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세상 을유세계문학전집 96
레이날도 아레나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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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풍자를 낳는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풍자문학의 도전을 받기 마련입니다. 독재정권의 압제에 맞서 작가들은 풍자라는 무기로 억압된 현실을 표현하고 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쿠바 작가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소설 <현란한 세상>(El Mundo Alucinante) 역시 그런 작품입니다.

콜럼부스 이래 이어진 라틴 아메리카 민중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마중물로 혁명의 시대였던 19세기 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혁명과 혁명의 배신, 계속된 민중에 대한 핍박의 역사를 세르반도 수사라는 인물의 회고를 통해 풍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이날도 아레나스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남미 문학 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쿠바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저항해 쿠바혁명에 참여했지만, 혁명 후 또 다른 독재가 되어가는 카스트로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하였던 레이날도의 삶은 어쩌면 세르반도 수사의 삶과 판박이입니다. 또 동성애자였던 그는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정치사회적 소수자로서 작가는 소외된 자로서 경험에 의해서 현실의 여러 층위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민이 현실을 다층적으로 보게 하고, 이를 작품에서 마술적 현실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현란한 세상>에서 다수의 횡포에 맞서는 소수자로서 세르반도 수사 역시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 할 것입니다.

"내 소설을 우연히 읽는 독자들은 하나의 모순이 아닌 여러 가지 모순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색조가 아닌 다양한 색조, 하나의 선이 아닌 여러 원형들. 그래서 내 소설이 연계된 사건의 역사가 아니라, 퍼졌다가 돌아오고 확대되었다가, 참기 힘든 것이 때때로 자유로운 것이 되는 극한 상황에서, 쉼없이 더 부드럽고 더 열정적으로 다시 돌아오는 파도와 같기를 바란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교리, 하나의 규정이나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야 할 신비다. 파헤치려는 목적이 아니라(그것이 끔찍할 것이다) 우리가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p.16 세르반도 수사, 지칠 줄 모르는 피해자 중

세르반도 수사는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어떤 경험에 의해 도시로 가서 수도사가 됩니다. 그리고 멕시코의 수호성인인 과달루페 성모에 대한 설교에서 교회권력과 다른 견해(과달루페 성모가 유럽인들이 멕시코에 오기 전부터 있었다는 설교)를 말함으로써 이단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스페인의 수도원 감옥에 갇힙니다. 이때부터 세르반도 수사의 탈옥과 망몀, 투옥, 탈옥이 반복되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스페인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프랑스 혁명, 미국의 노예제, 멕시코 혁명의 과정에서 권력과 민중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조국 멕시코에서 혁명이 성공하지만, 여전히 권력은 존재하고 민중의 삶은 피폐한 것을 목격한 그는 조용히 죽음을 준비합니다.

이 수도사의 혁명으로 가득한 삶은 절대왕정의 억압에 글로써 저항했던 바로크 문학의 작가들처럼 단순한 서사가 아닌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알레고리, 아이러니, 과장과 풍자를 통해 묘사합니다. 또 1인칭에서 2인칭으로, 다시 전지적 시점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며 작가는 시점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이런 표현과 시점의 교차는 현실과 환상을 모호하게 하여 이 이야기의 흡입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 ... 악행은 즐기기를 원하는 그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얽매이는 예속성과 영원한 의존성에 있다는 것을 너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끝없는 탐색과 발견한 것에 대한 계속되는 불만... ..." p.47

이야기 속에서 권력과 부는 악과 동일시 됩니다. 심지어 혁명마저 그것이 성공하여 권력을 잡은 뒤에는 또 다른 악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무작정 민중에 대한 예찬을 늘어 놓지는 않습니다. 세르반도 수사의 눈과 입을 통해 핍박받는 인디오와 민중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보이지만, 동시에 민중의 가벼움과 변덕에 대해서도 차가운 평가를 내립니다.

