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해라, 양치질해라, 동생과 싸우지 마라, 방 치워라 등등등.... 온갖 잔소리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하루라도 잔소리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 그 '잔소리 없는 날'을 직접 체험한 한 소년이 있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 지친 푸셀은 월요일 하루를 잔소리 없는 날로 만드는 걸 부모님께 허락 받는다. 우려가 많았지만 푸셀의 뜻을 따라준 놀라운 부모님.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푸셀은 양치질도 않고 세수도 않고 자두쨈만 잔뜩 먹은 채 학교로 가버린다. 입냄새 난다는 짝꿍의 퉁박은 무시한 채 자신이 오늘 얻은 잔소리 없는 날의 특권을 자랑하기 바쁜 푸셀. 친구 올레는 그 정도로 자랑하는 건 시시한 일이라며 돈 없이 오디오 사기 같은, 좀 더 거창한 경험을 소개한다. 잔소리 없는 날의 특권을 이용해서 부모님이 정말 잔소리 없이 지나갈지를 시험해 보고자 하는 푸셀. 하지만 초딩생에게 아빠 앞으로 영수증 달아달라는 말로 오디오를 팔 주인이 어디 있겠는가.  

학교도 땡땡이 친 채 집으로 돌아온 푸셀은 갑작스레 파티를 열겠다고 해서 엄마를 난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 기꺼이 파티 준비를 해주시는 엄마. 그렇지만 푸셀과 달리 하루 일정이 바쁜 친구들은 파티에 초대할 수가 없고, 기껏해야 푸셀이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거리에서 술을 먹던 왠 아저씨 한 분. 더군다나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도착해서는 바로 뻗어버리는 이 아저씨. 대략 난감일세.  

하지만 현명하고 성숙한 엄마는 파티의 초대 인물로 자신을 추천하고, 푸셀은 엄마와 함께 소중한 파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약국 일을 마치고 퇴근하신 아빠도 화를 내지 않고 술에서 깬 아저씨를 부축해서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기까지. 정말 놀라운 인품의 부부랄까... 본의는 아니었지만 나름 사고에 가까운 걸 쳐버린 푸셀. 이쯤 되면 뭔가 깨달을 법도 하지만, 겨우 얻은 소중한 하루를 그대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원 숲에서 텐트 치고 11시 반까지 자다가 오겠다는 푸셀. 이번에도 두분 부모님은 위험하다고 반대는 했지만 결국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신다. 친구 올레와 함께 텐트 속에서 모험의 나래를 펼치던 푸셀. 하지만 그곳이 공동묘지 근처라는 소리에 놀란 올레가 떠나려 하고, 두 아이들은 벤치에 앉아 있는 귀신 형상에 놀라고 마는데...... 

한바탕의 해프닝을 거친 뒤 푸셀의 잔소리 없는 하루는 무사히 끝나버린다. 두 분 부모님의 섬세한 배려와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푸셀 역시 잔소리가 늘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것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을 마땅히 수행함으로써 더 괜찮은 자신으로 만들어갈 수 있단든 것도 알아차린다. 이 정도라면 잔소리 없는 하루의 대가로 괜찮지 않은가.  

이 책은 나아가 우리나라 학부모님과 어린이들로부터 어떤 잔소리를 가장 많이 하고/듣고, 어떤 잔소리를 가장 싫어하는지, 그리고 잔소리를 했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를 조사해서 그 결과를 같이 실었다. 편집의 정성과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부분이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공부해'가 가장 많았고, 또 가장 듣기 싫은 소리로 나왔다. 부모님들은 잔소리를 하면서 미안해하시고, 또 속상해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잔소리 없는 날을 아이에게 줄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 '그렇다'라는 것이 매우 신선했다. 위험한 일이 너무도 많이 예상되는 우리네의 일상 생활이지만, 일년에 하루 정도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만든다면 아이의 마음과 부모님의 마음이 서로 어떻게 전달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책 속의 엄마 아빠처럼 아이를 뒤에서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이중 배려가 필요하지만, 그 정도의 귀찮음은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잔소리 없는 날은 특별한 날이 되겠지만, 엄마나 아빠에게도 잔소리 하지 않는 날은 놀라운 날이 될 듯하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때는 곤란하겠지만 초등 중학년 이상이라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로에게 자유와 구속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잔소리 하지 않는 것과 무관심한 것은 당연히 다르다. 무플보다 악플을 원하는 유명인들이 있는 것처럼, 무관심보다는 잔소리가 차라리 낫겠다.

비단 아이들 뿐아니라, 어른들도 그런 꿈같은 날들을 사모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아무 제재 없는 꿀같은 휴가가 그런 예가 되겠다. 실제로 그렇게 쉴수 있는 직장인들도 제법 되겠지만, 그게 좀처럼 힘든 사람이라면 얼마나 달콤한 꿈일까. 최근에 나온 이승환 20주년 기념 앨범에 '좋은날2'라는 곡이 있다. tv를 끄고, 침대에서 마구 뒹굴며 맘껏 게으름을 피우며 열심히 산 자신에게 주는 선물같은 하루를 노래하고 있다. 휴식을 취할 때도 불안감을 안고서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이승환은 노래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 하루를 만들어내서 온전히 누려보는 상상, 정말 원더풀 데이가 아니고 뭔가!  

이 책은 시리즈로 나왔나 보다. 잔소리 없는 날에 이어 '아주 특별한 날'과 '동생 잃어버린 날'도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생 잃어버린 날'이 좀 더 궁금하다. 찾아서 더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