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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권유 - 사유와 실천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을 위한
김진혁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과거에는 정보가 제한적이었지만 현대는 교통과 통신, 인쇄술의 발달로 어마어마한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 것을 우리는 학습이라 한다. 학습과 지식은 비슷해 보이는데 차이가 있다. 과연 학습과 지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학습이란? 경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나 그 잠재력의 변화 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고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고 되어 있다.
사전적 의미 또한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학습은 지식을 습득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학습량이 많다 하여 그를 지식인이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이를 지식인 이라 하는가?
아마도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결국 이것일 것이다.
지식이란? 학습된 것을 실천하는 것
저가가 prologue 첫 장 첫 글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동안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을 의심하라’ 그리고 머리에만 있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니 열린 사고를 통해 행동과 실천하라. 그 때 비로소 진짜 지식이 된다. 어질어질~~
지식에 대해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을 실천하면 되는가? 물론 안 된다. 머리 속에 있다고 하여 모두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명제가 있다. 첫째 진실성이고 둘째 신념체계이고 셋째 정당성이다.
진실성은 자신의 내면적인 사고를 사적 욕구가 아닌 공적으로 거짓없이 드러나는 것을 말하고 신념체계는 진실성에 기반을 두지만 실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합리를 파악하여 제거해 가는 것이고 정당성은 합리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정의롭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철학적인 내용이 다분하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노란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라 공분을 말한다. 공분을 표출하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식은 어떻게 습득되고 있는가?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에 탑 다운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사고가 절대 유연해 질 수 없다. 틀에 박혀 있는 학교 교육 => 틀에 박혀 있는 직장 생활 과연 이런 틀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불합리함을 불합리하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퇴학, 회사에서 퇴직, 사회에선 감옥….. 현실이 이러한데 어느 지식인이 쉽게 나설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언제까지 프레임에서 갇혀 살아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물론 혼자서 라도 실행 하면 좋겠지만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혼자는 언제나 약자가 된다. 국민 한 사람은 약하지만 국민들은 강하다. 국민들은 강한데 왜 소수의 기득권들에게 언제나 당하고만 있는 것인가?
저자가 잘 지적했듯이 문제는 언론이다. 사리를 판단해야 하는데 판단할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리를 판단할 정보를 언론에서 주어야 하는 것이 응당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은 왜 이 지정이 되었는가? 일정강점기부터 지속적으로 정부권력의 검열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엄청난 경제 발전을 가져 왔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언론의 자유를 갖지 못했다. 반쪽 짜리 성장을 한 것이다. 몸집은 비대해 졌지만 정신은 미약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신의 발달로 기존 언론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하여 지식 인끼리 소통하고 서서히 공분을 시작 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편승할 것인지 지식인의 대열에 끼여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을 것인지 본인이 판단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행동하는 지식인들이여 분노하라.