이처럼 <현란한 세상>은 혁명의 시대를 살다간 한 수사의 삶을 통해 권력의 억압과 혁명, 그리고 민중에 대한 바로크적 서사입니다. 역사적 지식과 혁명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바탕으로, 그로테스크한 풍자와 아이러니,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를 통해 권력과 혁명, 민중에 대한 가슴 뜨거운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날카롭게 차가운 지적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와 죄인은 성서의 언어로 볼 때 동의어다. 왜냐하면 권력은 그들을 거만함과 시기로 가득 채우고 억압하는 방법을 용이하게 해 주고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확식을 갖게 한다. ... ..." p.70

"... 나에 대한 비방 선전이 너무 심해 멕시코 국민 전체를 격노하게 했는데 그들은 원래 온화하지만 논리가 부족해서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가고..." p.71

"... 그러나 내가 마녀라고 말할 때는 진짜 마녀를 뜻하는 것이고, 결코 화형을 당하지는 않을 마녀들인데 바로 그녀들이 화롯불을 지피기 때문이지.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야, 또 궁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지. ..." p.140

"걱정 마세요. 그 사람은 결코 자기 작품을 끝내지 못할 거예요. 그 사람이 '추구하는 사람들의 땅'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들은 찾는 것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p.150

시점을 넘나드는 이야기와 풍자, 알레고리, 그로테스크한 표현으로 가득찬 작품이라 처음 몇 장은 읽기 힘들었습니다. 계속 읽다 보니 마술처럼 이야기에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치 진짜 회고록을 본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느낌을 얻었다는 … …

#현란한세상 #레이날도아레나스 #을유세계문학전집 #바로크문학 #쿠바문학 #마술적사실주의 #을유문화사 #풍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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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56 - 본기, 세가, 열전, 서의 명편들 현대지성 클래식 9
사마천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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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56>, 사마천 저, 소준섭 편역, 현대지성, 2019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텍스트,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길어올린 명문들.

최고의 중국 전문가 중 한분인 소준섭 교수님 편역한 <사마천 사기 56>은 130편이나 되는 <사기>에서 이 시대에 의미있는 명편 56편을 추려낸 책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자성어와 고사의 원잔인 <사기>. 그 속에 담긴 제왕과 영웅, 지사들의 행적과 사상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기전체라는 역사서술의 모범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제왕의 역사가 아닌 종합적 역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기>는 자칫 한문 번역투가 될 수도 있지만, 소준섭 교수님의 편역은 매끄럽게 한문고전을 읽을 수 있게끔 인도해주고 있습니다.
pp. 382~383 백이열전
“ ... ... 하늘의 뜻, 즉 천도란 사사로움이 없으며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백이, 숙제는 과연 착한 사람이었는가? 어진 덕을 쌓고 품행을 바르게 했음에도 마침내 굶어 죽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 공자는 오직 안회를 가리켜 학문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는데, 정작 안회는 끼니조차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으며... ... 마침내 일찍 세상을 떠났다. ... ... 그러나 도척은 날미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 ... 천하를 어지럽혔지만 끝내 아무 천벌도 없이 제 목숨을 온전히 누리고 살았다. ... ... 나도 진실로 곤혹스럽다. 만약 이것을 천도라고 한다면, 과연 천도란 도대체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른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의가 항상 승리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마천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2000년간 중국, 아니 동아시아인들의 생각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 할 수 있는 <사기>를 부드럽게 만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p.s. 이왕이면 한문 원문도 같이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이쉬움을 남깁니다.

#사마천사기56 #사기 #사마천 #중국역사 #역사 #중국사 #역사 #소준섭 #현대지성 #본기 #세가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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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전.전정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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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터치 하트, 이 책의 제목이자 핵심 내용입니다.

