나이든 사람들이지. 그들은 대부분 죽고 싶어해.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 우리는 고머들한테 그렇게 하니깐 잔인한 거고, 고머들은 그들을 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맞서니까 우리에게 잔인한 거야. " ( p. 56 )

고령의 환자들의 경우,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더 좋은 예후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의사의 개인적인 흥미나 병원의 영리 때문에 환자들을 마치 실험실 속의 쥐처럼 다루는 병원과 의사들. 환자들은 필요도 없는 검사를 받고 실험을 당하다가 합병증으로 죽어간다. 현재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노인들을 위한 시설과 설비들이 많이 지어지고 있는데 과연 제대로 된 치료가 가해지고 있는지... 양심적인 의료진에 의한 정확한 진료가 행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쟁같은 이런 의료의 최전선에 햇병아리 인턴들이 있다. 힘들어서 아무도 맡고 싶어하지 않는 " 고머 "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인턴들의 몫으로 떨어진다. 책을 통해 이론을 습득했을 뿐 실전 경험이 매우 부족한 인턴들이 귀중한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 던져지다니... 그들이 느끼는 업무에 대한 중압감은 아마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포츠의 자살 이후 우리 모두는 망연자실하고, 무감각하고, 너무 두려워 울지도 못하고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우리 각자는 자신을 구하려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에디처럼 정신병에 걸리지 않게, 건물에서 뛰어내려 8층 아래 주차장 바닥에 철퍼덕 떨어져 자살하지 않으려 싸우면서, 우리는 우리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의사가 되어가고 의사가 되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p. 532)

“이 경험이 자기를 일깨워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는지 몰라. (중략) 이제 드디어 자기 안에서부터 성장하는 거야, 전혀 새로운 세상이 될 거야. 로이, 아는 알아. 완전히 새로운 삶이 펄쳐질 거야.”(p.614)

신입 사원이 회사에 들어가면, 말단 직원에서 점점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승진을 하듯 의사도 그런 단계를 거칠 것이다. 인턴-레지던트-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성장하는 의사들. 그 과정에서 의료기술을 연마하고 많은 환자를 대하며 진정한 의사가 된다. 사실 이 책엔 의사들의 부정적인 면이 많이 드러난다. 그러나 애벌레가 매미가 되기 위해서 7년이라는 땅 속 생활을 견뎌내듯이, 각각의 햇병아리 인턴들은 전공의가 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수련과정을 거치고, 자신의 시간을 포기한 채 환자에게 매달린다. 그 와중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니 의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에 응급실에 몇 번이나 실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땐 의사들이 왜 이리 불친절하고 정신없어 보이고 무뚝뚝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 환자의 입장이었으니 ) 의사들의 눈으로 병원 상황을 보니,, 참 그들은 매일매일 힘든 삶을 견뎌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고 있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들이 왜 그리 다 젊은지도 이제 알게 되었고 ( 대학을 갓 졸업한 인턴들이었던 것!!! ) 가족 중 의사와 간호사가 있어서 그 삶의 고단함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고단한 삶이구나 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느꼈다.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의학 드라마 [ 하우스 오브 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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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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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도 탐정도 아닌 " 인권위 조사관들 " 이 벌이는 통쾌한 추적과 조사 이야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예전에 TV에서 봤던 한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 재산이 어마 무시하게 많음에도 불구 ) 지방세를 체납한 고액 상습 체납자들. 그들의 가택을 수색하여 부동산 압류 등을 통해 세금 징수를 위한 노력을 서슴지 않았던 386 기동대!! 그들의 활약이 떠올랐다.

국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설립된 독립기관 " 인권 증진 위원회." 그곳에는 진정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움직이는 공무원 " 인권위 조사관들 " 이 있다. 그들은 경찰도 탐정도 아니라서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제약은 있지만 인권 침해와 차별 행위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준사법 기관이다. 따라서 사건을 다루는 모든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작품의 조사관들은 개성이 뚜렷하다. 매사에 너무 신중한 나머지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 베테랑 "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조사관 한윤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감정 이입을 잘하는 열혈 아줌마 조사관 이말숙,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채, 독단과 정의 사이를 줄타기하는 조사관 배홍태, 사법고시 출신으로 변호사 특채 사무관으로 인권위에 입사했지만 조사관들 사이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는 부지훈...


