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19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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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콩쿠르 이야기가 몇 편부터 진행됐는지 찾아보지 않아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오래 진행된 것으로 기억한다. 드디어 카이의 차례가 왔고, 최종 심사가 끝나서 파이널 진출자 명단도 공개되었다. 어휴, 여기서 조금만 더 갔으면 슬램덩크 애니 버전을 능가할 뻔했다. 좀 오버해서 공 한 번 튕기는 데 20분 걸리는 진행 말이다.^^ 

카이의 대진운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끝에서 두 번째 순서여서 심사위원들이 충분히 지칠 시간이었고, 바로 직전은 폴란드인으로서 강력한 우승 후보가 관객을 압도해버려서 30분의 휴식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의 카이가 누군가. 포커페이스가 제대로 되는 인물. 게다가 카이의 피아노는 한 순간에 관중을 '숲'으로 인도하는 마력이 있지 않던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모두 그림으로 들려주는 셈인데, 저 효과선들이 카이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준다. 순식간에 나 역시 카이가 만들어 놓은 숲으로 인도된 느낌이다. 어머나, 때마침 오늘은 식목일!   

포르테와 포르테시모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포르테시시모도 있는 줄 몰랐다. 얼마나 강력한 음이었을까. 둔중하고 압도적인 느낌으로 울렸을 것이다. 카이의 놀라움은 그 반대까지 진행된다. 매우 세게의 반대로 가보자. 아주아주 여리고 약한 소리로....

 

아무 것도 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주더니 멀리서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피아니시시시시모라니, 어떤 소리일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같은 느낌일까. 저 안에 속한 사람이라면 그 연주에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바로 직전에 폴란드가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가 드디어 나왔다며, 콩쿠르의 강력한 우승자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사람들도 모두 카이의 피아노에 자진해서 포로가 되고 있는 중이다. 나도 거기에 같이 사로잡히고 쉽다.

 

스승과 제자가 남다른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었던 아지노와 카이. 아지노의 카이 훈련법은 독특했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고 물 속으로 잠수해서 물고기를 놀래키지 않은 채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모습들이라니...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아지노가 사고로 피아노의 꿈을 접은 것은 지독한 슬픔이지만 그것이 카이를 통해서 더 빛을 내고 있다. 카이가 스승 몫까지 더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다.  

슈우헤이와 카이는 그릇의 차이가 컸다. 실력의 차이도 컸지만 그보다는 세계관과 세상을 보는 됨됨이가 달랐다. 온실속 화초인 슈우헤이와 잡초 중의 최고 잡초인 카이의 안목과 마음씀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스승의 차이와 실력의 차이까지 합세했으니 슈우헤이가 가여울 지경이다. 모차르트를 곁에 둔 살리에르의 심정 같은 것일 테지.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마음의 문을 열면 슈우헤이의 지옥도 다른 방향으로 빛이 들어서지 않을까.  

카이가 인도했던 저 넓고 청량한 숲의 세계를 슈우헤이도 언젠가는 만났으면 좋겠다. 

이 그림, 정말 근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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