 

" 이렇게 인간이 스마트 디바이스를 이용해 실세계와 소통하고 미디어에 의해 넓혀질 뿐만 아니라 실세계 그 자체가 확장되어 서로 스마트하게 소통하는 세계가 오고 있다. 우리는 이를 세계의 확장, 즉 '확장된 세계 extension of the world'라고 명명한다. 세계는 현재 지구라는 행성과 이를 지배하는 인간의 사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사람이 확장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사물이 확장되어 새로운 사물이 되고 있다." _ p.6

 

"이러한 세계의 확장은 새로운 생산과 소비, 소통의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상호작용과 이를 통해 생겨날 새로운 가치를 설명한다. '버튼'은 새로운 세계를 상징하고, '터치"는 새로운 상호작용, 즉 소통의 방실을 표상하며, '하트'는 이를 통해 인간이 누리는 새로운 가치와 행복을 의미한다,"_ p.8

 

지금 우리는 확장된 혹은 확장되고 있는 세상(어감상 세계보다는 세상이라는 말이 더...)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확장의 수단은 미디어(여기서 미디어는 생산과 소비, 소통의 방식입니다.) 마샬 맥루헌이 인간이 미디어를 통해 확장된다고 하였듯이, 새로운 미디어(스마트 디바이스들이 대표적이겠죠?)의 등장과 발달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자체가 확장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미디어의 사물화, 사물의 미디어화, 그리고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 ~ 사물이나 제품 자체가 미디어가 되는 길이 열리고 있다. 즉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실세계의 공간과 제품 등에는 링크가 내재됨에 따라 사람과 사물 간의 스마트한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사물과 실세계를 미디어로 만드는 산업, 제품이 스스로를 설명하게 하고 스스로를 판매하게 하는 산업, 사물에 미디어가 파고들어가 미디어 스스로 확장되는 산업 등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매클루언이 정의한 인간의 확장으로서의 미디어는 이제 인간과 사물의 확장으로, 정확하게는 사물 생산자와 사물 소비자의 확장으로 그 개념이 더욱 커지고 있다." _ pp.47~48 

 

미디어는 다른 것에 도달하는 수단입니다. 스마트 기술의 발달은 모든 사물을 미디어화하여 정보나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더 쉽게 하고, 더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스마트 변혁,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시대인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의 시장이 펼쳐지며, 변화속에서 혁신이 강요되는 시대입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비지니스 모델의 혁신만이 생존 혹은 발전의 조건입니다. 특히 이제 제조와 서비스의 경계는 무너졌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여 새로운 거래를 창출해야만 가능합니다.

새로운 거래의 유형 중 세렌디피티가 있는 서비스(기대하지 않은 서비스)와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을 활성화시키는 방식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확장된 세상을 협력사회, 간편사회, 안심사회, 문화사회, 공유경제, 봉사국가라는 키워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스마트 기술의 밝은 면을 극대화 했을 때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미디어(Ai, IoT, 빅데이터기술 등으로 대표되는 스마트 기술과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제가 보기엔 이 책에서는 스마트 버튼을 강조-)의 발달로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소통방식의 변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척도없는 확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가져올 변화와 기회에 대한 프리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급변하고 복잡한 스마트 기술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잘 정리해 놓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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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 모더니티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 책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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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에 엘빈 토플러가 있다면 유럽엔 자끄 아탈리가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 미래학자인 자끄 아탈리의 신작 <우리는 어떻게 진조하는가>는 흔히 근대라고 번역되는 modernity의 개념을 2,000년 인류 지성사에서 그 시기별로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미래시점에서 어떻게 개념이 형상될 것인가를 살펴봄으로써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때 유행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은 협의의 모더니즘(19c이후의 근대성이라는) 넘어의 무엇이 아니라, 새로운 모더니티라고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이 책은 훌륭한 미래연구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지성사(인류의 지적 역사) 입문서라 생각된다. 이 한 권이면 이천년 서구 지성사의 큰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아탈리가 제시하고 있는 미래의 7가지 모더니티 중 어느 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지, 혹은 되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절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불확정성이 지배하고 있다. 불가역적이란 말, 역시 이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다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우리는 모더니티라는 개념 역시 상대성과 그를 통해 보다 열린 사고로 미래를 추론할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티와 그 역사를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더니티란 한 사회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 그 사회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소망하고 거부하는 것 등을 뭉뚱그려 지칭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더니티의 미래를 생각한단느 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미래에 대해 갖게 될 개념을 생각하는 것이다.
- 저자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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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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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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