이 소설은 이렇게 성격과 사고방식 그리고 조사 스타일도 뚜렷이 다른 네 명이 성실함을 무기로 하여 진정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연을 다루고 있다.

“권력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집단에서 윗선의 의중을 미루어 짐작하는 동안, 권력은 눈덩이처럼 커져 어이없는 것도 서슴지 않게 되지.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은 권력의 이러한 속성을 잘 알고 있어서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수백만 수천만을 통제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하는 거야.”(p. 42)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대중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정보 수집과 의견 교환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발생하면 이것을 감추기 위해 간혹 연예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매체를 통해 일제히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연예인 관련 내용에 관심을 가지긴 하지만 의심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시선을 정치와는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건 아닐까?라고... " 민간인 사찰 ", " 연예인 사찰 " 라는 키워드와 관련된 기사 내용이 기억난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사실을 다르게 주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허용되는 일이다. 항소심은 진행 중이다.

인권위가 조사활동 중에 형사사건의 비틀린 진실을 알아챘다고 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증언하고 나서는 것은 곤란했다.

피고인이 무죄라면 모를까 유죄라는 주장은 인권위가 뒷받침해주는 건 본분에도 맞지 않았다.”(p.386)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본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여러 사건을 조사하는 와중에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게 되었지만, 사실 그들은 유죄나 무죄라고 판단을 내리거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그 진술 과정에서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진정인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었는지 살펴본 뒤 보고서를 작성하는 쪽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다.

결국 이 소설에서 말하자고하는 부분은 "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과연 침해되었는가 아닌가? " 의 문제였다. 선입견에 구애받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실만을 따지는 조사관들의 성실한 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설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러한 태도 ( 치우치지 않은 태도로 수사에 임하는 모습 ) 가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무리로부터 사회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 형사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물만 보다가 인권위라는 새로운 조직을 보게되어 신선했다. TV에서도 곧 방영될 동명의 제목을 가진 드라마가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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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이정섭 지음, 최진영 그림 / 허밍버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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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나 인간 사회에 안 맞는 거 같아

 

개복치의 소심함을 표현한 정보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고 한다.

1. 거북이와의 충돌을 예감하고 겁이 나서 죽음.

2. 일광욕하다 새한테 쪼여 상처 곪아 죽음.

3. 바닷속 공기 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죽는다고 한다.

혀를 차게 만드는 이러한 사소한 이유로 죽을 수도 있다니,,,,, 극도로 소심한 사람이 개복치에 비유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 사회와 안 맞는 인간이라... 너무 소심해서 개복치에 비유되는 인간이라... 그 비유법이 완전 재미있다!! ( 나만큼 소심한 분인가? ) 너무나 궁금해서 펼쳐든 책 <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평범한 에세이는 가라! 이 에세이는 너무너무 재미있고 독특하다. 작가의 냉소 넘치는 위트와 살짝 비튼 유머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책을 읽었다. 전체적으로 감정이 과해서 흘러넘치는, ( 내가 생각하기에 ) 요즘 유행하는 힐링, 치유 에세이가 아니라서 다행, 작가가 기자 시절 경험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다행. 그리고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나 책의 장르가 나와 비슷해서 다행. ( SF 책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

이 책 곳곳엔 너무나 공감이 가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내용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34쪽 " 알아보면 부담스럽고 몰라보면 서러워한다 "에서는 저자가 자주 가던 카페에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된 사연이 나온다. 그 당시 잡지사에 다니던 저자는 맛있는 스콘이 나오던 카페를 잡지에 소개했는데, 기사를 너무 좋아하게 된 주인아저씨가 저자를 과하게 좋아하게 된 것. 소통 없는 고독을 즐기고자 간 카페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선물까지 안겨주는 주인아저씨가 너무 부담스러운 나머지 그는 다른 카페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니! 내가 세상에 얼마 없는 개복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나의 경우도 " 군중 속의 고독 " 그리고 " 익명성 " 을 즐기는 편이다. 자주 가는 장소에서 만약 주인아저씨가 아줌마가 나를 아는 척하는 순간 다른 장소로 향하게 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도 저자와 같은 개복치, 소심한 인간, 다른 사람의 지나친 관심을 못 견디는 유별난 인간이었구나...

