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요술 조약돌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3
한성옥 그림, 팀 마이어스 글,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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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여우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팀 마이어스의 글도 감각적이고 한성옥의 그림 역시 탐스러웠다. 그 뒷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매력 덩어리다.
시인 바쇼와 인근에서 함께 사는 여우 무리들. 인간과 여우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살고 있는 모습이 '바쇼'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더울려 보인다.

바쇼가 후카 강 근처로 이사 와 보니 자기 땅 안에 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바쇼는 버찌를 그곳 여우들과 나눠 먹기로 했다.
나무에 매달린 여우나, 버찌를 따서 바쇼의 입에 떨어뜨려주는 여우 모두 귀엽다.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건만, 그 중 한 여우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버찌를 독차지 하고 싶었던 여우는 바쇼를 속여 넘기기로 결심!
요술을 부려 떠돌이 중으로 둔갑을 했다.
강가에서 조약돌 세 개를 주워든 여우는 그것을 금돈으로 만들어서 가난한 바쇼에게 거래를 청했다.
벚나무의 버찌를 여우들에게 모두 넘기겠다는 계약서를 쓰게 한 것.
먹을 것도 변변찮았던 바쇼는 일 년 한 철만 먹을 수 있는 버찌 대신 금돈을 갖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바쇼의 낭패어린 얼굴을 기대하며 방문한 여우는 싱글거리며 시를 쓰는 바쇼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바쇼는 자신이 속아서 조약돌을 받았지만 그 조약돌이 너무 아름다웠고, 그 바람에 시가 떠올라서 기뻐하는 중이었다.

돌은 가난을
아랑곳 않고 강만
사랑하누나

캬아, 멋지다! 여우마저 뭉클해져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여우는 옛날에 석등 아래 묻어둔 진짜 금돈을 가져다 주어서 시인에게 겨울을 날 양식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리하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바쇼는 완강히 거절했다. 서명을 한 건 분명하고, 그 덕분에 시를 썼으니 충분하다는 거다.
여우는 더욱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금돈을 내밀어도 받지 않을 바쇼를 알기 때문에 여우는 다시금 꾀를 부리기로 했다. 아이디어만은 기발한 여우!

여우는 어떻게 빚을 갚았을까?
바쇼와 여우의 평화로운 모습이 보이는 걸 보니 분명 잘 마무리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에는 두 편의 하이쿠가 나온다. 두 편 모두 바쇼가 아닌 작가 팀 마이어스가 쓴 것이다. 바쇼를 향한 존경과 사랑으로 탄생한 이야기. 그러나 정말 바쇼의 이야기라고 믿어지는 예쁜 이야기.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처음에 시인과 여우는 조카 주려고 샀는데 너무 좋아서 조카 주고 내 책도 다시 한 권 샀다. 이 책은, 그냥 내가 가질까 생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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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 일곱 자의 마법
    from 그대가, 그대를 2015-02-09 23:40 
    류시화 시인의 전작 "한 줄도 너무 길다"를 무척 인상 깊게 읽었는데 그게 벌써 15년 된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의 부족함을 메워서 무려 750쪽에 달하는 하이쿠 모음집을 다시 냈다. 일본의 대표 하이쿠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고 이 짧은 시의 몇 배에 달하는 해설을 붙였다. 130명의 시인들에게서 1,370여 편을 소개했는데 하이쿠이기에 이 정도 분량이 가능하지 싶다. 그밖에 책 말미에는 150쪽에 달하는 해설도 붙였는데 하이쿠에 대한 보다 깊은 소개와
 
 
순오기 2010-08-15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요 시리즈 두 권 보고 한성옥 그림에 반했잖아요.
하이쿠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죠.^^

마노아 2010-08-15 08:30   좋아요 0 | URL
한성옥 작가님 그림책들 다 좋아요. 아주 맛깔나요. 그 중에서도 요 시리즈 두 권이 제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