이 책에는 이외에도 작가가 초보 기자 시절 겪었던 일화나 좋아하는 영화와 책에 대한 감상을 맛깔나게 그려낸다. 54쪽 : 서대문 경찰서의 카이저 소제 편에서는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거짓 정보를 줄줄 읊었던 다방 누님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술값을 안 내고 도망갔다가 잡혀온 그녀는 자신을 3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소개하지만 알고 보니 40대 다방 누님이었다. 일화 마지막에 기자에게 천진하고 해맑은 미소를 날리는 그녀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67쪽에서는 영화 Her 속에 나오는 테오도르와 OS인 사만다와의 관계를 짚어보면서 진실한 사랑이 뭔지,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하는지를 짚어내는 저자. 85쪽에서는 SF 영화 < 노인의 전쟁 > 소개를 하면서 크고 켤 수 있는 감정 장치를 가진 오빈 종족의 예를 들면서 " 감정 "이라는 것에 익숙지 않은 " 극소심자들"의 폭주와 주위 사람들과의 충돌을 익살스럽게 그려낸다. 저자의 글로 인해서 이 두 영화와 책을 보고 읽고 싶다고 느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일종의 " 개복치 "이니까.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위기의식을 느껴서 이런 제목을 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록 소심하지만 나름대로 " 소확행 " 을 즐기며 잘 살아가고 있는 저자. 어떻게 하면 소심한 자들이 이 험한 세상을 잘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는지 위트 있게 보여준 일종의 여행 가이드였다. 인생철학을 이렇게 찰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저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기만 하다.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싣고 계시다니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에세이 같지 않은 에세이 ( 지루하지 않다는 이야기 )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했던 에세이 {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몇 번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근래에 보기 드문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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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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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관록이 붙은 노련한 작가의 힘이 바로 이것인가? 책을 읽다가 이렇게 울컥해보기도 처음인 듯 하다. 사실 그 전에도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접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울면서 책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부터 < 도가니 > 까지 그녀의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꼬집고, 부조리한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메세지가 있다. 그런데 이번 책은,,, 가슴을 울리는 거룩함이 있다. 그녀의 영적인 성숙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내가 세속에 정말 찌들려 살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진정한 사랑이 뭔지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지닌 이성의 한계로는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오묘한 임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감동 그 자체였던 < 높고 푸른 사다리 > 안으로 들어가 본다.


요한 수사는 10년간의 수련을 견뎌내고 종신서원만 앞두고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임하심을 존중하며 살아온지 어언 10년.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온 여인이 있다. 수도원장인 아빠스님의 조카인 소희. 그들은 서로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 버린다.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소희와 하느님과 언약을 한 요한수사. 사랑의 마음을 억제해보려 노력하지만 이미 넘쳐버린 감정.. 제어할 수가 없다.



“ 왜 사랑하나요? ” 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옳다. “ 어떻게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요? ” 라는 질문도 문법적으로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말들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댈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

한편, 요한 수사와 친했던 미카엘 수사는 수도원 내부의 삶만 알고 살다가 세속의 삶이 어떤 건지를 깨닫고 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공장을 임금이 싼 베트남으로 옮겨버리고 함께 동거동락한 노동자 전부를 전원해고해버린다. 농성을 하고 있던 무리들과 함께 하다가 경찰서에 연행된 미카엘 수사에게, 수도원장인 아빠스님은 쿨파를 명령한다 ( 자기 반성을 위한 일종의 봉사활동 ). 냉철하고 논리적인 미카엘에게 약한 자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종교란 죽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이다.



“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 군. ‘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 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이 책은 요한 수사가 진리를 추구하는 와중에 겪어야했던 사랑과 고통을 통해서 그가 성숙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풀어낸다. 하느님에게 모든 걸 맡기는 수사들은 서제서품을 받고 완전한 신부로 거듭나기 위해서 세속의 삶을 멀리한다. 그렇기에 세속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감정적 고통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요한 수사는 교통사고 처럼 찾아온 한 여인과의 불같은 사랑과 갑작스러웠던 이별, 그리고 함께 형제와도 같은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던 수사들의 비참한 죽음 등을 통해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그는 삶이 이제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요한 수사는 방황하고 쓰러지려하고 하느님을 부정하려 하지만 주위에서 그를 잡아주는 손길을 느낀다. 그런 식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그에게 임했던가?

공지영 작가의 삶은 평생 녹록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어려운 삶을 통해 한층 성숙한 것일까?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이 뿜어내는 성스럽고 거룩한 빛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가톨릭 신자일 ( 아마도 ) 그녀가 품었을 것 같은 의문과 나름의 해답이 들어가 있다. 세상은 왜 권력자,강한 자 편에 서서 약한 자들을 억압할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거룩하지 않은걸까? 사람들의 신음과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하느님의 은총이 자리 잡고 있을까?



책은 이제 < 높고 푸른 사다리 > 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실타래 풀듯 조금씩 풀어낸다. 요한을 사랑하고 아끼는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독일에서 한국까지 와서 공산당원들에 의해 온갖 고초를 겪은 토마스 수사님은 요한에게 무의미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 악 " 을 경계할 것을, 자신이 옥사덕 수용소에서 겪었던 요한 신부와의 일화를 통해 들려준다. 아기를 임신한 채 이북을 탈출했던 요한의 할머니는 흥남 부두에서 마치 구원처럼 자신에게 내려왔던 파란 그물 사다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 지원을 위해서 갔던 뉴튼 수도원에 찾아온 마리너스 수사님은 한때 한 배의 선장이었고 1950년 흥남부두에서 수만 명의 피난민을 배에 태운 그 선장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퍼즐은 신비로운 신의 섭리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맞추어진다. 인간 요한 수사가 고통을 겪은 것, 하지만 그로 인해 성장한 것, 미국에 와서 뉴튼 수도원을 이끌게 된 것 모두.. 인간은 알 수 없는 신의 사랑,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무의미의 고통이란 없는 것이다.


" 슬픔도 희석되고 실은 아픔도 아팠다는 사실만 남고 잘 기억되지 않지만 사랑은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 젊음아 거기 남아 있어라, 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랑아, 언제까지나 거기 남아 있어라.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하늘에서 푸른 밧줄로 엮은 사다리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종소리는 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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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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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 학살에 휘말렸던 한 소녀의 집안이 실제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이다. 킬링필드는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였던 크메르 루주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으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는,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과 대학살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것도 사실이다.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실 난 전쟁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씩 어른 세대가 말씀해주시는, 우리나라가 겪어야 했던 전쟁과 학살, 기근 등은 너무나 참혹해서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은 주인공 1975년 4월 프놈펜에서 시작하여 1980년 2월 베트남 람싱 난민촌에 들어갈 때까지, 작가와 작가의 식구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적은 글이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중산층의 부러운 것 없이 생활하던 5살 로웅과 그 가족들.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아버지의 직업은 헌병으로 전 정권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었는데, 신분을 속이고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 와중에 다른 식구들 또한 자신의 몫을 다 한다.

“도시에서는 나의 관심과 우정을 바라는 아이들과 친해졌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이나 나를 의심하고 내가 다가가면 달아난다.” (p.79)

하지만 이 가족 앞에는 더 많은 시련들이 놓여 있었다. 아빠의 처형과 엄마와 언니, 동생의 죽음. 결국 이들과 이별의 슬픔을 겪게 되지만 남은 가족은 떠난 가족들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

“크메르루주는 복수심에 불타는, 피에 굶주린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폴 포트는 나 같은 어린아이도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게 만들었다.”(p. 350)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을 때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빈민에서 구제해 줄 것이라고 굳건히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의 잘못된 신념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하였다. 정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가족들을 잃게 되고, 터전 또한 버리고 떠나야 했다. 모두가 공포에 떨면서 힘들게 일해도 불행과 배고픔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폴 포트와 그의 집단만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지도자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처형과 기아, 질병과 강제노동으로 죽음에 이른 사람들의 가족들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상처를 깊이 새긴 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시기에 여러분이 캄보디아에 살고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또한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 속 장면들이 생생한 영화를 본 것처럼 먹먹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념과 종교에 의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슬픔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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